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신 배구선수 조혜정.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의 100m와 200m에서 남녀 통틀어 단신 선수가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육상 단거리는 키와 몸무게, 상체와 하체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야 좋은 기록이 나온다는 게 통설이다. 그래서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단거리를 주종목으로 하는 스프린터들은 얼굴만 받쳐주면 곧바로 모델이라는 소리를 듣는 장신이었다. 그런데 일반 여성들보다도 작은 5척 단구가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육상 100m에서 동메달을 따기도 한 캠벨은 ‘비운의 흑진주’ 멀린 오티가 이루지 못했던 자메이카 여자육상 금메달 징크스를 말끔히 씻어냈다. 슬로베니아로 귀화한 자메이카 출신의 오티는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서부터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까지 6차례나 나갔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테네올림픽에 슬로베니아 선수로 출전한 멀린 오티는 키 180cm가 넘는 모델급 선수다. 자메이카가 금메달을 예상했던 남자육상 100m의 아사 포웰이 메달 획득에 실패한 직후라 캠벨의 금메달은 더욱 값져 보였다.
한국 남자육상 100m 기록은 1979년 멕시코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서말구가 기록한 10초34가 25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나 전자계시로 측정하기 전의 수동계시 기록까지 포함하면 키 168cm의 초단신 고 정기선씨가 68년 효창운동장에서 세운 10초3이 최고기록이다. 단신인 정기선씨의 피치가 얼마나 빨랐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152cm 캠벨 200m 금메달 감격
재미동포 세미 리는 올림픽 역사에서 가장 키가 작은 남자 금메달리스트 가운데 한 명이다. 키 157cm의 세미 리는 48년 런던올림픽 하이다이빙에서 금메달을 땄다. 아시아 출신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 금메달을 안긴 것이다. 세미 리는 4년 뒤에 열린 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해 올림픽 2연패에 성공했다. 160cm도 안 되는 선수가 절묘한 묘기를 보이자 당시 옛 소련 대표단이 비디오 필름을 찍으며 그의 기술을 연구하기도 했다.
72년 뮌헨올림픽에 옛 소련의 여자체조 대표로 출전한 17살의 올가 코버트는 체조에서 처음으로 ‘요정’이란 소리를 들었다. 키가 155cm밖에 되지 않아 ‘꼬마 요정’이라고 불린 것이다. 코버트는 몸무게도 38kg밖에 나가지 않는 인형급(?) 선수였다. 코버트는 뮌헨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따내 별명 값을 했다.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광선.
한국 올림픽 ‘복싱 출전사’에는 2개의 라이터 돌이 찬연히 빛난다. 88년 서울올림픽 복싱 플라이급에서 금메달을 딴 김광선과 68년 멕시코올림픽 라이트플라이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고 지용주씨다. 두 선수 모두 키가 160cm에 못 미친다. 이들은 키는 작지만 매섭고 투지 넘치는 복싱으로 상대 선수를 제압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맷집도 뛰어나 작지만 빛나는 라이터 돌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여자선수로는 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한국올림픽 구기종목 사상 처음으로 메달을 획득한 여자배구의 레프트 공격수 조혜정이 돋보인다. 조혜정은 주 공격수인 레프트 공격수이면서도 키가 164cm밖에 안 된다. 조혜정은 ‘나는 작은 새’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작은 키를 엄청난 점프력으로 보강했다. 아테네올림픽 여자배구 공격수 가운데 가장 작았던 최광희 선수이 174cm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혜정이 얼마나 작았는지 짐작될 것이다.
일본의 스포츠전문지 ‘닛칸 스포츠’는 9월2일 키 153cm에 불과한 시즈오카 고등학교 3학년 축구선수 나카무라가 J리그 비셀 고베에 입단한다고 보도했다. 나카무라는 키 153cm, 몸무게 47kg의 ‘초미니급’ 선수다. 하지만 비셀 고베는 나카무라가 테크닉이 좋고 돌파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일찌감치 점을 찍어놓고 있었다. 나카무라는 지난해 전 일본 청소년축구대회에 출전해서 오른쪽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시즈오카 고등학교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나카무라의 점프력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180cm대의 수비수들과 헤딩 볼을 다퉈도 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J리그에서 최단신 선수는 가시와 레이솔의 나카이 선수로 154cm였다. 나카무라가 나카이보다 키는 1cm 작고, 몸무게는 3kg 적게 나간다.
한국에서는 올해 초까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지낸 김진국의 키가 165cm로 국가대표 출신으로는 가장 작다. 60~70년대 국가대표 왼쪽 윙으로 활약한 김진국은 작지만 빠른 발을 이용해 상대팀 오른쪽으로 파고든 뒤 공격수인 차범근이나 김재한(192cm)에게 크로스를 올려 찬스를 만들곤 했다. 현역 선수로는 인천 유니콘스의 전재호 선수가 168cm, 전남 드래곤즈의 브라질 용병 카이오가 167cm로 작은 편에 속한다. 국가대표 가운데는 최성국이 가장 작다. 172cm로 등록돼 있지만 더 작다는 것이 통설이다.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의 키도 170cm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마치 역도선수 같은 두꺼운 가슴으로 치열한 몸싸움에서 살아남았다.
미국 남자프로농구(NBA) 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202cm다. 지구상 남자들의 평균신장보다 최소한 30cm 더 크다. 그런데 키가 겨우 168cm인 타이론 보그스는 전설적인 선수로 남아 있다. 보그스는 87년 웨이트포레스트 대학을 나와 그해 1차 12순위로 워싱턴 블리츠로 드래프트됐다. 88년에 샤롯 호네츠로 트레이드되었고, 이후 여러 팀을 전전하다 2001년 토론토 랩터스에서 10여년간의 선수생활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889경기에 출전해서 경기당 8.8득점, 7.6어시스트, 2.6리바운드, 그리고 0.54개의 스틸을 기록했다. 특히 2.6개의 리바운드를 했다는 게 불가사의하다. 이론상 타이론 보그스가 2m가 넘는 장신들 틈에서 리바운드를 할 확률은 거의 없지만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아냈기에 가능한 것이다. 보그스는 90년대 중반 농구스쿨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오기도 했고, 86년 스페인 세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는 포인트 가드로 출전해 미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NBA 현역 선수 가운데 최단신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얼 보이킨스다. 보이킨스의 키는 겨우 165cm로 보그스보다 3cm나 작고 몸무게도 60kg밖에 나가지 않는다. 미시간주립대학 출신으로 대학시절 평균 25득점 가까이를 기록하면서 명성을 날렸지만, 키가 작다는 이유로 NBA 하부리그인 NBDL에서 주로 뛰었다. 가끔씩 땜질용 선수로 NBA에서 뛰던 보이킨스가 유명해진 것은 지난 시즌 LA 클리퍼스에서다. 클리퍼스에서 제프 맥기니스의 백업으로 68게임 동안 게임당 평균 11.2분을 뛰며 4.1득점 2.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9월8일 일본 농구계는 새 역사를 썼다. 올해 23살인 다부세 유타가 피닉스 선즈에 입단한 것이다. 일본 출신으로는 8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오카야마 야스카카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지명된 적이 있지만 입단을 포기했기 때문에 다부세가 NBA 진출 1호다. 다부세는 중국의 왕즈즈 등 3명, 대만의 천신안, 그리고 한국의 하승진에 이어 6번째로 NBA에 진출한 아시아 선수다. 다부세는 일본 요코하마 출신으로 키가 175cm에 불과하다. 400명 가까운 NBA 전체 선수 가운데 세 번째로 작은 키. 다부세는 지난해 덴버 너기츠에서 훈련을 하다가 방출되었고, 7월 신인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여름리그인 로키마운틴리뷰에서 경기당 평균 3.8, 득점 2.5어시스트를 기록해 포인트 가드로 인정받았다.
109cm 가이델 빅리그서 볼넷 얻어
한국 프로농구에서는 이항범이 168cm의 작은 키로 전주 KCC에 2라운드 4순위(전체 14순위)로 드래프트된 적이 있다. 이항범은 7살 때부터 농구를 시작해 여의도중학교 시절 길거리 농구대회에서 준우승을 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항범은 농구부가 있는 홍대부중으로 스카우트되어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 홍대부고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후 성균관대 입학을 앞두고 꽉 짜인 스케줄이 싫다며 박차고 나온 뒤, 프로로 전향했으나 프로훈련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세계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키가 작은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가이델이다. 가이델의 키는 겨우 109cm였다. 그야말로 배트만한 선수. 그런데 이 선수가 메이저리그 공식기록에서 엄연히 볼넷 한 개를 기록하고 있다. 51년 8월19일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카디널스의 전신)는 홈구장인 스포츠맨스파크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경기를 했다. 이날은 연속경기가 열렸는데, 두 번째 경기 1회말 세인트루이스 공격 때 붙박이 1번 타자 프랭크 소시어 대신 가이델이 타석에 들어선다. 관중들은 처음엔 배트보이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 꼬마 선수가 타석에서 배트를 쳐들고 디트로이트 보브 케인의 투구를 기다리는 게 아닌가. 키가 109cm밖에 안 되는 데다 등번호도 ‘8분의 1’이라고 새긴 가이델이 들어서자 케인은 절반 정도로 줄어든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하지 못했다. 가이델은 스트레이트 볼넷을 얻었고, 여유 있게 1루로 걸어나간 뒤 대주자인 짐 델싱의 엉덩이를 툭 건드린 다음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이날의 ‘깜짝쇼’를 연출한 사람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구단주 빌 빅이었다. 현재 뉴욕 양키스의 괴물 구단주 스타인 브레이너의 ‘1950년대 판’이라고 할 수 있는 빅은 창단 50주년을 기념해 아무도 몰래 가이델과 계약했다. 빌 빅은 가이델을 클럽하우스로 데려올 때도 나무상자 안에 숨겨왔다고 한다. 메이저리그는 가이델 볼넷 사건 이후 이 같은 장난을 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