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화천군에서 와송밭을 일구며 와송식초를 만드는 영농조합법인 ‘해동바이오’ 식구들. 왼쪽부터 김진희 총무, 이광자 대표, 문명진 이사. [지호영 기자]
이처럼 명맥이 거의 끊기다시피 한 토종 와송을 노지에서 야생 상태 그대로 재배하는 곳이 있다. 바로 강원 화천군 와송식초 영농조합법인 ‘해동바이오’다. 서울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위치한 화천군 상서면은 산세가 깊고 험한 만큼 물이 맑고 공기도 좋다. 산 아래 드넓게 펼쳐진 13만2000㎡(4만 평) 규모의 밭에는 흡사 다육식물처럼 생긴 붉은색 토종 와송이 소담스럽게 자라고 있다.
총 10가구로 구성된 영농조합 해동바이오는 공동 재배한 와송을 식초로 만들어 연평균 15억 원 이상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더욱 특별한 건 조합원 대부분이 과거 중병을 앓다 와송식초 덕분에 건강을 회복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 유방암으로 3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았지만 기적처럼 완치된 이광자(63) 대표의 사연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다. 화천에서 와송 농사를 처음 짓기 시작한 사람도, 와송식초 영농조합법인을 발족한 사람도 이 대표다.
항암제 내성으로 우심방 정지
인터뷰는 이 대표와 그의 남편인 문명진 해동바이오 이사, 김진희 총무와 함께 영농조합 사무실 2층에서 진행됐다. 이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3년 묵은 와송식초 한 잔을 따라주며 “와송이 문둥병(한센병) 환자한테 좋다는 얘기는 들어봤죠?”라고 질문을 던졌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기자에게 그는 “일반인에겐 생소하겠지만 예부터 와송은 천연 항암제이자 면역력 증강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말했다.와송은 ‘동의보감’에 ‘성질이 평하고 맛은 시며 독이 없다. 수곡(음식물)을 설사할 때 혈리(상처)를 낫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로 비타민A와 칼륨, 칼슘, 엽산이 풍부하고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 같은 항암·항산화 성분이 많이 들어 있으며 해독작용도 뛰어나 혈액을 맑게 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동석 인제대 임상병리학과 교수팀은 와송의 특수한 성분이 발암물질을 억제하고 항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교수는 ‘와송의 항암·항균 등의 효능’이라는 논문을 통해 ‘와송에서 다당체와 용매 분획물을 추출해 실험한 결과 강한 항암·항균·항당뇨·항염증·면역 증강 활성 등 생리활성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 대표가 처음 와송을 알게 된 건 유방암 수술 후 요양차 화천으로 내려오면서다. 그는 12년 전 처음 갑상샘암 수술을 하고 1년 만에 다시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다. 곧장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항암제 내성으로 암세포가 줄기는커녕 3년 만에 심장 우심방에 구멍이 생기는 부작용을 겪었다. 이로 인해 쉴 새 없이 기침이 나고 통증도 날로 심해져 제 발로 걷는 것조차 힘들었으며, 급기야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의 순간을 맞았다.
“병원에서 항암제를 맞고 온 다음 날 새벽 2시에 심장이 멎어버렸어요. 옆에서 자고 있던 남편이 급하게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갔지만 사흘 동안 의식이 없었죠. 가까스로 다시 정신을 차렸더니 담당 의사는 ‘더는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갑갑한 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느니 차라리 공기 좋은 시골로 내려가 요양하면서 지내는 게 나을 듯하다는 얘기였죠. 그 길로 남편 고향인 화천으로 내려왔어요. 당시 병원에서는 길어봐야 3개월이라고 했어요.”
당시 남편은 서울에서 의료기기 제조공장을 운영하던 터라 이 대표 혼자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이미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뒤였다. 거죽밖에 안 남은 바짝 마른 몸에 머리카락도 다 빠지고 없었다. 손발은 얼음처럼 변해갔고, 밤에도 기침 때문에 제대로 눕지 못해 늘 쪼그려 앉은 상태로 신음하다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4시간마다 진통제를 먹으며 간신히 생활을 이어가던 중 그는 지인으로부터 강원 춘천시에 있는 한의원을 소개받았다.
고향 집 기와지붕에서 찾은 토종 와송
와송은 항암·항균·면역 증강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호영 기자]
이 대표는 한의원을 다니면서부터 진통제를 포함해 모든 양약을 끊었다. 한약도 먹지 않았다. 말기암 환자는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진 상태라 한약 성분이 자칫 독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한의원에서는 그에게 자연 치료제로 ‘와송’과 ‘개똥쑥’을 추천했다.
“인터넷에서 구한 와송을 자랑하려고 한의원에 갖고 갔는데 스님한테 호되게 야단만 맞았어요. 토종을 먹어야지 교배종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거였죠. 또 야생에서 자란 와송을 먹어야만 효과가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백방으로 수소문해도 토종 와송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 얘기를 친정오빠한테 했더니 오빠가 옛날 어릴 때 살던 우리 집 기와지붕에도 와송이 있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길로 오빠가 고향인 경북 경주로 내려가 와송을 가져다줬어요.”
마침 와송 꽃대에는 씨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종이컵에 조심스레 씨를 받은 이 대표는 집 앞 텃밭에 씨를 훌훌 뿌렸다. 그로부터 5개월 뒤인 이듬해 4월 무렵 그는 밭에서 뾰족하게 올라온 와송 새싹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땅에 뿌리를 내린 와송의 개수는 30포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 대표는 그중 6포기를 같이 암 투병 중인 동네 친구에게 선물로 줬다. 그가 바로 김진희 총무의 친언니인 진숙 씨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이 대표가 화천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돼서였다. 당시 진숙 씨의 친정어머니와 올케도 각각 위암과 유방암으로 투병 중이었다고 한다.
“동네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알고 보니 다니는 병원에, 주치의까지 같더라고요. 진숙이는 난소암을 앓았는데 중증 환자 둘이 매일 붙어 다녔죠. 서로 얼마나 의지가 됐는지 몰라요. 와송이 도무지 자랄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답답해하니까 진숙이가 ‘언니,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와송은 2년은 키워야 약이 된대’라고 알려줬어요. 정말 1년가량 지나니까 와송 하나에 새끼가 여러 개 달리면서 점점 모양을 잡아가더라고요. 처음에는 새끼 와송을 먹어버릴까 고민하다 너무 아까워 먹지 못하고 새끼 모종 전부를 옆에 일일이 옮겨 심었어요. 덕분에 와송이 10배로 늘어났죠. 그로부터 또 1년이 지나니까 정말로 꽃대가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와송은 꽃이 피기 전에 꽃대를 잘라 약으로 사용해요.”
그렇게 시작한 와송 농사는 10년 새 13만2000㎡ 규모로 확대됐다. 아무리 힘들어도 여전히 노지 재배를 고집하는 이유는 와송의 약효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와송은 척박한 곳에서 자라면서 보호물질을 스스로 만들어내는데 비닐하우스나 수경재배로 자란 와송은 그런 효능이 떨어진다는 것.
와송은 다른 식물과 달리 초겨울인 11월에 모종을 이식한다. 겨우내 눈 속에서 어떻게 견딜까 싶지만 와송은 강한 자생력으로 추위를 이겨낸다. 한겨울 눈이 내려도 와송 부위는 금세 눈이 녹아 얼지 않는다고 한다. 이 대표는 “하얀 눈밭에 밭고랑을 따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모습이 앙증맞고 예쁘다”고 말했다. 와송은 여름 무렵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자라다 10월쯤 꽃대가 올라오고 꽃이 핀다.
종초 비율이 식초 맛 좌우
와송식초 숙성실에서 항아리 뚜껑을 열어 식초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이광자 대표. [사진 제공·이광자]
“처음에는 소화 흡수에 좋으라고 와송을 막걸리로 담가 먹었어요. 그런데 알코올 도수가 높아 잘 취한다는 게 문제였죠. 실제로 환자 2명이 늘 취해 다니니까 동네 어르신들이 흉을 많이 봤어요.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둘이 날마다 병에 막걸리를 담아 뒷산에서 홀짝홀짝 마셔댔어요. 그러다 ‘우리가 이거 먹는다고 살 수 있을까’라면서 서로 끌어안고 울기도 많이 했죠.”
이 대표는 와송을 먹으면서부터 기침이 점점 잦아들기 시작해 살도 오르고 걷는 것도 한결 편해졌다. 와송식초의 황금비율은 개똥쑥으로 발효액을 담그던 중 재료를 배합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됐다. 개똥쑥 발효액에는 설탕이 많이 들어가는데, 암투병 환자에게는 설탕이 치명적이라 이 대표는 설탕 대신 사탕수수원당을 사용했다.
“마침 인도에 사는 친구가 사탕수수원당을 20kg 가져다 줬어요. 그걸 가지고 와송과 개똥쑥 발효액을 담갔는데 원당이 모자란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발효액보다 당분이 덜 들어가는 식초를 만들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히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 해 다시 똑같은 비율로 식초를 담갔는데 이번에는 그 맛이 안 나는 거예요. 문제가 뭘까 고민하다 몇 년 전 식초를 거르고 난 뒤 기운이 없어 항아리에 그대로 놔뒀던 종초(와송 찌꺼기)가 떠올랐어요. 어릴 적에 친정엄마가 씨간장으로 간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한 게 생각났거든요. 결과는 성공이었어요. 종초를 사용한 식초는 한결 맛있고 감칠맛이 나더라고요. 그때부터 종초를 따로 숙성시켜 보관하고 있어요.”
와송식초가 해를 거듭하며 맛있게 익어갈수록 이 대표의 건강도 점점 좋아졌다. 진숙 씨의 친정어머니와 올케도 와송식초를 접하고부터 급격히 건강이 호전됐다. 현재 이 대표를 포함해 세 사람은 모두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숙 씨는 2014년 운명을 달리했다. 세 번째로 암이 재발하면서 암세포가 뼈로 전이됐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금도 밭에서 일하다 보면 진숙이가 옆에서 말을 거는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옆에서 그의 얘기를 듣고 있던 김진희 총무는 “그래도 언니가 고향 땅에서 많은 사람의 위로를 받고 떠난 것 같다. 또 와송을 키우는 과정에서 잠깐이나마 희망이란 걸 보지 않았을까 싶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 총무는 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 해 완전히 귀농했다. 인천에 살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친정어머니를 보러 오곤 했는데, 언니의 뒤를 이어 와송 농사를 짓기로 결심한 것. 남편은 서울에서 직장에 다녀 두 사람은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그 전에는 와송이 뭔지도 몰랐어요. 언니가 생전에 화초 키우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 날 집에 갔더니 처음 보는 화초가 있더라고요. 나중에야 그게 와송인 걸 알았죠. 동네에서 와송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광자 언니를 찾아갔어요.”
이 대표는 김 총무에 대해 “처음 와송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는 ‘얼마나 갈까’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합 살림을 도맡아 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 무렵 이 대표의 남편인 문명진 이사도 의료기기 사업을 정리하고 화천으로 내려왔다. 와송식초에 대한 입소문이 서서히 퍼지면서 와송 농사를 짓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문 이사는 2015년 12월 4가구를 중심으로 작목반을 발족한 뒤 이듬해 봄, 조합원 수가 6가구로 늘어나자 해동바이오 영농조합으로 법인 등록을 했다. 와송 농사부터 식초 제조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수확량을 기준으로 동일하게 책정한다. 또 식초에 들어가는 원당은 태국으로부터 수입해 공동으로 쓰고 있다.
조합에서 1년 동안 생산하는 식초 양은 250~300t가량 된다. 해마다 블라인드 테이스트를 거쳐 맛이 떨어지는 식초는 과감하게 폐기한다. 또 아무리 물량이 부족해도 2년 이상 숙성시킨 것만 출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식초 한 병(300㎖)당 가격은 3만 원으로, 조합원들의 한 해 매출액은 가구당 최소 1억 원이 넘는다. 이 대표의 경우 지난해 총 2억3000만 원가량 매출을 올렸다. 정식으로 상표를 내기 전에도 그는 병원에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갈 때마다 식초를 들고 가 암환자들에게 나눠주며 와송식초를 알렸다. 영농조합을 꾸리고 난 뒤에는 전국에서 열리는 식품박람회에 참가하면서 적극적으로 상품 홍보에 나섰다. 그 결과 현재 와송식초의 재구매율은 60%에 달한다.
조합원 소득 연평균 1억 원 넘어
[사진 제공·이광자]
가을에 모종을 심고 겨울이 지나면 봄부터 잡초 제거 작업에 들어간다. 수시로 풀을 뽑아줘야 하기 때문에 요즘 같은 농번기에는 일손 구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한다. 그렇게 다시 겨울이 찾아오면 와송은 눈 속에서 겨울잠을 자다 봄기운과 함께 연꽃 모양의 얼굴을 방끗 내민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와송 꽃이 피기 전 생초를 잘라 깨끗하게 씻은 뒤 물기를 제거해 식초를 담근다.
1t짜리 고무통에 생초 500kg과 원당 150kg을 넣고 3~5일이 지나면 3년 묵은 종초를 올려 숙성에 들어간다. 종균(종초 균)은 원당을 먹으려고 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종초에는 아무런 맛도 남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종초를 얼마나 넣느냐다. 하지만 이 대표는 “영업 기밀이라 알려주기 힘들다”며 웃었다.
식초를 담그고 1년이 지나면 그때부터 식초물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면 종초를 건져내고 와송과 식초를 분리한 뒤 와송은 종초 보관실에서, 식초는 식초 보관실에서 각각 2년, 1년 더 숙성시킨다. 와송식초의 또 다른 특징은 산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식초는 물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아요. 원액 그대로지만 산도가 2.5~3.2도로 낮아 먹기에 거부감이 없죠. 혹자는 산도가 너무 낮아 식초가 아니라고 하지만 세계적인 추세를 보더라도 식초 산도는 점점 낮아지고 있어요. 산도가 너무 강하면 위벽이 깎이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특히 질병을 앓는 사람은 장기 기능도 약해지기 때문에 더 위험하죠.”
물론 산도가 4도 이상인 제품도 생산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인터뷰 도중 식초 보관실로 들어가 강한 산도의 식초를 한 잔 떠온 뒤 마셔보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그는 “코가 뻥 뚫릴 정도로 산도가 높긴 하지만 소비자들이 가장 마시기 편한 산도가 2.5도가량이라 높은 산도의 식초는 많이 생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콜라·주스·커피에 이어 이젠 ‘식초’가 대세
와송식초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중 강원도를 대표하는 식품으로 뽑혀 홍보 부스에서 전시·판매됐다. [사진 제공·이광자]
“얼마 전 일본으로 출장을 다녀왔는데 우리 식초의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일본인이 말하는 장수 비결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소식(小食)과 운동, 온천, 그리고 식초예요. 처음 아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평생 남의 건강 신경 쓰느라 정작 내 가족은 챙기지 못했다는 생각에 많이 괴로웠어요.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말이 있듯이 저처럼 뒤늦게 후회하기 싫으면 습관처럼 식초를 마시기를 권합니다. 그동안 음료문화의 주류가 콜라에서 주스, 그리고 커피로 바뀌었는데 이제는 식초가 그 자리를 차지할 때가 왔다고 생각해요. 조만간 국내에도 식초 카페가 많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어요.”
문 이사의 일본인 며느리도 와송식초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아토피 증상이 심했던 며느리는 3개월 동안 와송식초를 꾸준히 복용한 결과 아토피 증상이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이 대표는 “며느리가 일본에서 약사로 활동 중인데 최근 일본에서 아토피와 갑상샘암 발병률이 매우 높아졌다고 한다. 며느리도 양쪽 팔에 늘 피딱지가 붙어 있을 정도로 아토피가 심했는데 지금은 말끔해졌다”고 강조했다.
와송식초는 산도가 낮아 피부에 직접 발라도 무리가 없다고 한다. 세안 후 토너처럼 얼굴에 살짝 뿌려도 되고, 여름철 모기에 물렸을 때도 와송식초를 바르면 금세 통증이 가라앉는다고. 이는 와송의 염증 완화 성질 때문인데, 옛 기록을 보면 심지어 뱀에 물렸을 때도 와송을 뜯어 바르거나 먹으면 해독이 된다고 돼 있다. 문 이사는 “최근 대상포진에 걸린 분이 있었는데 와송을 먹고 통증이 빨리 가라앉았다”고 전했다.
와송식초는 먹는 방법도 간단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식초 원액을 소주잔 반 잔 정도 분량으로 마시면 된다. 감기에 걸렸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소주잔 한 잔 분량의 와송식초를 5배의 물에 희석해 마시면 좋다고 한다. 또 요구르트나 우유에 꿀과 함께 섞으면 아이들 간식으로도 손색없다.
앞으로 이 대표의 목표는 와송 효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그는 “와송식초 덕분에 덤으로 살고 있는 만큼 남은 생은 많은 사람에게 와송식초를 알리는 데 쓰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