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 말만 잘했어도!” 살다 보면 이런 쓰라린 후회를 할 때가 많다. 직장 상사에게, 애인에게, 교수에게, 친구에게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반대로 말 한마디로 큰 성공을 거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말로 성공하고 실패한 이들의 ‘공감’ 에피소드에서 말하기 비법 한 수를 배워보자.
지방 사무실에서 근무하다 오랜만에 서울에 온 과장님이 반가워 친근함의 표시로 “과장님, 머리가 꼭 가발 같잖아요! 가르마를 바꿔보세요!”라고 했다. 헉. 알고 보니 진짜 가발이었다. (하주경·27·회사원)
남자친구랑 동네를 걷다 허름한 단독주택을 지나게 됐다. 아무 생각 없이 “나는 아파트에서만 살아서 저런 데선 절대 못 산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알고 보니 남자친구도 그런 집에 살고 있었다. (김지영·22·대학생)
시어머니가 ‘나이 먹으니 눈밑살이 자꾸 처진다’고 고민하셨다. 내 딴에는 신경을 많이 쓴다고 ‘보톡스 주사를 맞아보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는데 어머님이 불같이 화를 내셨다. “내가 그런 시술을 할 정도로 볼품없어 보이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면서…. (김지현·27·디자이너)
지난 연말, 회사 일이 너무 많아 스트레스가 심했다. 회식 후 우연히 과장님 차를 얻어 탔는데 바쁘다는 얘기를 하다 “난 지지리 복도 없다”며 신세 한탄을 했다. 그때 과장님이 나를 투정만 부리는 부정적인 사람으로 본 것 같다. 이후 회식 자리에도 불러주지 않는다. (손미선·29·회사원)
우리 과장님은 썰렁한 농담을 많이 한다. 보통은 장난으로 야유하거나 그냥 웃고 넘어가는데 거래처 사람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문제가 터졌다. 거래처 사람이 과장님 못지않게 썰렁한 유머를 남발한 것. 그 자리에서 “우리 과장님보다 싱거운 사람은 처음 봤다”고 말하며 혼자 막 웃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권유진·30·회사원)
나와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아르바이트 여학생에게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쌍꺼풀 수술을 한 듯해서 “수술 언제 했어요?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부기 빠지면 진짜 예쁘겠다”고 친근하게 말을 건넸는데 그 친구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러더니 톡 쏘듯 말했다. “수술한 지 3년 됐거든요!” (익명을 요구한 30대 회사원)
처음 방송 출연했을 때 아찔한 말실수가 잊히지 않는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잘 말해놓고 프로그램이 끝난 뒤 담당 PD와 친해진답시고 차 한잔 마시며 수다를 떨었는데, ‘○○여대 ○○학과’ 출신 인사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 학과 출신 여자들 엄청나게 드세잖아요”라고 말한 순간, PD 표정이 확 달라졌다. 그 순간 담당 PD가 바로 그 ‘드센 여자’ 중 한 명임을 알 수 있었다. 고정 출연인 줄 알았는데 그 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칼럼니스트)
식구들이 모두 외출해 시아버지와 집에 단둘이 남게 됐다. 친한 척하려고 말 한마디 건넸다 큰일 날 뻔했다. 마당에서 뛰어노는 강아지를 바라보는 아버님에게 “아버님, 개 밥 드렸어요?”라고 물었던 것. 제대로 배우지 못한 며느리 쳐다보듯, 황당해하던 아버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20대 주부)
이 말 하길 잘했다 … 다시 생각해도 잘한 말 말 말
서비스업에 종사한 적이 있어 고객 응대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얼마 전 동대문시장에 옷을 사러 갔는데 가격이 5만9000원이었다. 그런데 판매하시는 분 얼굴을 보니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언니,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시지 그래요”라고 말했는데 그 분이 정말 고마워했다. 그날 나는 그 옷을 4만2000원에 샀다. (한경숙·28·회사원)
텔레마케터로 휴대전화를 판매하고 있는데, 전화를 통해 신청을 접수하다 보면 어르신들이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 60대 할머니가 말도 잘 이해하고 신청 절차도 잘 따라해 신기했다. 나도 모르게 “어머니, 정말 대단하세요! 20대들보다도 잘하시네요”라고 말했다. 기분이 좋아진 할머니가 친구를 세 분이나 더 소개해줬다. (남연우·30·회사원)
소개팅에 나갔는데 소개팅녀가 내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음을 비우려던 찰나 그녀의 귀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귀고리가 정말 예쁘다고 칭찬했더니 갑자기 표정이 달라지며 스위스 여행 중 사온 것이라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도 스위스 여행을 한 적이 있어 함께 얘기를 나누다 보니 꽤 긴 시간을 보내게 됐다. 지금 그녀는 나의 소중한 여자친구다. (조모 씨·28·회사원)
입사 최종면접 때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준비해간 답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버벅대고 있었다. 그러다 한 면접관이 “시력이 상당히 나쁘네요, 모니터 계속 봐야 하는 일인데 괜찮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도 몰래 “당장 라식수술 하겠습니다!”라고 소리쳤다. 면접관 다섯 분이 동시에 껄껄 웃기 시작하고…. 합격 후 그 자리에 계셨던 한 임원의 말씀을 들어보니, 그때 내 목소리가 어찌나 다급하게 들렸던지 이런 지원자라면 꼭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성재·26·그래픽 디자이너)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유림(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씨와 이은택(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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