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한반도는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였다. 성별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한 몸이 되어 들끓어올랐다. 꼭 15년 전 그날 넥타이 부대와 학생들이 ‘직선 쟁취’ ‘호헌 철폐’를 외치며 6월항쟁을 시작했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보다 좀더 전인 80년에는 계엄이라는 서슬 퍼런 상황에서도 ‘독재 타도’의 구호가 넘치던 거리였다.
바로 그 자리에서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가 넘쳐흘렀다. 마치 해일처럼, 그 누구도 막지 못할 기세로 광화문과 시청에서 시작된 ‘필승의 염원’은 온 나라를 덮어갔다. 그것은 거대한 씻김굿이었다. 설움과 분노와 억압과 탄압의 세월을 녹여내고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한국의 역동성’ ‘다이내믹 코리아’의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었다. 신명이 무엇인지, 한바탕 대동굿이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 놀라면서 그 우연의 일체감을 전 세계에 타전하고 있었다.
“8·15 광복 이후 민족적 일체감 느낀 첫 순간”
대 미국전이 벌어진 6월10일 광화문의 30만명, 상암동 평화의광장에 모인 7만명, 여의도 시민공원의 3만명 등 거리에 나선 전국 100만 응원단의 열기 앞에서는 굵은 빗줄기도 아무 장애가 되지 않았다.
온 나라의 시선이 오직 월드컵과 한국팀의 경기에 집중됐고, 그 밖의 일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사람들은 한국의 ‘16강 진출’을 위해 눈물 흘렸고, 목이 쉬었으며, 얼싸안았다. 방송에서는 ‘민족’ ‘애국심’ 등의 단어들이 유난히 많이 나온다.
누군가는 “8·15 광복 이후 우리 민족이 이렇게 하나로 민족적 일체감을 느껴본 순간은 처음일 것”이라고 외쳤고, 네티즌과 응원단은 “월드컵과 축구는 우리의 종교이자 신념이고, 히딩크는 우리의 교주”라고 입을 모았다. 비록 우스갯소리지만 “한국팀이 4강에 들면 광화문에 히딩크 동상을 세우고 그를 귀화시킨 뒤 대통령에 출마시키자”는 극단적 표현도 눈에 띈다. 그의 한국 이름은 희동규(喜東奎·기쁜 동방의 별), ‘상암 희씨’의 시조란다. 실제 부산시는 부산시내에 히딩크 동상 건립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드컵 한국전의 열기, 그리고 민족적 일체감. 과연 이것은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인가, 아니면 집단적 최면 혹은 광기인가? 모든 사회적 가치가 축구 하나로만 흡입되는 ‘블랙홀의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정신의학자들은 이런 집단적 획일화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히틀러의 군중 동원, ‘뉴키즈 온 더 블록’의 공연 때 일어났던 집단 최면과 암시의 동인이나 결과만 다를 뿐, 나타난 현상은 똑같다.” 대부분 정신의학자들은 월드컵 기간중 우리 국민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심상치 않은’ 현상을 집단 최면으로 확진한다. ‘일정한 집단의 구성원이 어느 한 곳에만 몰두해 그 방향으로만 인식이 증가하고 주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줄어드는 현상’을 가리키는 집단 최면이 국민 전반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
대한최면의학회 총무이사인 이정식 박사(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이를 고속도로에서의 운전에 비유한다. “다 같이 한 길만 보고 가다 보면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왔는지, 또 자신이 운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깜빡 잊어버리게 되는 현상, 바로 그게 일반적인 최면 현상이죠.” 하지만 이박사는 “집단 최면에는 반드시 최면의 대상이 최면에 걸릴 준비(환경 조성)가 되어 있고, 암시를 불어넣는 주체가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이 이런 집단 최면에 걸린 이유는 무엇이고, 집단 최면을 건 주체는 누구인가. “한국인은 수많은 외침과 일제의 강점, 독재시대, IMF 관리체제를 거쳐오며 억눌림의 한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왔다. 억눌림을 발현할 곳을 찾던 우리 민족은 결국 월드컵과 축구, 애국심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순천향 의대 정신과 우성일 교수)
“우리 국민은 2년 전부터 TV와 신문 등 각종 매스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암시를 받아왔다. ‘16강에 진출해야 한다. 이것이 애국심이고 민족단결의 지름길’이라는 강렬한 메시지가 반복되면서 국민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내재적 가치관으로 받아들였다. 한국팀이 폴란드전에서 이기자 이는 하나의 자부심과 성취감으로 고취됐고, 16강 진출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됐다.”(이정식 박사)
집단 최면 형성에는 축구라는 운동의 공격적 본질도 큰 몫을 했다. “축구는 인간의 심리 속에 잠재된 공격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운동이다. 평상시 억압된 심리와 불만은 공의 스피드와 선수들의 움직임, 발길질, 거친 몸싸움을 통해 대리만족을 취한다. 실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중 자신의 불만을 발길질로 푸는 사람들이 많다. 축구가 전쟁으로 비교되는 것도 축구가 원시 샤먼사회의 부족간 싸움을 그대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의 기원은 그리스 사람들이 해골을 차고 다닌 데서 비롯됐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공을 먹이 삼아 쫓고 있는 수렵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문명화된 사회에 가장 원시적으로 남아 있는 야성이 뭉쳐진 운동이 바로 축구다.”
정신과 전문의 김대혁씨(최면의학 전공)는 이런 점에서 “비단 우리 국민만 축구에 의한 집단 최면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다만 우리 국민의 경우 집단 최면의 유인 재료로 쓰인 테마가 ‘애국심’이었기 때문에 강한 민족적 일체감을 주고 있을 뿐이라는 것. “집단 최면이 광기에 다다르고 질환의 단계에 가려면 히틀러처럼 그 암시의 동기가 불순하고 결과가 폭력적이어야 하는데, 현재의 우리 국민은 그 집단 최면 속에서 카타르시스와 일체감, 안정감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지한(知韓) 인사인 제프리 존슨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그의 책 ‘나는 한국이 두렵다’에서 “한국에선 언제나 활기차게 무슨 일인가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은 그 활기가 지나쳐 사회 전체가 불안정해 보이거나 사람들 모두가 붕 떠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나는 그런 불안정함 속에서 ‘인터넷 코리아’의 가능성을 엿본다”고 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최장집 교수는 “월드컵을 계기로 세계평화가 국제 정치질서의 기본원리로 정착되고 국가간 상호공존과 협력을 강화하는 노력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가 되길 꿈꾸어 본다”고 미래지향적인 결과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런 분석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월드컵은 박정희 정권의 의도적·체제경쟁적 육성정책이 낳은 ‘박스컵’이 세계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월드컵은 애국심의 형태로 국가의 힘을 과시하는 전쟁체험의 장일 뿐이다.”(황병주·한양대 강사·사회평론가)
문학평론가 손경목씨는 월드컵을 한 달 남겨놓은 나라에서 국내 프로축구 중계방송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던 점을 지적한다. “우리 방송사들이 회사 차원에서 월드컵에 열광하는 까닭은 축구에 대한 애정이나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막대한 광고로 인한 수익, 즉 돈이 되기 때문이다. 축구에 대한 사랑이 엉뚱한 사람들의 배를 불려주는 한편, 축구가 가진 가치의 실종, 더 나아가 오늘의 사회에 간신히 서식하고 있는 인간다움의 절멸을 본의 아니게 도울 가능성이 있다.” 우리 국민이 집단 최면에 걸린 것이 맞다면, 그 최면의 유인 동기가 불순하고 상업적이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런 집단 최면이 어떤 불순한 계기나 선동이 주어질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정신의학자들은 버스 위에 올라가 태극기를 흔들거나 승용차의 문을 부수는 등 사회적 일탈행위가 용인되는 분위기에서 어떤 촉발인자, 예를 들어 편파판정이나 선동세력이 있다면 군중들은 한순간에 ‘훌리건’으로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집단 최면에 걸린 군중은 자의식이 약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부의 분노나 일탈행위를 무조건적으로 따라 하게 되죠. 모든 사람이 일체감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가능하죠. 그때부터는 최면상태가 아니라 광기, 즉 정신질환의 상태로 돌입하는 겁니다.”(이정식 박사)
정신의학자들은 “전 국민적으로 형성된 축구 열기는 어떻게 보면 축구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라기보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만큼 그 후유증은 클 수밖에 없다. 집단 최면은 일시적 현상이기 때문에 곧 사라지겠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그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제 월드컵이 끝난 후를 걱정해야 할 때가 왔다.
바로 그 자리에서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가 넘쳐흘렀다. 마치 해일처럼, 그 누구도 막지 못할 기세로 광화문과 시청에서 시작된 ‘필승의 염원’은 온 나라를 덮어갔다. 그것은 거대한 씻김굿이었다. 설움과 분노와 억압과 탄압의 세월을 녹여내고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한국의 역동성’ ‘다이내믹 코리아’의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었다. 신명이 무엇인지, 한바탕 대동굿이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 놀라면서 그 우연의 일체감을 전 세계에 타전하고 있었다.
“8·15 광복 이후 민족적 일체감 느낀 첫 순간”
대 미국전이 벌어진 6월10일 광화문의 30만명, 상암동 평화의광장에 모인 7만명, 여의도 시민공원의 3만명 등 거리에 나선 전국 100만 응원단의 열기 앞에서는 굵은 빗줄기도 아무 장애가 되지 않았다.
온 나라의 시선이 오직 월드컵과 한국팀의 경기에 집중됐고, 그 밖의 일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사람들은 한국의 ‘16강 진출’을 위해 눈물 흘렸고, 목이 쉬었으며, 얼싸안았다. 방송에서는 ‘민족’ ‘애국심’ 등의 단어들이 유난히 많이 나온다.
누군가는 “8·15 광복 이후 우리 민족이 이렇게 하나로 민족적 일체감을 느껴본 순간은 처음일 것”이라고 외쳤고, 네티즌과 응원단은 “월드컵과 축구는 우리의 종교이자 신념이고, 히딩크는 우리의 교주”라고 입을 모았다. 비록 우스갯소리지만 “한국팀이 4강에 들면 광화문에 히딩크 동상을 세우고 그를 귀화시킨 뒤 대통령에 출마시키자”는 극단적 표현도 눈에 띈다. 그의 한국 이름은 희동규(喜東奎·기쁜 동방의 별), ‘상암 희씨’의 시조란다. 실제 부산시는 부산시내에 히딩크 동상 건립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드컵 한국전의 열기, 그리고 민족적 일체감. 과연 이것은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인가, 아니면 집단적 최면 혹은 광기인가? 모든 사회적 가치가 축구 하나로만 흡입되는 ‘블랙홀의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정신의학자들은 이런 집단적 획일화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히틀러의 군중 동원, ‘뉴키즈 온 더 블록’의 공연 때 일어났던 집단 최면과 암시의 동인이나 결과만 다를 뿐, 나타난 현상은 똑같다.” 대부분 정신의학자들은 월드컵 기간중 우리 국민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심상치 않은’ 현상을 집단 최면으로 확진한다. ‘일정한 집단의 구성원이 어느 한 곳에만 몰두해 그 방향으로만 인식이 증가하고 주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줄어드는 현상’을 가리키는 집단 최면이 국민 전반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
대한최면의학회 총무이사인 이정식 박사(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이를 고속도로에서의 운전에 비유한다. “다 같이 한 길만 보고 가다 보면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왔는지, 또 자신이 운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깜빡 잊어버리게 되는 현상, 바로 그게 일반적인 최면 현상이죠.” 하지만 이박사는 “집단 최면에는 반드시 최면의 대상이 최면에 걸릴 준비(환경 조성)가 되어 있고, 암시를 불어넣는 주체가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이 이런 집단 최면에 걸린 이유는 무엇이고, 집단 최면을 건 주체는 누구인가. “한국인은 수많은 외침과 일제의 강점, 독재시대, IMF 관리체제를 거쳐오며 억눌림의 한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왔다. 억눌림을 발현할 곳을 찾던 우리 민족은 결국 월드컵과 축구, 애국심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순천향 의대 정신과 우성일 교수)
“우리 국민은 2년 전부터 TV와 신문 등 각종 매스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암시를 받아왔다. ‘16강에 진출해야 한다. 이것이 애국심이고 민족단결의 지름길’이라는 강렬한 메시지가 반복되면서 국민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내재적 가치관으로 받아들였다. 한국팀이 폴란드전에서 이기자 이는 하나의 자부심과 성취감으로 고취됐고, 16강 진출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됐다.”(이정식 박사)
집단 최면 형성에는 축구라는 운동의 공격적 본질도 큰 몫을 했다. “축구는 인간의 심리 속에 잠재된 공격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운동이다. 평상시 억압된 심리와 불만은 공의 스피드와 선수들의 움직임, 발길질, 거친 몸싸움을 통해 대리만족을 취한다. 실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중 자신의 불만을 발길질로 푸는 사람들이 많다. 축구가 전쟁으로 비교되는 것도 축구가 원시 샤먼사회의 부족간 싸움을 그대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의 기원은 그리스 사람들이 해골을 차고 다닌 데서 비롯됐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공을 먹이 삼아 쫓고 있는 수렵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문명화된 사회에 가장 원시적으로 남아 있는 야성이 뭉쳐진 운동이 바로 축구다.”
정신과 전문의 김대혁씨(최면의학 전공)는 이런 점에서 “비단 우리 국민만 축구에 의한 집단 최면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다만 우리 국민의 경우 집단 최면의 유인 재료로 쓰인 테마가 ‘애국심’이었기 때문에 강한 민족적 일체감을 주고 있을 뿐이라는 것. “집단 최면이 광기에 다다르고 질환의 단계에 가려면 히틀러처럼 그 암시의 동기가 불순하고 결과가 폭력적이어야 하는데, 현재의 우리 국민은 그 집단 최면 속에서 카타르시스와 일체감, 안정감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지한(知韓) 인사인 제프리 존슨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그의 책 ‘나는 한국이 두렵다’에서 “한국에선 언제나 활기차게 무슨 일인가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은 그 활기가 지나쳐 사회 전체가 불안정해 보이거나 사람들 모두가 붕 떠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나는 그런 불안정함 속에서 ‘인터넷 코리아’의 가능성을 엿본다”고 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최장집 교수는 “월드컵을 계기로 세계평화가 국제 정치질서의 기본원리로 정착되고 국가간 상호공존과 협력을 강화하는 노력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가 되길 꿈꾸어 본다”고 미래지향적인 결과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런 분석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월드컵은 박정희 정권의 의도적·체제경쟁적 육성정책이 낳은 ‘박스컵’이 세계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월드컵은 애국심의 형태로 국가의 힘을 과시하는 전쟁체험의 장일 뿐이다.”(황병주·한양대 강사·사회평론가)
문학평론가 손경목씨는 월드컵을 한 달 남겨놓은 나라에서 국내 프로축구 중계방송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던 점을 지적한다. “우리 방송사들이 회사 차원에서 월드컵에 열광하는 까닭은 축구에 대한 애정이나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막대한 광고로 인한 수익, 즉 돈이 되기 때문이다. 축구에 대한 사랑이 엉뚱한 사람들의 배를 불려주는 한편, 축구가 가진 가치의 실종, 더 나아가 오늘의 사회에 간신히 서식하고 있는 인간다움의 절멸을 본의 아니게 도울 가능성이 있다.” 우리 국민이 집단 최면에 걸린 것이 맞다면, 그 최면의 유인 동기가 불순하고 상업적이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런 집단 최면이 어떤 불순한 계기나 선동이 주어질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정신의학자들은 버스 위에 올라가 태극기를 흔들거나 승용차의 문을 부수는 등 사회적 일탈행위가 용인되는 분위기에서 어떤 촉발인자, 예를 들어 편파판정이나 선동세력이 있다면 군중들은 한순간에 ‘훌리건’으로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집단 최면에 걸린 군중은 자의식이 약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부의 분노나 일탈행위를 무조건적으로 따라 하게 되죠. 모든 사람이 일체감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가능하죠. 그때부터는 최면상태가 아니라 광기, 즉 정신질환의 상태로 돌입하는 겁니다.”(이정식 박사)
정신의학자들은 “전 국민적으로 형성된 축구 열기는 어떻게 보면 축구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라기보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만큼 그 후유증은 클 수밖에 없다. 집단 최면은 일시적 현상이기 때문에 곧 사라지겠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그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제 월드컵이 끝난 후를 걱정해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