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에버렛 지음/ 윤영삼 옮김/ 꾸리에 펴냄/ 476쪽/ 1만8000원
아니야, 집 떠나면 무조건 고생이지. 사서 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방에서 얼음물에 발 담그고 수박이나 먹는 게 낫겠다. 가를 떠나는 사람도, 집에서 뒹굴뒹굴하기로 결심한 사람도 저 멀리 브라질 중부 아마존 정글로 배낭을 메고 훌쩍 여행 떠나는 상상의 나래를 펴보는 건 어떨까. 종교, 문화, 언어 그리고 노엄 촘스키 등에 약간의 지적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 책이다.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미개한 아마존 어느 부족의 밤 인사말이 책 제목이다. 은 아마존 정글에 사는 피다한 원주민들의 경이로운 삶에 관한 기록을 담았다. 언어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저자가 30년 동안 자신의 삶을 바친 탐구와 탐험을 통해 밝혀낸 아마존의 놀라운 진실을 독자들은 마주할 수 있다. 다니엘 에버렛.
1951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약물과 마약에 빠지는 등 거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고등학교 때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를 본 뒤 영화에서처럼 언어학자가 되면 부자가 될 것 같아 언어학 공부를 시작했다. 18세에 기독교 선교사의 딸과 결혼한 그는 평생 선교사로 살기로 약속하고 성경을 문맹사회 언어로 번역하는 국제복음 단체에 가입했다.
스물여섯에 아내와 세 아이를 데리고 아마존의 오지 피다한 마을에 들어가 지금까지 아마존 탐험을 지속하고 있다.
“나는 스물여섯 살에 피다한 마을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은 노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됐다. 그들에게 젊음을 바친 셈이다. 아마존에서 생활하는 동안 몇 번이나 말라리아에 걸리기도 했고, 사람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한때 나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던 피다한 사람들도 이제 나만큼 나이가 들었다. 그들은 지금, 나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을 만큼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동물 울음소리처럼 들리는 피다한족 언어를 처음으로 접한 그는 이들의 말이 세상 어떤 언어와도 연관성이 없는 별개의 언어이며, 기존의 어떤 언어학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말이라는 사실 앞에서 막막함을 경험한다. 피다한 말에는 숫자가 없고 색깔을 표현하는 어휘가 없다. 그는 준비해간 언어이론 교과서들이 피다한 마을에서는 무용지물임을 깨닫는다.
특히 ‘보편문법-언어본능’ 가설에 입각한 노엄 촘스키 류의 형식주의 언어학이 지닌 맹점과 해악을 발견하면서 이들 이론에 대한 비판의 선봉에 서게 된다. 저자는 아마존의 살아 꿈틀거리는 언어 실례를 통해 이성의 신비주의에 사로잡힌 이론들의 허구를 폭로한다. 교사로서 피다한 마을에 온 저자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랜 선교에도 단 한 사람도 개종하지 않은 ‘고집불통’이었다.
현대문명의 유용한 도구들조차 거부하는 ‘자존심.’ 그렇다면 신들로 넘쳐나는 ‘우리’의 문명은 정녕 행복한가. 신도 진리도 없는 유쾌한 세상…. 다니엘은 아마존 마이시 강변 원주민 마을에서 그것을 발견했다(MIT 두뇌인지과학부 연구원들이 피다한 마을을 방문, 그들을 검사하고 난 뒤 결과를 발표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조사한 사람들 중 피다한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나타났다고 했다. 판단의 바탕이 된 지표는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는 피다한 사람들의 웃는 시간 평균을 측정, 이 수치를 이전에 측정한 다른 집단의 수치와 비교하는 것. 이 연구원들은 “앞으로도 피다한 사람들을 이길 만한 집단은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마존 탐험 30년. 시간이 흐를수록 자유롭고 행복한 피다한 사람들의 삶에 매혹된 다니엘은 마침내 자신이 전도하려 했던 신에 대한 믿음을 포기했다. 오히려 전도를 당한 것이다. 그리고 이 충격적인 고백으로 그는 이혼을 감수해야 했다.
이 책은 아마존 정글에서 겪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이자, 인류학적이며 언어학적인 지적 탐험담이다. 또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전혀 다른 문화를 통해 우리의 삶과 가치관, 세계관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환상적인 회고록이다. 올여름 휴가엔 현대문명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나 양식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오지 사람들, 오랜 선교에도 단 한 사람도 개종하지 않은, 자신들만의 삶의 가치와 문화를 지닌 독특한 부족을 만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