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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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상상하는 동물이다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0-14 14: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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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상상하는 동물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대니얼 J. 부어스틴은 ‘창조자들’(The Creators)로 자신의 역사서 3부작을 완성했다. 특히 ‘창조자들’은 내용 면에서 ‘발견자들’과 대구를 이루는 책이다. 그는 책 서문에서 “발견자들이 환영(幻影), 그 가운데서도 지식의 환영을 정복해 나간 이야기라면 이 책은 새로이 창조된 비전(그리고 환영)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지식의 추구가 인간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여러 길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는 상상력의 예술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았던 것이다.

    이 책에서 부어스틴은 백과사전적 지식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현학으로 독자를 주눅 들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하게 풀어간다. 연대기 순으로 왕조의 역사나 문예사조, 주요 인물을 소개하는 기존의 역사 서술방식이 순서대로 먹어야 하는 코스요리라면, ‘창조자들’에서 부어스틴은 일품요리 방식을 시도했다. 인도의 ‘베다’에서 현대 영화까지 수많은 이야기 재료들을 가지고 창조, 이미지, 불멸, 내세, 희극, 르네상스 미술, 음악, 시간과 공간 등 다양한 일품요리를 선보이는 역사 요리사. 그의 맛깔스러운 문체에 독자들은 벌써 군침이 돈다.

    그의 첫번째 요리는 ‘창조’다. 창조의 실마리를 서양문명의 양대 축인 헬레니즘과 기독교에서 찾지 않고 힌두교 찬가 ‘베다’에서 찾았다는 것이 의외지만, 곧 우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기독교적 유일신 개념에 갇혀 있는지 깨닫게 된다. 힌두인들은 창조를 세계의 탄생이 아닌 일자(一者)의 해체이자 분열로 보았다. 그들의 눈에 창조란 새롭고 경이로운 형태들 속에 표현된 조물주의 합리성과 자비로움이 아니라, 원래 하나였던 자연이 수없이 많은 조각들로 갈라져 제한되는 일이다. 그래서 힌두인들은 창조를 부정하고 세계가 갈라져 나오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이어 부어스틴은 “삶을 모르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공자가 창조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곧바로 현실 문제해결에 뛰어든 참여적 지식인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참여에 대한 무관심은 변화를 싫어하고 새로운 것의 상상을 기피하는 ‘유교’의 한계를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창조에 대한 붓다의 침묵과 그리스 신들의 무관심을 넘어, 예언자 모세에 이르러 비로소 서양인들은 창조주이자 태초의 신과 만나게 된다. 그 대가로 모세는 ‘창조주의 전권 대사’라는 이름과 지위를 누렸다.

    이야기꾼 부어스틴은 창조에 대한 ‘공자의 무관심’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도교와 음양오행, 산수화에 담긴 의미를 두루 짚어가는가 하면, 창조력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기 시작한 서양인들이 그리스 철학에 맞서 ‘신학’을 탄생시키는 과정까지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드디어 신의 시대가 지나고 ‘창조하는 인간’의 시대로 접어든다. 그는 영국 남부 도시 솔즈베리의 스톤헨지와 이집트 피라미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네로 황제의 황금저택 등에서 역사를 바꾸어놓은 ‘돌’의 의미를 발견하고, 마지막에 돌 대신 나무로 영원성을 획득한 일본의 이세 신궁을 소개한다. 여기까지 왔지만 아직 3분의 1도 읽지 못했다. 전 3권 총 14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서를 단숨에 훑겠다는 과욕은 부리지 말자. 내키는 대로 아무 장이나 펼쳐 읽기 시작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흩어져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절묘하게 이어붙이는 부어스틴의 마술 같은 능력을 만끽하려면 처음부터 쭉 읽어라. “예술은 무한한 덧붙임의 이야기”라고 했듯이 그의 서술방식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창조자들(전 3권)/ 대니얼 J. 부어스틴 지음/ 이민아, 장석봉 옮김/ 1권 432쪽 1만3000원, 2권 568쪽 1만6000원, 3권 368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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