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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에 흥미가 있다면 당신은 분명한 디지털 세대다. 필름카메라를 대체하며 등장한 디지털카메라(이하 디카)는 디지털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며 카메라론을 자연스럽게 사회의 주요 담론으로까지 부각시켰다. 카메라 브랜드는 디카 유저(user•사용자나 수요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가장 명징한 도구로, 같은 브랜드를 쓴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 동일하다는 의미인 셈이다. 자신의 ‘눈’을 찾기 위한 국내 디카 유저들의 브랜드에 대한 집착은 거의 광적일 정도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품질 논쟁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소니-칼짜이즈’ ‘파나소닉-라이카’ ‘카시오-펜탁스’ ‘교세라-콘탁스’ 등 일본 전자회사와 독일 렌즈회사의 이상적인 결합은 주문처럼 반복된다. 신제품이 출시되면 일본의 기술자까지 초청해 품평회를 열고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쏟아낸다. 이 같은 열기에 대해 일각에서 “페티시즘의 한 종류다”는 비난까지 제기될 정도니, 디카는 젊은 세대의 대표 장난감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전 세계 디카 시장 매년 100%씩 성장 … 현재는 일본이 주도
오랜 기간 어른들의 장난감 노릇을 해온 ‘오디오’나 ‘자동차’에 비해 디카만의 뚜렷한 장점이라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와 끊임없는 신제품 출시, 그리고 활성화된 중고시장으로 인해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브랜드를 재빨리 찾아낼 수 있다는 점. 또 디카는 소비의 도구이자 문화생산의 도구라는 점이다. 카메라만큼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제품이 또 있을까. 한 번 써보고 실망한 브랜드에는 뒤도 안 돌아보고 ‘기변(기기 변경)’을 결정해버리지만, 한 번 감동한 브랜드에는 평생의 사랑을 약속하곤 한다. 그 근간을 이루는 것이 역동적인 활동을 펼치는 디카 동호회다. 주말 서울 근교의 유원지 곳곳은 출사(出寫) 나온 한 무리의 아마추어 사진사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는 수백만 디카 유저들이 자신의 브랜드 자존심을 강조하며 한판 성능경쟁을 벌이기까지 한다.
한편에서는 아쉬운 목소리도 터져나온다. 일본경제 부활의 저변에는 디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절대로 과장이 아니다.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TV, DVD 리코더와 함께 디지털 분야의 3가지 신기(神器)로 꼽히는 디카 분야에서는 일본의 독점체제(캐논-올림푸스-니콘)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자제품 강국인 대한민국의 아쉬움으로 이어진다(최근 삼성 케녹스가 1류 브랜드로 성장했고 LG전자 역시 디카 시장 진입을 선언했지만 마니아층의 신뢰를 얻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디카 시장이 얼마나 거대하냐고? 알기 쉽게 숫자로 감을 잡아보자. 전 세계 디카 시장은 2001년부터 급속히 커져 매년 100%씩 성장했다. 올해 전 세계 연간 판매량이 5000만대에 이를 것이며, 2006년에는 750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판매량만 해도 올해만 120만대로 연간 5000억원이 넘는 거대한 시장이다. 그러니 전 세계 20조원 가까이 되는 시장을 일본이 싹쓸이한 셈이다.
그러나 국내 디카 유저들의 관심은 국적이 아닌, 어떤 브랜드가 자신의 감성을 자극하는 개성 있는 화질을 나타내는가일 뿐. 결국 디카 시장의 총아로 떠오른 한국에서 네티즌들의 신뢰를 얻으면 세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자리잡았다. 이에 모든 카메라 브랜드들은 한국 네티즌들의 사랑을 얻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중이다.
소니 속도, 파나소닉 가격, 삼성 A/S ‘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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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특정 사진기가 다른 사진기보다 더 좋다는 판단은 막연한 것일 때가 많다. 기계는 사람이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임은 기계를 다루는 주인에게 있다고 해야 옳다. 어떤 사람들은 브랜드에 정치색을 입히기도 하고, 문화적 코드를 덧씌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쫛쫛제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보수적’이고 ‘현실 도피형’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식이다. 그러나 디카는 디카일 뿐 오로지 자신의 취향을 믿고 따르면 된다. 자신에게 맞는 브랜드를 선택했다면 이른바 ‘내공’을 쌓는 일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