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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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길·민족의 길 영남·호남대로 이천리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4-09-23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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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길·민족의 길 영남·호남대로 이천리

    문경새재 옛길.

    길에는 그 길을 다니던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한(恨)과 눈물…. 사연이 없는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다. 만남의 설렘과 이별의 아픔이 세대를 유전(遺傳)하며 자신의 신화를 만들어가는 곳, 그래서 길은 그 자체가 역사이며 문화재다.

    우리에게는 역사로만 기억되는 잊혀진 길이 있다. 삼국시대 이후 수천년 민족의 대동맥 구실을 해온 옛길들. 선인들은 ‘가장 빠른 길’, 그 지방을 대표하는 ‘큰길’에 ‘대로(大路)’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뻗어 있던 구대로(九大路)가 바로 그것이다. 장원급제의 꿈을 안은 과거객들의 발길이 머물고, 생활에 찌든 보부상의 땀 냄새가 밴 대로에는 사람뿐 아니라 우마차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때문에 그 길 위에는 여인숙 구실을 하던 원(院)과 주막, 객주가 생겨났고, 말을 갈아타고 길을 관리하던 역(驛)이 설치됐으며, 외적들의 침략을 막는 산성(山城)이 세워졌다. 현재의 지명 가운데 ‘원’ 자가 붙은 곳(이태원, 노원, 장호원)과 주막거리, 구역터, 역말과 같은 지명을 가진 지역은 모두 옛 대로에 있던 곳이라고 보면 된다.

    상당 구간 원형 그대로 보존·농로나 지방도 형태로 남아

    역사의 길·민족의 길 영남·호남대로 이천리

    경남 양산시 원동면 서룡리 신주막 옛길. 한 할머니가 낙동강 둑 벼랑 위의 이 길에서 죽은 남편을 그리며 울고 있다.

    구대로 중에서도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영남대로와 호남대로(삼남대로)는 민족 이동의 근간이자, 왜군의 침탈을 막는 가장 중요한 대로였다. 서울 한양을 출발해 용인-충주-문경-상주-구미-대구-청도-밀양-삼랑진-양산-부산 동래에 이르는 영남대로의 ‘대동지지’ 원래 이름은 동남지동래사대로(東南至東萊四大路), 일명 동래로라고도 불리며 950리 길 위에 있던 옛 역과 원 이름의 절반 정도는 마을의 지명으로 남아 있다. 한양에서 전남 해남 우수영까지의 호남대로는 일명 해남로로 불리며, 구대로 중에선 팔대로(八大路)에 해당한다. 한양 동작진-남태령-과천-안양-수원-평택-천안-공주-논산-김제-정읍-장성-나주-영암-해남에 이르는 970리의 대장정이다.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들의 통행로가 바로 영남대로였으며, 과거 급제한 이몽룡이 어사가 되어 춘향을 찾은 길이자 추사 김정희 선생의 제주도 유배길이 호남대로였다. 특히 영남대로는 왜군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군사도로로 임진왜란 이후 이 길을 따라 읍성들이 강화되고 길이 정비됐다. 정비된 길 가운데 협곡의 산허리 벼랑을 깎아 덧붙이거나 축대를 쌓아 길을 튼 잔도(棧道)도 세 군데나 됐다. 이 길은 위험하고 좁아 한 사람이 비켜서야 갈 수 있는 곳이 대부분. 문경의 관갑천잔도와 밀양의 작천잔도, 양산의 황산천잔도가 바로 그곳이다. 부사나 관리의 행차가 있을 때는 천민이 비켜서다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는 일도 다반사였다 한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산업화와 경지정리의 와중에도 이 두 대로의 구간 중에는 아직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거나 농로나 지방도, 국도의 형태로 남아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일찍이 옛길의 문화재적 가치를 알아본 문경시는 문경새재를 비롯해 최근에는 관갑천잔도와 인근의 석현성을 복원했으며, 인근의 고모산성까지 손을 봤다. 문경시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표석을 세우는 등 옛길 복원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역사의 길·민족의 길 영남·호남대로 이천리

    전남 해남의 대둔산 길

    이에 ‘주간동아’는 역사와 이야기 속으로 사라진 영남대로와 호남대로를 다시 복원해 걸어보기로 했다. 모든 길을 한 번에 다 걷는 것은 힘든 만큼 옛길 가운데 주변 풍광이 수려하고, 보존 상태가 좋은 12곳을 선정해 관련 지도와 가는 길, 주변 관광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들은 이미 두 대로를 걸은 사람들(추석 특집2 다시 걷는 우리 옛길 참조)이 이구동성으로 추천한 곳으로 걷기에도 좋지만 그 길을 갔던 조상들의 애환과 사연이 숨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는 등산로나 오솔길, 농로로 변한 옛길을 걸어가다 보면 진정한 답사의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옛길을 모두 걷고 싶은 사람들은 본지 특집 기사와 연계된 별책부록 ‘다시 걷는 우리 옛길’ 브로마이드의 대동여지도와 옛길의 현재 위치를 참조하면 큰 도움이 된다. 별책부록 브로마이드에는 ‘주간동아’가 엄선한 8곳의 ‘대로 옛길’의 자세한 약도, 사진과 함께 고속도로 주유소 정보, 대동여지도, 현재 위치 정보가 함께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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