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일 영국 총리공관에서 열린 총리 주최 만찬에서 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 오바마 미 대통령이 나란히 앉아 있다.
로켓 발사의 성공 여부, 특히 ‘미사일 위협 평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예 평가가 갈린다. 발사 당일 한국 국방부의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를 늘려 대륙간탄도탄(ICBM) 시험에 나선 것이라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도 볼 수 있다”고 했지만, 이튿날 제임스 카트라이트 미 합참 부의장은 “연거푸 3번 실패한 국가에서 누가 (미사일을) 수입하겠느냐”며 평가절하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로켓 궤적을 추적한 북미방공사령부(NORAD)가 4월5일 밝힌 ‘2, 3단계 추진체가 탑재물과 함께(along with) 태평양에 떨어졌다’는 문장이다. 언뜻 추진체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이것이 모두 태평양 어딘가에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다만 여기에는 분리가 이뤄졌는지조차 확인해주고 싶지 않은 미국의 속내가 담겨 있다.
미국의 이 같은 ‘모호함’에는 두 가지 이유가 얽혀 있다. 먼저 ‘북한도 모르는’ 이번 로켓 발사의 구체적 데이터를 세계만방에 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자칫 이러한 정보가 북한 미사일 기술의 홍보에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북한이 미국 본토에 이르는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보유했는지 여부가 미국의 안보정책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근본적인 변수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보당국의 용어 가운데 ‘현존하는 분명한 위험(present and clear danger)’이라는 말이 있다. 그간 미국 안보당국에게 북한의 미사일 기술은 현존하는 분명한 위험은 아니었다. 북한이 장차 자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실험에 성공하거나, 이 기술이 테러리스트 등 외부에 유출될 때에만 비로소 그런 위험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北 장거리 미사일 분명한 위험 되나?
북한이 공개한 장거리 로켓 ‘은하 2호’를 찰영한 사진.
그렇지만 북한이 하와이나 알래스카, 미국 본토에 이르는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보유하게 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단계로 비약한다. 아예 미국 내 민간인을 대상으로 인질 전술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 이는 유사시 미국의 한반도 전쟁 개입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북한이 이 장거리 미사일에 핵을 탑재할 수 있게 된다면 미국이 한국에 약속하고 있는 ‘핵우산’은 붕괴된다.
북한이 한국을 핵으로 공격할 경우 미국이 이를 핵으로 보복한다는 게 핵우산의 기본 개념이지만, 미국의 핵 보복 공격을 당한 평양이 다시 미국 본토를 향해 핵 보복을 가할 수 있게 되는 까닭이다. 핵 억지이론에서 말하는 이른바 ‘제2격’ 능력을 보유하게 되는 것.
이렇듯 북한 미사일이 미국 본토에 이르는 사거리를 갖느냐의 여부는 유사시 한반도 전쟁의 전개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수다. 북한의 군사위협이 미국의 안보정책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그 이전과 이후로 가르는 핵심적 ‘관문(Threshold)’인 것이다.
‘관문’에 대한 워싱턴의 민감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최근 사례는 3월31일 일본 언론이 보도한 기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해프닝이다. 교도통신은 ‘북 소형화 핵탄두 이미 개발’이라는 기사를 통해 “최근 한미 정보당국은 소형 핵탄두가 노동 미사일 기지 인근 두 곳에 배치된 것으로 파악했다”는 국제위기감시그룹(ICG) 동북아사무소 대니얼 핑스턴 소장의 말을 타전했다. 이튿날 한국의 언론도 대부분 이를 그대로 인용 보도했다.
대(對)중국 전략에 종속된 개념 취급
그러나 워싱턴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워싱턴의 정통한 정보지 ‘넬슨리포트’는 “핑스턴 소장을 접촉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니 ‘자기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고, 오해와 오역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일본과 한국 언론의 보도를 뒤엎은 셈이다(일련의 상황을 겪은 뒤 핑스턴 소장의 태도는 애매하게 변했다. 4월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는 “그러한 말을 들었으나 실제로 폭발할 수 있는 소형 핵탄두가 완성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얼버무렸다).
4월5일 발사된 로켓에 대해 미국 측이 이렇듯 유보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에는 분명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2월 한국 국방부가 발간한 ‘2008 국방백서’는 북한이 사거리 3000km 수준의 신형 중거리 미사일(IRBM)을 2007년 중순 실전 배치했다고 기술했다. 유사시 전시증원의 통로인 괌이나 오키나와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다. 국내외 언론을 통해 보도된 데이터가 맞는다면, 4월5일 발사된 은하2호의 2, 3단계 추진체는 대략 이 IRBM의 최대 사거리와 비슷한 거리까지만 날아갔다. 목표는 장거리 미사일 기술 과시였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중거리 수준의 실력만을 보여준 셈이다.
더욱이 미국 측 전문가의 상당수는 흔히 ‘무수단 미사일’이라고 부르는 IRBM에 대해서도 매우 유보적인 견해를 내비친 바 있다. 한 번도 실험해본 적 없는 미사일이 실제로 3000km를 날아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정확도다. 은하2호의 2단계 추진체는 당초 북한이 국제해사기구 등에 보고한 낙하 예상지점보다 100~200km 못 미쳐 떨어졌다. 낙하 예상지점 자체가 수백km 범위였음을 감안하면 이 오차율은 날아간 거리의 10%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서구 학계에서 미사일이 군사적으로 쓸모가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거리 대비 오차율 0.1%를 사용하고 있는 것에 비춰볼 때, 이처럼 높은 오차율은 군사적 위협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실제로 북한이 수년 내에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한다 해도, 오차율이 수백km가 넘는다면 이를 군사적으로 활용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렇듯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현존하는 분명한 위험’은 못 된다고 판단해온 미국은 그동안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시나리오보다 잠수함으로 서부 연안에 접근한 뒤 여기서 중단거리 미사일로 로스앤젤레스 등을 공격하는 경우를 더 위협적인 것으로 평가해왔다. 미 의회조사국(CRS)이 매년 업데이트하는 북한 미사일 관련 보고서 역시 장거리 미사일보다 이들 해상배치형 중거리 미사일에 훨씬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이는 북한의 로켓 발사 소식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지난 2월 말 작성된 보고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의 군사위협이 갖는 의미는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에게 대북전략이란 대아시아 전략의 하위개념일 뿐이고, 특히 상당 부분이 대중국 전략에 종속된 개념이다. 출범 100일도 채 넘기지 못한 오바마 행정부는 아직 이러한 상위전략도 다듬지 못한 상태고, 대북전략의 틀은 앞으로도 수개월 뒤에야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미국의 모호한 태도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직접적인 군사위협으로 판단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이번 로켓 발사에 대해서도 최대한 ‘흥분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려는 자세가 읽히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이에 마주한 한국 정부의 움직임이다. ‘쿨’한 태도를 취하자니 여론이나 정서를 무시할 수 없고, 흥분하자니 워싱턴의 분위기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 4월5일까지 엎치락뒤치락 용어를 바꿔가며 혼선을 빚은 한국 정부의 행보에는 이런 고민이 짙게 배어 있다. 앞으로 4년 동안 오바마 행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겹친다는 사실은 이 고민의 가장 큰 딜레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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