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바나’는 ‘사회를 바꾸는 나,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컨버전스 뉴스랩(News-Lab)으로, 대학생들의 기고도 싣습니다. <편집자 주>
[GettyImages]
대형사고는 물론 피하고 막아야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배를 타고 가다 보면 찰랑이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수십m 길이의 무지개가 가끔 눈에 띈다. 물 위의 무지개도 빛깔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아래 어두운 진실이 감춰져 있다.
물 위의 무지개가 폐유나 다른 오염물질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흔히 착각한다. 주범은 선저폐수(船底廢水)로, 선박의 기관실 밑바닥에 고인 물에 기관실 설비에서 나오는 기름 성분이 섞인 유성혼합물을 뜻한다. 빌지(bilge)로 불리기도 한다.
2차, 3차 피해 우려
기름이 유출된 7월 5일 전남 여수수협 제빙창고 앞 해상에서 해경들이 기름띠를 제거하고 있다. [사진 제공 ·여수해경]
어민들은 선저폐수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11월 23일 강원 속초항과 동명항을 둘러봤는데, 선저폐수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속초항 한쪽에 버려진 선저폐수가 조그만 무지개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겨우 발견했다.
동명항에서 만난 최우영(65·4.85t 유자망) 선장은 “배를 모는 사람은 여러 가지 교육을 받아 선저폐수에 대해 잘 안다”며 “배에 선저폐수를 모아뒀다 수협에 경유를 받으러 갈 때 반납하거나 항만청 폐유처리시설에 가져다 버린다”고 말했다.
속초시의 김모(60) 선장은 “배에서 모은 선저폐수를 가져와 육상에서 처리차량을 불러 200ℓ 드럼당 5000원씩 내고 처리한다”고 말했다. 항구에서 잘못 처리하다 기름이 한 방울이라도 번지면 해양경찰에 단속돼 선주, 선장, 기관장 모두 벌금을 문다는 것이 김 선장의 설명.
어민 모두가 잘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선주 김모(31) 씨는 선저폐수에 대해 묻자 약간 다른 설명을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선장은 “배 위에서 중성세제로 기름찌꺼기를 닦아내 버린다”고 말해 선저폐수를 단순한 폐수의 일종으로 여기는 듯했다.
해경 간부에 따르면 심지어 어선의 한 기관장은 “기관실에서 나오는 선저폐수는 대부분 바닷물 성분이라 바다에 버려도 괜찮다”고 했고, 다른 기관장은 “위법인 줄 알지만 출어 중에는 별도로 처리할 방법이 없어 바다에 배출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100t 이상 선박은 기름오염 방지설비를 갖추고 항해 중에는 해당 설비를 반드시 작동해야 한다. 100t 미만 선박은 선저폐수를 따로 모았다 육상의 지정된 곳에 버려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보는 어선의 거의 대부분이 100t 미만이라는 점이다. 해양수산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강원도에 등록된 동력어선이 2785척인데 100t 이상은 3척에 불과했다. 99.9%가 선저폐수를 처리할 설비를 갖추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봐도 동력어선 가운데 100t 미만이 99%를 차지한다.
99% 폐수 처리 장비 없어
9월 27일 평택해경 방제21호가 서해대교 부근에서 방제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평택해양경찰서]
‘해양환경관리법’ 제22조는 ‘누구든지 선박으로부터 오염물질을 해양에 배출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강원해경 측은 “선저폐수를 무단으로 바다에 버렸다 해경 헬기 또는 경비정에 단속되면 최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고 안내한다. 이러한 단속에도 해경에 접수된 해양오염 신고는 2017년 1200여 건에서 지난해 1400여 건으로 최근 매년 7% 이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해양환경안전학회에서 발표된 최현규 서귀포해경 사무관 등 5명의 공동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5~2017년 3년간 어선에 의한 해양오염 사고는 평균 105건으로 연평균 오염사고 260건의 40%에 달했다. 더 심각한 것은 3년간 해양오염 신고 3384건 중 선저폐수로 인한 것이 2132건으로 63%나 됐다는 점이다. 한 해경 간부는 “신고사건 비중이 훨씬 높다는 것은 어선이 의도적으로 선저폐수를 흘려버리는 일이 여전히 많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최 사무관 등이 지난해 제주 서귀포 등록어선 221척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연간 선저폐수 발생량은 △300ℓ 이상 20% △100~300ℓ 25% △50~100ℓ 20% △20~50ℓ 30% △20ℓ 미만 5%로 나타났다. 중간값으로 평균을 내보면 매년 척당 약 180ℓ의 선저폐수가 발생하는 셈이다.
응답자의 85%는 이것을 수협(79%) 또는 해양환경공단(6%)에서 처리한다고 했다. 운항이나 계류 중에 배출한다는 응답은 7%에 불과했다. 이만큼 처리를 잘한다면 오염 신고가 늘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선저폐수의 육상 처리가 3%에도 못 미쳐 무단 폐기가 연간 3만t, 15만 드럼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물론 농도는 훨씬 낮지만, 매년 태안 앞바다 사고 기름 양의 2배에 해당하는 선저폐수가 우리 바다 여기저기에 찔끔찔끔 버려지는 셈이다. 현재는 실태 파악이 어렵다.
강원 동해수협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어민들이 수협을 방문해 폐유를 처리할 때 선저폐수를 함께 가져오는 경우 수협에서 받은 뒤 해양환경공단에 넘겨 처리하게 한다. 폐유와 선저폐수를 혼합해 가져오는 경우는 폐유로 분류해 오염물질 처리 전문인 유창청소업체에 맡겨 처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형어선 지원해야
이와 별도로 해양환경공단은 어촌계의 신청을 받아 선저폐수 저장용기를 설치해 무상 수거하고 있다. 현재는 수거량이 많지 않은 편이다. 어민은 해양환경공단이나 수협 가운데 편한 곳을 찾으면 된다. 어민이 개별적으로 육상에서 폐기하려면 드럼당 5000원을 내고 해경의 허가를 받은 청소업체를 통해 처리해야 한다.전문가들은 “소형어선들도 비싸지 않은 값에 선저폐수를 처리할 설비를 갖출 수 있다면 무단 방류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 사무관 등의 조사에서도 “유수분리 필터가 있으면 설치하겠다”는 응답이 73%로 높았다. 최 사무관은 “수중펌프 배관 중간에 소형 유수분리 장치를 설치하면 선저폐수의 물 부분은 바다로 흘려보내고 기름 부분만 따로 모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어민은 이것을 폐유와 함께 저장용기에 넣었다 수협을 방문해 간단히 처리하면 된다. 전국 100t 미만 어선 6만여 척에 간단한 장치를 설치해 바다 오염을 줄이면서 어민의 불법무단 폐기 혐의끼지 벗겨준다면 윈윈(win-win) 게임이 될 수 있다.
선저폐수 방류는 봄철부터 늘어나기 시작해 여름철에 극성을 부린다. 2019년 겨울은 선저폐수를 대폭 줄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