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봄이라지만,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오면 한 시간도 못 돼 졸음이 쏟아집니다. 숯덩이 우려낸 듯 쓰디쓴 커피도 별무효과. 이건 집사람이 시간 관리를 엉망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맞벌이하는 집사람이 퇴근해 저녁상을 물리면 9시를 훌쩍 넘깁니다. ‘내조의 여왕’이나 좀 보다가 후딱 샤워하고 코 골면 될 텐데, 설거지하고 쓰레기 분리수거하고 청소기 밀고 아이 공부 봐주고 밤참 챙기고 빨래 개고 제 셔츠 다림질한다고 부산을 떱니다. 그러고는 새벽녘에야 잠자리를 찾아드니 제가 밤새 숙면을 취할 수 있겠습니까.
술이 꽤 세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이젠 체력에 한계가 왔는지 영 맥을 못 춥니다. 그런데도 못 이길 말술을 불사(不辭)합니다. 이건 집사람이 제 컨디션 관리를 엉망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집사람은 제가 술 마시고 들어간 날 밤엔 숙취해소 음료와 생약 성분 소화제를, 다음 날 아침엔 육개장이든 콩나물국이든 속풀이 국물을 한 대접 말아줍니다.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으니 술 앞에서 긴장하긴커녕 자제력을 잃고 일단 들이붓고 보는 겁니다. 고독한 취객은 절대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법.
월말이 다가오면 꼭 통장 내역을 조회해봐야 합니다. 우르르 어울려 먹고 마시기 좋아하는 탓에 신용카드 결제액이 종종 예금잔고를 초과하니까요. 덩치가 곰만 한 대장부가 이렇듯 쩨쩨하게 통장이나 뒤적거려야 하는 건 집사람이 재테크를 엉망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