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가 충남도민이거던요. 홍성군 광천읍 광천리 삼봉마을. 아부지는 가축 장사를 허셨는데, 뭐 볼 것 없는 직업이지만 우리 7남매헌테는 둘도 없는 분이셨어요. 맏아들인 저를 무척 이뻐하셨거든요. 자전거에 태우고 다니면서 어디든 인사를 시키셨어요. 덕분에 어른 뫼시는 법, 초상 치르고 밥 먹는 예절 같은 것들은 확실허니 익힐 수 있었지요.
아부지는 농악을 치셨어요. 광천 쪽에서는 우리 동네 농악대가 젤로셌어요. 아부지는 장구잽이였는데 저는 그게 되게 자랑스러웠어요. 어머니도 신명 있는 분이라 지가 나중에 아주 풍류길로 나선다 했을 때도 두 분 다 “잘 되았다” 박수 쳐주셨지요. 자식이 잘 노는 게 그냥 보기 좋았던 겨.
중학 마치고 고향을 떴어요. 은행원 되겠다고 서울 선린상고에 진학했지요. 그리고 이때껏 40년을 서울서만 살았어요. 인생살이 간난신고, 입에 풀칠하기 힘든 때도 있었지만 추석 설 명절 때는 꼭꼭 고향을 찾았어요. 서울역에서 밤새 줄 서 겨우 야간 완행표를 사고, 동서울터미널에서 낡은 버스에 짐짝처럼 실려가면서도 그저 고향 가까워지는 것이 고맙고 즐거웠지요. 아부지는 또 참 재미가 있으셔 금방 왔다, 쉽게 왔다 하면 외려 싱겁다 하셨어요. 한 10시간 걸렸다, 아주 죽을 고생을 했다 해야 푸짐허다고 생각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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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노래를 세상 최고의 명연주인 양 집중해 듣고 계신 부모님.
98년 아부지가 돌아가셨어요. 지는 그때 2집 녹음을 하고 있었거든요. 머릿곡 제목이 ‘기침’이었는디, 아, 아버님 병명이 폐암인 거예요. ‘돌아누워도 돌아누워도 찾아오는/ 환장할 기침은 언제나 끝이 나려는지/ 삶은 언제나 가시 박힌 손톱의 아픔이라고/ 아무리 다짐을 놓고 놓아도…’ 그렇게 우리 아부지가 먼 길 가시는데, 앞이 깜깜하고 하늘이 무너지더라고.
3년 전에는 어무니도 돌아가셨어요. 추석 때 고향 집에 갔는데 늘 한결같던 음식 맛이 암만 해도 이상한 거여. 병원 가니 하는 말이 췌장암이라고….
아부지 돌아가시고 첫 추석 때 고향 역전에서 울었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 받쳐놓고 기다리시던 아버지가 이젠 거기 없는 거여. 엄마, 아부지 없는 고향은 고향이라도 고향이 아니구나. 한 세상이 다 지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