[도서출판 가람어린이]
2012년 출판된 그림책 ‘엄마, 학교 오지 마!’의 한 구절이다. 책은 민지가 고령 임신을 한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낳았는지 뒤늦게 알게 되면서 엄마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지만, 책에 담긴 몇몇 상황은 아이를 늦게 낳아 키우는 엄마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일례로 딸이 걱정을 가득 안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양푼에 밥을 비벼 입에 한가득 밀어 넣고 우물우물 딸에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 묘사된다!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찾아본 늦맘의 현실
미국 HBO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에서 성공한 워킹맘으로 나오는 레나타(왼쪽)와 가난한 젊은 엄마 제인. [사진 출처 · HBO]
한국 늦맘은 민지 엄마와 레나타 중 누구에게 더 가까울까. 늦맘에 대한 서구의 연구는 대체로 35세 이후 출산한 여성이 그 전에 출산한 여성에 비해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며, 좀 더 나은 직장을 갖고 있고, 출산 후에도 커리어를 유지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고 말한다. 한국도 마찬가지일까.
한국 늦맘의 특성에 대한 기존 연구는 아직 없다. 그래서 통계청의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포함된 만 35~49세 여성의 자료를 직접 분석해봤다. 먼저 교육 수준. ‘표1’과 ‘그래프1’에서 알 수 있듯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첫아이 출산 연령도 높다.
만 35세 이후 첫아이를 출산한 여성의 경우 38%가 고등학교 졸업 이하, 51.4%가 대학 졸업, 그리고 10.7%가 대학원 석사 이상 학력을 보유한다. 전반적으로 35세 이전에 출산한 여성(고졸 50.5%, 대졸 44.2%)에 비해 교육 수준이 높다. 특히 석사 이상 고학력자 비율은 늦맘이 35세 이전 출산 여성의 2배에 이르렀다. 한국 늦맘도 서구 늦맘과 마찬가지로 젊은 나이에 엄마가 된 여성에 비해 고학력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경제적 수준은 어떨까. 아쉽게도 인구주택총조사에는 소득 자료가 포함돼 있지 않아 경제적 수준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 대신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를 통해 경제상황을 짐작해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35세 미만에 첫아이를 출산한 여성이 속한 가구의 자가(自家) 소유 비율(64.3%)이 늦맘(55.4%)보다 높았다(표2 참조). 단순히 자가 소유 비율만 갖고 논한다면 한국의 경우 늦맘이 경제적으로 더 여유롭다고 볼 수는 없는 셈이다.
한국 사회 특성상 자녀를 출산하거나 어느 정도 성장한 뒤 집을 장만하는 경향을 반영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한국에선 집을 장만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 결혼을 더 빨리 하고 아이 또한 더 일찍 낳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점은 저출산 대책 일환으로 신혼부부의 주거비용을 낮추려는 정부 정책과 관련해서도 좀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늦맘도 피할 수 없는 취업률 ‘M자 곡선’
서구 늦맘과 사이에서 보이는 좀 더 두드러진 차이는 늦맘의 ‘커리어’와 관련된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미국이나 유럽의 늦맘은 결혼이나 출산을 커리어를 쌓아 소득이나 근무 조건 측면에서 유리한 상황을 만든 다음으로 미루는 경향이 높다. 예를 들어 덴마크의 한 연구는 31세 이후 첫아이를 낳을 경우 커리어 전반에 걸친 소득 면에서 가장 유리하며, 그 전에 출산할 경우 커리어에서 여러 기회를 놓치기 쉬워 소득, 승진 등에서 불리하다고 말한다(Leung, Groes and Santaeulalia-Llopis·2016). 서구의 또 다른 연구는 여성이 아이를 낳기 전 오래 일할수록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어 출산 이후에도 일터로 복귀하기가 더 쉽다고 주장한다. 특히 35세 이후 아이를 낳을 경우 남성과 소득 격차를 극복하는 데 유리하다고도 한다(Chung, Downs, Sandler and Sienkiewicz·2017).그렇다면 한국에서도 늦맘이 좀 더 좋은 직업을 갖고, 출산 후에도 일을 계속하는 비율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2015년 한국의 데이터는 정반대 흐름을 보인다(그래프2 참조). 35세 이후에 첫아이를 출산한 여성의 38%만이 취업된 상태라고 밝혔고, 절반 이상(55%)이 ‘일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35세 미만에 첫아이를 출산한 여성은 53%가 취업 상태였으며, 비취업 상태는 41%에 그쳤다.
왜 그럴까. 왜 많은 한국 늦맘은 자신의 커리어를 잃었을까. 이 현상의 배경은 이들 집단의 첫아이 연령을 비교해보면 의외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15년 현재 만 34~49세 여성 중 35세 이전에 첫아이를 출산한 경우 첫아이의 평균 나이는 15세다(가장 어린 자녀는 만 1세, 가장 나이 많은 자녀는 만 31세다!). 늦맘의 경우 첫아이의 평균 연령은 5세에 불과하다. 가장 어린 자녀는 0세, 가장 나이 많은 자녀도 14세다. 잘 알려졌다시피 한국에서 연령에 따른 여성 취업률은 M자 형태를 보인다. 즉 아이가 어릴 때는 직장을 그만뒀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뒤 다시 취업하는, ‘경력단절 후 재취업’ 형태다. 따라서 한국 늦맘은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해 늦은 출산이 유리하다는 서구의 형태가 아니라, 결혼과 출산 뒤 아이가 어릴 때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한국적 형태를 따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늦맘의 연령을 고려할 때 오히려 젊은 엄마에 비해 취업 세계로 돌아가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물론 모든 여성이 워킹맘이 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맞벌이가 아니면 주거비, 생활비, 자녀교육비를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은 한국적 현실, 그리고 늦맘의 경우 남편 연령도 높아 은퇴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서구와 달리 한국에서는 늦맘이더라도 경력이 단절될 위험이 높다는 점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특히 늦맘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회적 인력자원 활용 측면에서도 적잖은 손실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출산은 여성의 소득, 커리어 등 여러 측면에서 부담이 된다. 그래서 출산을 미뤄 커리어를 쌓고 소득을 확보하는 것이 출산에 따른 부담을 해결하는 전략 가운데 하나로 활용된다. 그러나 한국에선 여성이 출산을 미뤄 교육 수준을 높이거나 경력을 축적한다 해도 출산과 양육에 따른 부담을 줄이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씁쓸한 일이다.
‘민지 엄마’와 ‘레나타’ 사이
한국 늦맘은 민지 엄마와 레나타 사이, 어디쯤에 있을까. 일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는 늦맘의 경우 38%가 10년 이상 경력을 갖고 있고, 전문직 비율이 34%로 여느 집단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많지 않은 수더라도 누군가는 미국 등에서 ‘다 가진 자(Have-It-All)’로 지칭되는,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커리어에서도 성공적인 늦맘일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 한국 늦맘은 취업 여부나 나이와 관계없이 어린 자녀를 키우며 생활을 꾸려가느라 고군분투하는 제인에 가까울 수 있다.통계를 살피면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2015년 통계에서 첫아이를 출산한 여성의 가장 늦은 나이는 만 46세였다. 이번에는 만 49세까지 여성을 들여다봤기에 49세의 누군가는 세 살짜리를, 48세의 누군가는 두 살짜리를, 47세의 누군가는 돌이 된 아기를, 46세의 누군가는 신생아를 돌보며 설문조사에 참여했을 터다. 동갑내기의 누군가는 31세의 장성한 자녀가 있는데, 다른 동갑내기들은 이제 갓 엄마가 돼 어린아이를 돌보고 있는 것이다. 엑셀 파일에 빽빽하게 기록된 숫자에서 늦은 나이에 용감하게 엄마가 된 그들의 기쁨, 고난, 희열, 피로, 감동이 보이는 것 같았다고 하면, 너무 감상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