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7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로 찾아온 손님들과 집 근처를 산책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권양숙 여사.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된 새로운 사실이 연일 폭로되던 4월7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 중 일부다. ‘프레임(틀)’이 다르다는 말은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논리공방이든 법리공방이든 한번 따져보겠다는 뜻이다.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10억원을 받은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검찰 수사에 마냥 끌려가지만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뭔가 ‘최후의 카드’를 쥐고 현 여권을 향해 경고성 메시지를 전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노 전 대통령 측과 박 회장의 끈끈한 관계로 미뤄볼 때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측에 현 여권과 관련된 내밀한 정보를 제공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 씨와 30년 지기다. 두 사람이 인연을 맺은 1970년 초 건평 씨는 세무공무원이었고, 박 회장은 젊은 기업가였다. 박 회장은 이때부터의 인연으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최대 후원자였다.
그 덕에 강 회장과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에 재계 최고의 실세로 통했다. 박 회장이 농협으로부터 휴켐스를 헐값에 사들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관계와 무관치 않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을 앞두고 2007년 8월 박 회장이 강 회장과 대통령재단 설립을 논의한 데서도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 측의 끈끈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2007년 대선 전후 건평 씨와 추부길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을 연결해준 것도 박 회장이라고 한다. 추 전 비서관은 박 회장을 통해 만난 건평 씨에게서 “(대통령) 패밀리는 서로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청탁을 받고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의원에게 그 말을 전달했는가 하면, 박 회장의 태광실업 세무조사 무마를 이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에게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 전 비서관은 이 과정에서 박 회장으로부터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대책회의’ 멤버들 주목
주목되는 인물은 지난해 7~11월 국세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 직전, 박 회장의 구명을 위해 ‘대책회의’까지 연 것으로 알려진 이종찬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 이 전 비서관은 이명박 정부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이고, 천 회장은 이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다.
특히 천 회장은 이 대통령의 고려대 61학번 동기다. 2007년 대선 때는 고려대 교우회장을 맡아 이 대통령에 대한 동문의 지지를 모았다. 그는 대선 직전 이 대통령 소유의 서초구 양재동 건물을 담보로 39억원의 선거자금을 빌려주기도 했다. 천 회장이 건물에 설정해놓은 근저당은 이 대통령 취임 2개월 후인 지난해 4월29일 해지됐다. 사업 근거지가 포항인 천 회장은 이상득 의원과도 친분이 두텁다.
이런 천 회장이 박 회장 구명 로비에 나선 이유는 친형제나 다름없을 정도로 가깝기 때문. 박 회장은 천 회장의 동생과 친구 사이였다. 천 회장의 동생이 사망한 뒤부터는 천 회장을 친형처럼 모셨다고 한다. 박 회장이 2006년 휴켐스를 인수하자마자 사외이사로 앉힌 인물도 바로 천 회장이다.
하지만 박 회장을 위한 천 회장의 구명 로비는 실패로 돌아갔다. 따지고 보면 이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천 회장과 박 회장, 두 사람만 건너면 연결되는 사이다. 결과적으로 양측 간 소통이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이어 검찰의 수사망이 조여오는 상황에서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이나 건평 씨와 아무 연락도 취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이들 사이에는 또 어떤 대책이 논의됐을까. 노 전 대통령이 최후의 ‘히든카드’를 쥐고 있다면 향후 검찰수사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