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9일 오후 7시, 서울 마포의 스피치 아카데미 ‘L스피치랩’. 양복과 원피스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직장인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프레젠테이션 스킬과 스피치 기본에 대한 ‘맛보기’ 수업 격인 특강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강 목적은 다양했다. 강사의 리드로 자기소개가 시작됐다.
“오랫동안 건설업체를 운영해왔습니다. 제 전문 분야에 대한 노하우를 들려달라는 강의 의뢰가 점점 늘어나 스피치 기술을 따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건설업체 최고경영자)
“국내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프레젠테이션할 일이 많은데 좀더 효과적으로 제안 사항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습니다.”(주한 외국대사관 무역대표부 근무)
“지금까지 해외에서만 근무해 한국식 프레젠테이션, 스피치 방법에 익숙지 못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모범적이라 받아들이는 말하기 스타일이 궁금합니다.”(외국계 물류회사 근무)
전문직 종사자, 고위 공직자, 주부까지 가세 … 강의 제목도 세분화
이날 모인 직장인 가운데 약 30%는 조리 있는 말솜씨가 직무 경쟁력과 직결되는 영업 관련직 종사자.아모레퍼시픽 생활용품 부문의 영업 파트에서 근무하는 유영국(31) 대리는 프레젠테이션 실력의 ‘한 단계 도약’을 목표로 이 특강에 신청했다. 그는 “듣는 사람들의 성별이나 나이대에 맞는 말투는 물론 프레젠테이션용 파워포인트를 제작할 때 주제, 청중에 따라 어떤 색상이나 테마를 잡아야 하는지 등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까지 포함하는 디테일한 기술을 익히고 싶다”고 설명했다.
한편 PCA생명의 파이낸셜컨설턴트(FC) 김병규(34) 씨는 “보통 10~20분 내에 고객에게 보험 상품을 설명해야 한다. 짧은 시간 내에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동아방송 아나운서, 불교방송 편성제작국장 출신인 ‘L스피치랩’ 이선미 대표는 “최근에는 건축가, 애널리스트, 의사, 변호사, 검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과 고위 공직자, 기업체 임원들에게서 스피치 강의를 듣고 싶다는 문의가 많이 온다”며 “지금 우리 사회의 스피치 열풍은 정점을 이루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부터 정부부처 대변인, 장관, 검사 등을 대상으로 미디어를 통한 대국민 연설에 대비한 스피치 레슨 및 ‘미디어 트레이닝’을 실시하고 있다. “각 분야 전문직 종사자들은 서비스 경쟁 시대에 좀더 나은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찾아옵니다. 최근 한 여성 한의사의 경우 목소리가 앳된 편이어서 환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힘들다고 판단해 혀 짧은 발음과 지나치게 높은 음색의 목소리를 교정하기 위해 수업을 받았어요.”
전문직 종사자들의 스피치 교육 수요가 높아지는 것은 미디어가 다양해지면서 이들이 전문 케이블 채널, 인터넷 방송 등에 출연할 기회가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웰스매니지먼트 최태선 대표는 “재테크 상담이나 재무 관련 도움말을 위해 방송 매체에 출연할 때마다 나의 목소리 톤, 제스처 등이 어색하다고 생각했다”며 “직접 방송에 출연한 듯 시뮬레이션을 하고 그것을 비디오로 촬영한 뒤 전문 강사가 잘못된 부분을 조목조목 짚어주는 모니터 수업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와 맞물려 여성 수강생이 점점 느는 것도 트렌드 중 하나다. 7월30일 오전 11시30분 서울 롯데백화점 노원점 문화센터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이 참석한 가운데 ‘나를 브랜드화하는 말’이라는 주제의 스피치 교육이 진행됐다. 전업주부부터 댄스강사, 프로골퍼, 세일즈우먼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진지하다 못해 비장한 표정으로 강사의 지시에 따라 표정, 말투, 음색을 고쳐나갔다.
골프 강사 노명선(41) 씨는 일대일 레슨을 할 때 수강생과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가는 대화법을 익히고 싶어 점심시간을 쪼개 스피치 강좌에 등록했다.
“사람을 대할 때 긴장도 많이 하고 무뚝뚝하다는 평가를 듣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말의 기술을 익히다 보니 표정까지 함께 부드러워졌다고들 해요.”
두 달째 스피치 강좌를 듣는 벨리댄스 강사 최민희(37) 씨는 “심지어 남편, 아들과의 관계도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엔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왜 늦었느냐며 쏘아붙였는데 이젠 ‘이렇게 늦게 다니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당신 없이는 못 사니까 좀 일찍 다니면 좋겠어’라고 돌려 말하는 기술을 알게 됐어요. 잊고 지냈던 가족 간 대화 매너를 다시 지키게 된 셈이죠.”
롯데백화점 5개 지점 문화센터에서 스피치 관련 강좌를 진행하는 김현주 강사는 “과거에는 대인공포, 성격개조 등 특정한 문제를 극복하고자 스피치 강좌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면 요즘은 프레젠테이션 진행, 주제가 있는 집단 토론, 회의 진행 등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이들이 많아졌다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대학가에서도 ‘말하기’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가열되고 있다. 서울대에서는 2004학년도 2학기에 ‘말하기’ 교육 과정이 처음으로 개설됐다. 현재까지 이 수업을 담당해온 전 KBS 아나운서 유정아 씨는 최근 이 강의 내용을 중심으로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란 책을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씨는 모두가 말하기를 잘하는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제대로 말하기’에 얼마나 목말라 하고 있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제대로 된 말하기’에 대한 학생들의 욕구는 상상 이상이었다. 수강 신청은 매번 10초 만에 마감됐고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해 현재는 강좌 수를 10개로 늘였다.”
발성, 발음법 등 기본적인 언어 훈련은 물론 자기소개 스피치, 인터뷰, 대화, 토론, 토의, 프레젠테이션 실습 등의 실용적인 스피치 교육을 받을 수 있어 학생들의 강의 만족도도 높다. 대학가의 말하기 강좌는 서울 소재 대학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현재 스피치 관련 강좌를 운영하는 교육기관은 전국적으로 70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커리어 교육업체인 ‘듀오아카데미’ 관계자는 “입학이나 입사 등에서 면접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직장인뿐 아니라 취업준비생, 수험생, 초등학생 등으로까지 수요층이 점점 두터워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강남점 문화센터 역시 지난해 11월 회원들의 요청에 따라 처음으로 스피치 강좌를 개설했다. 최근에는 주부반까지 운영하기 시작했다.
갤러리아백화점 수원점 문화센터도 스피치 강좌에 대한 문의가 늘자 지난해 처음 관련 코스를 마련했다. 현재 이곳에서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고품격 화법 · 매너’ ‘윈윈(win-win)하는 공감 대화법’과 초등학생을 타깃으로 한 ‘발표 영재 아나운서교실’ ‘초등 논리력! 발표력 스피치’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말하기가 두려운 한국인들 … 스피치 열풍은 시대적 요구
이곳에서 스피치 강의를 하는 P스피치 박수현 강사는 “과거 스피치 강좌는 두루뭉술하게 ‘말 잘하는 법’을 내세웠다면 요즘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보이스 트레이닝’ ‘유머 트레이닝’ 등 세분화된 주제로 나눠 가르치는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우리 사회의 스피치 열풍은 말하기에 대한 한국인들의 콤플렉스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언론정보학·신문방송학 연구자들의 학술단체인 한국소통학회 류춘렬 회장(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은 “우리나라는 해방 전후에 이르러서야 말과 글을 온전히 한글로 사용하게 됐으며 그전까지 글쓰기는 한자를 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말과 글이 일치하지 못해 글을 잘 쓰는 것만큼이나 말을 잘하는 ‘훈련’이 이뤄지지 못했고 이것이 스피치에 약한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했다.
‘말 (잘하기를) 권하는 사회’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것은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말하기가 개인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가 됐기 때문. ‘표현력’보다 ‘숨겨진 내공’을 중시하던 한국 사회가 글로벌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서양에서처럼 ‘자신을 알리고 표현하는 것이 곧 실력’이라 받아들이는 풍토로 변화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이 말을 잘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직장인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리어 교육기관 듀오아카데미가 7월9일부터 17일까지 직장인 21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7%는 ‘말 잘하는 직장인의 승진 확률이 높다’고 답했다. 또 73%는 ‘말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고, 89%는 ‘화술을 따로 배워서라도 직장에서 인정받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듀오아카데미의 김유경 전임강사는 “비슷한 스펙, 콘텐츠 등을 갖춘 상황이라면 이를 말로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능력의 잣대로 쓰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스피치 열풍은 ‘소통’이 화두가 되는 한국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류춘렬 회장은 “현재 우리 사회는 보혁 갈등 등으로 첨예하게 갈라진 단체 간, 개인 간 문제를 해소하고 서로 원활히 대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통의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하는 때”라면서 “학자들을 중심으로 소통의 방법론을 진지하게 모색하기 시작하는 이때, 소통의 수단인 대화, 토론, 스피치 등으로 ‘말’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시대적 요구”라고 주장했다. 바야흐로 말 권하는, ‘말짱’의 시대다. 당신은 얼마나 준비돼 있는가.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유림(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프레젠테이션 스킬과 스피치 기본에 대한 ‘맛보기’ 수업 격인 특강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강 목적은 다양했다. 강사의 리드로 자기소개가 시작됐다.
“오랫동안 건설업체를 운영해왔습니다. 제 전문 분야에 대한 노하우를 들려달라는 강의 의뢰가 점점 늘어나 스피치 기술을 따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건설업체 최고경영자)
“국내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프레젠테이션할 일이 많은데 좀더 효과적으로 제안 사항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습니다.”(주한 외국대사관 무역대표부 근무)
“지금까지 해외에서만 근무해 한국식 프레젠테이션, 스피치 방법에 익숙지 못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모범적이라 받아들이는 말하기 스타일이 궁금합니다.”(외국계 물류회사 근무)
전문직 종사자, 고위 공직자, 주부까지 가세 … 강의 제목도 세분화
이날 모인 직장인 가운데 약 30%는 조리 있는 말솜씨가 직무 경쟁력과 직결되는 영업 관련직 종사자.아모레퍼시픽 생활용품 부문의 영업 파트에서 근무하는 유영국(31) 대리는 프레젠테이션 실력의 ‘한 단계 도약’을 목표로 이 특강에 신청했다. 그는 “듣는 사람들의 성별이나 나이대에 맞는 말투는 물론 프레젠테이션용 파워포인트를 제작할 때 주제, 청중에 따라 어떤 색상이나 테마를 잡아야 하는지 등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까지 포함하는 디테일한 기술을 익히고 싶다”고 설명했다.
한편 PCA생명의 파이낸셜컨설턴트(FC) 김병규(34) 씨는 “보통 10~20분 내에 고객에게 보험 상품을 설명해야 한다. 짧은 시간 내에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동아방송 아나운서, 불교방송 편성제작국장 출신인 ‘L스피치랩’ 이선미 대표는 “최근에는 건축가, 애널리스트, 의사, 변호사, 검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과 고위 공직자, 기업체 임원들에게서 스피치 강의를 듣고 싶다는 문의가 많이 온다”며 “지금 우리 사회의 스피치 열풍은 정점을 이루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부터 정부부처 대변인, 장관, 검사 등을 대상으로 미디어를 통한 대국민 연설에 대비한 스피치 레슨 및 ‘미디어 트레이닝’을 실시하고 있다. “각 분야 전문직 종사자들은 서비스 경쟁 시대에 좀더 나은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찾아옵니다. 최근 한 여성 한의사의 경우 목소리가 앳된 편이어서 환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힘들다고 판단해 혀 짧은 발음과 지나치게 높은 음색의 목소리를 교정하기 위해 수업을 받았어요.”
전문직 종사자들의 스피치 교육 수요가 높아지는 것은 미디어가 다양해지면서 이들이 전문 케이블 채널, 인터넷 방송 등에 출연할 기회가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웰스매니지먼트 최태선 대표는 “재테크 상담이나 재무 관련 도움말을 위해 방송 매체에 출연할 때마다 나의 목소리 톤, 제스처 등이 어색하다고 생각했다”며 “직접 방송에 출연한 듯 시뮬레이션을 하고 그것을 비디오로 촬영한 뒤 전문 강사가 잘못된 부분을 조목조목 짚어주는 모니터 수업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와 맞물려 여성 수강생이 점점 느는 것도 트렌드 중 하나다. 7월30일 오전 11시30분 서울 롯데백화점 노원점 문화센터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이 참석한 가운데 ‘나를 브랜드화하는 말’이라는 주제의 스피치 교육이 진행됐다. 전업주부부터 댄스강사, 프로골퍼, 세일즈우먼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진지하다 못해 비장한 표정으로 강사의 지시에 따라 표정, 말투, 음색을 고쳐나갔다.
골프 강사 노명선(41) 씨는 일대일 레슨을 할 때 수강생과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가는 대화법을 익히고 싶어 점심시간을 쪼개 스피치 강좌에 등록했다.
“사람을 대할 때 긴장도 많이 하고 무뚝뚝하다는 평가를 듣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말의 기술을 익히다 보니 표정까지 함께 부드러워졌다고들 해요.”
두 달째 스피치 강좌를 듣는 벨리댄스 강사 최민희(37) 씨는 “심지어 남편, 아들과의 관계도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엔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왜 늦었느냐며 쏘아붙였는데 이젠 ‘이렇게 늦게 다니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당신 없이는 못 사니까 좀 일찍 다니면 좋겠어’라고 돌려 말하는 기술을 알게 됐어요. 잊고 지냈던 가족 간 대화 매너를 다시 지키게 된 셈이죠.”
롯데백화점 5개 지점 문화센터에서 스피치 관련 강좌를 진행하는 김현주 강사는 “과거에는 대인공포, 성격개조 등 특정한 문제를 극복하고자 스피치 강좌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면 요즘은 프레젠테이션 진행, 주제가 있는 집단 토론, 회의 진행 등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이들이 많아졌다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대학가에서도 ‘말하기’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가열되고 있다. 서울대에서는 2004학년도 2학기에 ‘말하기’ 교육 과정이 처음으로 개설됐다. 현재까지 이 수업을 담당해온 전 KBS 아나운서 유정아 씨는 최근 이 강의 내용을 중심으로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란 책을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씨는 모두가 말하기를 잘하는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제대로 말하기’에 얼마나 목말라 하고 있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제대로 된 말하기’에 대한 학생들의 욕구는 상상 이상이었다. 수강 신청은 매번 10초 만에 마감됐고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해 현재는 강좌 수를 10개로 늘였다.”
발성, 발음법 등 기본적인 언어 훈련은 물론 자기소개 스피치, 인터뷰, 대화, 토론, 토의, 프레젠테이션 실습 등의 실용적인 스피치 교육을 받을 수 있어 학생들의 강의 만족도도 높다. 대학가의 말하기 강좌는 서울 소재 대학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현재 스피치 관련 강좌를 운영하는 교육기관은 전국적으로 70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커리어 교육업체인 ‘듀오아카데미’ 관계자는 “입학이나 입사 등에서 면접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직장인뿐 아니라 취업준비생, 수험생, 초등학생 등으로까지 수요층이 점점 두터워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강남점 문화센터 역시 지난해 11월 회원들의 요청에 따라 처음으로 스피치 강좌를 개설했다. 최근에는 주부반까지 운영하기 시작했다.
갤러리아백화점 수원점 문화센터도 스피치 강좌에 대한 문의가 늘자 지난해 처음 관련 코스를 마련했다. 현재 이곳에서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고품격 화법 · 매너’ ‘윈윈(win-win)하는 공감 대화법’과 초등학생을 타깃으로 한 ‘발표 영재 아나운서교실’ ‘초등 논리력! 발표력 스피치’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성들의 스피치 교육 열풍도 트렌드 중 하나. 롯데백화점 노원점 문화센터의 스피치 수업 모습(왼쪽). 서울 마포 ‘L스피치랩’에서 프레젠테이션 특강을 듣고 있는 직장인들.
이곳에서 스피치 강의를 하는 P스피치 박수현 강사는 “과거 스피치 강좌는 두루뭉술하게 ‘말 잘하는 법’을 내세웠다면 요즘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보이스 트레이닝’ ‘유머 트레이닝’ 등 세분화된 주제로 나눠 가르치는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우리 사회의 스피치 열풍은 말하기에 대한 한국인들의 콤플렉스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언론정보학·신문방송학 연구자들의 학술단체인 한국소통학회 류춘렬 회장(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은 “우리나라는 해방 전후에 이르러서야 말과 글을 온전히 한글로 사용하게 됐으며 그전까지 글쓰기는 한자를 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말과 글이 일치하지 못해 글을 잘 쓰는 것만큼이나 말을 잘하는 ‘훈련’이 이뤄지지 못했고 이것이 스피치에 약한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했다.
‘말 (잘하기를) 권하는 사회’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것은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말하기가 개인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가 됐기 때문. ‘표현력’보다 ‘숨겨진 내공’을 중시하던 한국 사회가 글로벌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서양에서처럼 ‘자신을 알리고 표현하는 것이 곧 실력’이라 받아들이는 풍토로 변화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이 말을 잘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직장인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리어 교육기관 듀오아카데미가 7월9일부터 17일까지 직장인 21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7%는 ‘말 잘하는 직장인의 승진 확률이 높다’고 답했다. 또 73%는 ‘말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고, 89%는 ‘화술을 따로 배워서라도 직장에서 인정받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듀오아카데미의 김유경 전임강사는 “비슷한 스펙, 콘텐츠 등을 갖춘 상황이라면 이를 말로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능력의 잣대로 쓰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스피치 열풍은 ‘소통’이 화두가 되는 한국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류춘렬 회장은 “현재 우리 사회는 보혁 갈등 등으로 첨예하게 갈라진 단체 간, 개인 간 문제를 해소하고 서로 원활히 대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통의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하는 때”라면서 “학자들을 중심으로 소통의 방법론을 진지하게 모색하기 시작하는 이때, 소통의 수단인 대화, 토론, 스피치 등으로 ‘말’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시대적 요구”라고 주장했다. 바야흐로 말 권하는, ‘말짱’의 시대다. 당신은 얼마나 준비돼 있는가.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유림(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