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필름295]
제목 자체가 섬뜩하고 미스터리하다. ‘암수범죄’(暗數犯罪·hidden crime)는 범죄가 발생했지만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거나, 용의자의 신원 파악이 되지 않아 공식 범죄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범죄를 뜻한다. 그리고 영화 제목인 ‘암수살인’은 피해자는 있지만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살인사건을 가리킨다.
증거도 없고, 신고도 없어 아무도 모르는 사건을 누군가는 자백하고, 또 누군가는 뒤쫓는다. 영화는 살인범으로 수감된 강태오(주지훈 분)가 형사 김형민(김윤석 분)에게 7개의 추가 살인이 있었음을 자백하면서 시작된다. 형사를 이용해 감형받으려는 머리 좋은 수감자의 술수 아닐까.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범죄자가 넘겨준 단서를 쫓다 헛발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형사는 실적도 보람도 없이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가 쾌락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실제 연쇄살인범이라면? 15년 형기를 마치고 난 후 더 많은 희생자가 생길 것은 뻔한 일. 그 ‘만일’ 때문에 형사는 수사를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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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봐온 스릴러 형사물과 달라서 더 흥미진진하다.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역수사를 벌이는 형사의 답답한 처지는,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한 정글 같은 현실 사회에 대한 비유처럼 여겨진다. 대가를 요구하는 범죄자의 뻔뻔함에 수사를 위해 불법임을 알면서도 응하는 형사라니.
실내에선 투명 안경이지만 야외에선 선글라스가 되는 이중안경처럼 강태오의 진실을 우리는 알 수 없고, 주인공 김형민도 마찬가지다. 이 핑퐁게임에서 누가 이길지 지켜보는 심정이 단순한 재밋거리 감상에 머물지 않는 것은 리얼리즘이 가진 힘 때문이다.
부산 올 로케이션과 억센 사투리로 구성된 현실성, 그리고 실화 사건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여운이 만만치 않다. 곽경택 감독이 제작을 맡아 ‘극비수사’의 경험을 이 영화에 발전적으로 녹여냈고, 잔잔한 감동 드라마를 연출해온 김태균 감독이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다. 아마도 이 도전은 성공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