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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거대한 해일을 동반한 이세돌 태풍은 한때 이창호라는 고도(古都)를 삼켜버릴 듯했다. 이세돌은 LG배에서 이창호 9단을 3대 1로 꺾으며 세계 챔프에 오른 데 이어 후지쓰배에서까지 우승, 단숨에 2개의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며 이창호 시대를 끝내는 듯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자신조차 놀랄 정도의 너무 빠른 정상 정복이 오히려 문제였던지 이후 이세돌의 이름 석자는 무대 전면에서 보이지 않았다. 자만의 결과로 몰아치는 사람도 있었으나 목표를 이룬 뒤에 급격히 밀려드는 공허감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부진을 털고 재기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 38기 왕위전 도전기. 그리고 이세돌은 죽지 않았다는 듯 멋지게 서전을 장식했다. 흑 로 끝내기를 서두르는 장면에서 백1로 덤벙 뛰어들었다. 일종의 흔들기이자 승부수다. “이러한 수야말로 이창호의 수읽기 사전에 없는 이세돌 특유의 초식”이라고 최명훈 9단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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