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 유니클로가 마련한 ‘2009 UT 전시회’에 나온 티셔츠 이미지입니다. 소비자들은 개성 있는 제품을 만나고, 신진 아티스트들은 일종의 후원을 받으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습니다. 단순한 티셔츠 위에서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티셔츠는 사각 몸통에 팔을 단 단순한 형태에 면 100%의 정직한 소재로 이뤄진 옷입니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디테일을 붙이려 해도 액면이 뻔해 패션 디자이너들이 기피하는 아이템이기도 하죠. 그러나 조르지오 아르마니 같은 유명 디자이너 자신은 티셔츠를 즐겨 입습니다. 그 매력을 간파하고 있는 거죠. 그 증거로 값비싼 실크를 난해한 패턴으로 잘라 꿰맨 뒤 온갖 수공예적 장식과 보석을 더해 눈이 튀어나오게 비싼 옷을 만들거나, 현대 예술만큼이나 지적이고 실험적인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이 때때로 런웨이에 티셔츠를 올려 화제가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콘셉트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거나, 독창적 아이디어를 ‘글(텍스트)’로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해 티셔츠를 사용하곤 합니다.
최근의 예를 들면, 2007년 영국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제가 존경하는 과격한 할머니)는 모델에게 FBI 요원을 살해한 혐의로 20년간 복역 중인 인디언 인권운동가를 석방하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혔습니다. 끊임없이 실험적 콘셉트를 선보이는 프라다는 유전자 문제, 개성 말살 등 현대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초현실적 이미지로 만들어 티셔츠에 담기도 했답니다. 또 해골 이미지로 유명한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이 코카인 스캔들로 패션계에서 매장될 위기에 처한 모델 케이트 모스를 위해 ‘WE LOVE YOU, KATE’라고 쓴 티셔츠를 입고 피날레에 직접 등장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자선이나 사회공익 메시지를 담은 티셔츠를 제작해 판매합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는 2003년부터 전 세계 젊은 아티스트들의 자유로운 창조력을 티셔츠라는 캔버스 위에 담아 선보이는 ‘UT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올해로 세 번째고 김한나, 호란, YP, 김시훈 등 4명의 한국 아티스트가 ‘코리안 컬처’ 섹션을 맡아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요즘에는 이처럼 컬러풀한 티셔츠에 극도로 여성스런 스커트를 믹스매치하면 시크하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저로 말씀드리자면 우울한 날엔 화장품을, 기분이 화창할 땐 티셔츠를 쇼핑하게 됩니다. 회화 같은 색면들, 그대로 드러낸 드로잉과 붓의 흔적, 벽화처럼 요란한 메시지(한심한 텍스트도 유머로 이해합니다)만큼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템도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매장 직원 몰래 옷 속에서 손을 휘저어 찾아낸 가격표에 기분 상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티셔츠는 가격, 세탁법, 맞춰 입을 옷과 상관없이 ‘나’와 ‘나의 생각’에 따라 선택하는 유일한 아이템이 아닐까요. 한마디로 시위하는 벚꽃, 푸른 하늘에 휘날리는 나의 깃발 같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