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9일 인천 월미도에서 현장 검증을 하고 있는 유영철씨.
연쇄살인범 유영철씨에 대한 경찰대 표창원 교수(범죄심리학)의 말이다.
실제로 외국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을 보면 정신적으로 이상이 없는데도 상상하기 힘들 만큼 엽기적인 행각을 보여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표교수는 “피해자의 머리에 주사기로 중금속을 주입한 사례도 있다. 이렇게 하면 뇌기능이 서서히 마비되면서 의식은 살아 있으되, 몸은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 그런 상태에서 뇌나 심장을 도려내는 행위를 자행했다. 그러나 그 범인 역시 ‘정상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정신이상이다, 아니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 법은 심신상실 및 심신미약만을 범죄에 대한 책임성 경감 사유로 본다. 이는 정신질환에 의해서건, 약물에 의해서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것을 말한다. 그러나 유씨는 판단력을 잃기는커녕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치밀하고 꼼꼼한 방법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은폐했다.
그럼에도 유씨를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까지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림대 조은경 교수(심리학)는 “성격장애라고 보는 것이 옳다”라고 말했다. “성격장애 환자는 평소 생활에선 문제점이나 심각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죠. 타인이 보기엔 별 문제가 없는데 실은 마음에 큰 병이 든 겁니다.”
조교수 또한 유씨가 정신병력으로 인해 죄를 감면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중요한 건 살인을 할 때 통제할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을 느꼈느냐 하는 것인데 현재로선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오히려 소년 시절에 이미 범죄에 손을 댄 것을 보면 기질적으로도 얼마간 범죄 성향을 타고났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런 인물이 이혼 같은 사회적 좌절을 겪으면 범죄를 통해 맺힌 것을 푸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교수는 유씨가 범죄를 저지르면서 자기성취감 내지는 굉장히 자극적인 쾌감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의견도 있다. 경기대 대학원 이수정 교수(범죄심리학)는 “유씨는 간질 환자다. 만일 간질로 인해 뇌의 감정중추부가 손상됐을 경우 쾌감은 물론 공포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보통 사람들은 비명을 들으면 소름이 끼치지만 감정중추부가 손상된 환자는 아무 동요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극도로 잔인한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수 있는 것이지요. 이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쾌감이 아닙니다. 오히려 호기심에 가깝다고 할까요.”
정신병력으로 죄 감면받을 가능성 거의 없어
그렇다면 유씨가 앓고 있다는 간질과 정신질환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연세대 의대 이병인 교수(신경과)는 “간질 환자가 지병과 불우한 환경 등으로 인해 성격장애를 갖게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우울증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간질이 정신질환을 불러온다는 말은 그저 ‘설’일 뿐이다. 연관관계가 밝혀진 바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간질로 인해 정신질환이 왔다고 이야기하려면 상당한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정신분열증을 동반한 간질 환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유씨가 가족을 소재로 쓴 시 등을 예로 들며 “그도 비뚤어진 사회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식의 동정표를 던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표창원 교수는 “가족을 배려하는 것 또한 이기심의 발로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사회에 대한 제어할 수 없는 증오가 동기라면 먼저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입힌 이들부터 살해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전 부인이나 전 동거녀 등이지요. 하지만 유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경우 곧바로 자신이 의심받게 되는 데다 아내가 없으면 아들이 걸리고, 애인을 없애고 나면 아직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이 다치게 될 테니 피한 겁니다. 대단히 이기적인 판단을 한 거지요. 게다가 거의 ‘학습형 범죄자’ ‘연구형 범죄자’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치밀한 모습을 보여줬어요.”
표교수는 “유씨는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과시적인 사람이다. 자기 범죄를 부풀리거나, IQ를 자랑하거나, 신창원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등의 발언이 증거”라고 지적했다. 이수정 교수도 “마사지업소 여성에 대한 증오로 그들만 골라 살해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며 “그보다는 여성이라 신체적으로 약하고, 직업상 접근이 쉽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