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량진의 공무원시험 학원 모습. [동아DB]
이 문구는 몇 년 전부터 서울 유명 4년제 대학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당시 높디높은 취업 문턱을 자조하는 의미였다. 명문대생의 경우 과거에는 행정고시를 준비하다가도 방향을 틀어 대기업에 쉽게 취업할 수 있었지만, 얼마 전부터는 나이 든 대졸자를 받아주는 대기업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구가 이제 자조가 아닌 현실이 됐다. 실제로 고연봉의 대기업보다 7급 공무원을 선호하는 대학 졸업생이 늘어났다. ‘대기업은 돈 주는 만큼 일을 시킨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노동 강도가 센 대기업보다 공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은 몇 년 전부터 있어왔으나 대기업보다 7~9급 공무원을 더 선호하는 현상은 최근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계층 이동이 어려워지자 젊은 세대 사이에서 재산 증식보다 여가시간을 중시하는 분위기, 즉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취업준비생이나 막 사회에 나선 청년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근무시간뿐 아니라 임금 면에서도 공무원이 되는 것이 대기업 직원으로 일하는 것보다 낫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자, 목표는 벼슬길
서울 4년제 대학 졸업생인 정모(26) 씨는 제대한 지 1년 만에 9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그가 다니는 학교에선 5급 행정고시 합격자가 매해 두 자릿수 이상 나온다. 하지만 정씨는 7급도 아닌 9급 공무원을 준비했다.그는 “집안 사정도 있고 최대한 빨리 직업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학교에 다니며 1년 내 합격을 목표로 준비했다. 행정고시는 준비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7급 공무원도 1년 이상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9급 시험 준비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씨가 처음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주변에서는 “좋은 대학 들어가 9급 공무원 준비라니 아깝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정작 합격증을 받자 주변에서 합격 비결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정씨는 “주변에 7급 공무원은 물론이고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도 많았다. 단순히 취업이 어려워서라기보다 평생 받을 임금을 계산한 결과 공무원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공무원(교사 포함)은 직업 선호도에서도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7년 대학 진로교육 현황조사’ 설문에 따르면 대학생 응답자의 62.4%가 ‘졸업 후 진로계획으로 취업을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취업 희망직종 중에서는 ‘공무원, 교사’의 선호도가 23.6%로 가장 높았고, ‘공공기관·공기업’(20.0%)이 그 뒤를 이었다. 한편 대기업은 19.8%로 3위였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을 바라는 학생이 대기업 취업 희망자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은 것.
향후 취업전선에 나설 청소년(13~24세)도 대기업보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을 선호했다. 통계청의 ‘2018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이 가장 근무하고 싶은 직장은 국가기관(25.0%)이었다. 장래희망이 공무원인 청소년이 가장 많은 것. 공기업이 18.2%로 그 뒤를 이었다. 선호 직업 1·2위가 공무원과 공사·공단 등 공기업 직원이라는 것이다. 1년 전 선호도 2위였던 대기업은 3위(16.9%)로 밀렸다. 졸업을 2년 앞둔 대학생 백모(25) 씨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난다 긴다 하는 상단에 들어가도 벼슬길만 못 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처럼 벼슬길이 최고 직장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워라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한국토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청년의 43.6%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의 조건으로 ‘일과 개인생활의 균형’을 꼽았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현 청년 세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급여보다 여가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취업준비생들의 생각은 다르다.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기보다, 시간 대비 금액을 따지면 공공기관 취업이나 공무원으로 일하는 것이 대기업 취업에 비해 낫다는 것. 7급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유모(27) 씨는 “대기업은 주 52시간 이상 일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막상 취업한 선배들을 보면 야근은 기본이고 주말에도 출근하기 일쑤더라. 하지만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은 비교적 제 시간에 퇴근이 가능한데도 급여의 차이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시급은 공무원 > 대기업 직원
대기업과 공공기관 및 공기업에 갓 들어간 초년병의 급여만 봐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7개 대기업의 4년제 대학 졸업 신입사원 초봉을 조사한 결과 평균 연봉은 3855만 원으로 집계됐다. 단순계산하면 대기업 신입사원은 월 334만7500원을 버는 셈이다. 잡코리아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평균 근로시간은 주 53시간. 월 단위로 환산하면 일반 기업 직장인은 평균 284시간을 일한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시간당 약 1만1786원이다.
한편 같은 단체의 올해 1월 조사에 따르면 공공기관 초봉은 평균 3465만 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288만7500원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공공기관 근로시간 실태 및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 종사자는 하루 평균 8.70시간 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통해 시급을 계산하면 공공기관 신입사원의 시급은 약 1만2765원으로 대기업에 비해 1000원가량 높다.
공무원은 대기업 사원에 비해 시급이 약간 낮을 수 있다. 공무원의 경우 본월봉에 정근수당, 성과상여금, 평균 시간외근무수당, 정액급식비, 직급 보조비, 명절휴가비 등을 전부 합산하면 군 제대한 7급 공무원 2년 차의 연봉은 3481만4328원, 9급은 2801만2296원이다(표 참조). 공무원의 월평균 초과근무시간은 20시간.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시간에 이를 더하면 월평균 229시간을 일한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7급은 약 1만2670원, 9급은 1만193원이다.
공무원의 실제 주머니 사정은 이보다 나을 것으로 보인다. 수당 외에도 ‘복지 포인트’가 있기 때문. 복지 포인트는 1년에 한 번 지급되는 일종의 바우처다. 포인트당 1000원으로 계산하며 이 금액은 건강 관리, 자기계발, 여가활동, 가정 친화 등에 돈 대신 사용할 수 있다. 2017년 9월 2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지방공무원 인당 지급된 복지 포인트 액수는 연평균 129만4000원이다.
물론 공무원이 맡은 직무 특성상 수당이나 포인트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지방직 7급 공무원인 이모(29) 씨는 “근무처나 맡은 업무에 따라 수당 차이가 많이 난다. 평균치로 따지면 공무원의 급여 수준이 대기업에 크게 뒤처지지 않는 것으로 보이나, 실상은 다를 수 있다”고 밝혔다. 복지 포인트도 마찬가지다. 복지 포인트의 지급 기준은 직책과 직급, 근속연수, 부양가족에 따라 달라진다. 2017년 행정안전부 조사 결과 기준 연도 또는 가장 많은 복지 포인트를 받은 지방자치단체는 서울 도봉구로 인당 243만3000원인 반면, 최소액을 기록한 강원 홍천군은 59만7000원에 불과했다.
게다가 공무원의 급여는 계속 오를 전망이다. 9급 공무원의 경우 기본급만 따지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할 위험이 있기 때문. 공무원 최하위 직급인 9급 1호봉의 경우 12.7%가량 급여 인상이 있어야 기본급이 최저임금을 만족시킬 수 있다. 한편 직장인의 급여 증가세는 예년 수준에 머물렀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30대 대기업 중 28개사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직원의 인당 평균 연봉 인상률은 2.7%로 지난해와 같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이 16.7%나 올랐으나, 대기업의 연봉 인상률에는 변화가 없었던 것.
초반에는 그래도 공공기관과 일반 직장인의 소득 격차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대기업에 비해 근속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 은퇴 후까지 생각한다면 공공 관련 직군에 종사하는 편이 낫다. 통계청의 ‘2016년 기준 공공부문 일자리 통계’에 따르면 공공기관 종사자는 평균 근속기간이 10.4년, 공무원은 14.9년이었다. 이는 비정규직 공기업 종사자나 공무원을 포함한 수치라 실제 근속기간은 더 길 것으로 보인다. 반면 ‘2016년 기준 일자리 행정통계’에 따르면 대기업 사원의 평균 근속기간은 6.9년에 불과했다. 중소기업은 4.3년으로 상황이 더 나빴다.
공공기관 취업해야 길고 윤택한 삶
직장인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직업 만족도가 현저히 낮다. [동아일보]
물론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젊은 공무원은 이전 세대에 비해 내야 할 돈이 많고 수령액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공무원의 연금지급률은 현 1.9%에서 2035년까지 1.7%로 인하된다. 공무원이 매달 받는 연금 급여는 월평균 소득에 근속연수와 연금지급률을 곱해 계산한다. 근속연수가 30년일 경우 그동안 공무원연금으로 월평균 소득의 57%를 받았다면 2035년 이후에는 51%로 떨어진다. 하지만 국민연금도 당초 50%였던 소득대체율이 2028년까지 40%로 떨어져 수령액이 줄어드는 건 마찬가지다.
오래 일하지만 그만큼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고, 근속연수도 짧은 일반 직장인에게 남은 것이라곤 스트레스뿐이다. 잡코리아가 지난해 11월 2030세대 직장인 1162명을 대상으로 직장 생활 고충에 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9.1%가 ‘평소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이들에게 여가나 휴양은 사치다. 같은 조사에서 ‘온전한 여유시간이 1일 주어진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묻자 ‘늦잠, 낮잠 등 원 없이 잠자기’가 1위에 올랐다. 직장인들은 잠잘 시간도 쪼개가며 일하고 있는 것. 직장인 박모(28) 씨는 “주 52시간 근로를 지키려고 각 기업이 근로시간 단축에 나섰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집에서 일하는 것까지 막기는 어렵다. 당장 지난 주말만 해도 회사에 출근은 안 했어도 보고서를 쓰느라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평일에 출근해서 해도 되지 않나 싶겠지만,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기에도 벅차다”고 밝혔다.
직업만족도를 비교하면 공공기관 및 공무원과 직장인의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인터넷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시장조사 전문기관 두잇서베이에 의뢰해 재직자 235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직장과 구직, 그리고 창업IT’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업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종은 공무원(60.3%)이었다. 일반 기업 직장인 중 자신의 직업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4.4%로 최하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