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1980년대엔 ‘형사 콜롬보’와 ‘제시카의 추리극장’ 같은 TV 탐정극이 인기를 끌었다. 낡은 버버리를 입은, 허술해 보이는 콜롬보 형사가 마지막에 단서를 하나하나 펼치면서 피의자를 압박해 들어갈 때, 또 추리소설 작가지만 할머니에 오지랖까지 넓은 제시카가 책상에 앉아서도 경찰이 손놓아버린 사건을 척척 해결할 때 쾌감이란…. 평범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비범한 이들의 활약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만든다.
낯선 곳으로 여행,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 살인사건, 그리고 두뇌를 풀가동하는 추리. 이러한 추리물은 탄탄한 플롯과 명연기의 어우러짐을 즐기는 재미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칼들이 (칼집에서) 나와 있는 상태’라 일촉즉발의 호전적인 상황을 뜻하는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을 제목으로 삼은 영화는 이런 복고풍 추리극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진 제공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와 ‘블룸 형제 사기단’의 라이언 존슨 감독이 직접 쓴 각본을 가지고 연출했으며 무엇보다 초호화 출연진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대니얼 크레이그, 크리스 에반스, 제이미 리 커티스, 돈 존슨, 토니 콜렛, 아나 디 아르마스 등 할리우드의 쟁쟁한 신구 스타가 줄줄이 등장한다. 영화의 승패를 가를 요소를 먼저 짚어보자. 결말을 향해가면서 곳곳에 던져진 단서가 하나씩 회수돼 퍼즐이 정확히 맞아떨어질 것, 주요 배역이 모두 용의선상에 오르되 마지막까지 범인을 단정하기 어려울 것, 그리고 모든 배역의 연기자들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빈틈없는 연기를 펼칠 것….
영화는 천의무봉의 솜씨로 이를 꿰어낸다. 그렇다고 웰메이드 추리극의 묘미만 담긴 게 아니다. 불관용과 혐오 감정으로 가득한 ‘트럼프 시대’를 겨냥했다. 추리에 몰두한다 싶었는데 다문화주의, 정치적 올바름,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같은 과녁을 동시다발적으로 쏴 맞히는 클레이사격 달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에 성공한 의미심장한 영화다. ‘기생충’ ‘아이리시맨’과 함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10대 영화에 선정된 이유도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