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 Viola, ‘Observance’(2002), Color High-Definition video on plasma display mounted on wall, 120.7×72.4×10.2
로마 Palazzo delle Espozioni 전경.
빌 비올라는 이 작품을 통해 ‘슬픔을 응시할 것’을 주문합니다. 그는 이 슬픔을 대문자로 시작하는 ‘Sorrow’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슬픔이란 개개인의 비애가 아닌 인간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고뇌를 뜻하며, 마치 비디오가 재생되듯 이 번뇌 역시 끊임없이 반복됨을 암시합니다.
어쩐지 불교적이라고요? 정확히 맞혔습니다. 형식적으로는 기독교 제단화(altarpiece)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실제로 그는 일본 선종의 대가 다이엔 다나카에게서 불교 교리를 배웠습니다. 빌 비올라는 ‘인간’을 세 종류로 나눴는데요, 망자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입니다. 망자와 미래는 정지돼 있으므로 무한하지만,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한 존재이며, 이러한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는 것이 철학과 종교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교감’ 가장 큰 매체로 인류 고통 ‘함께 애도’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는 배우들에게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비극적인 장면을 목격했을 때’와 ‘내 곁을 영원히 떠난 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때’의 심정을 연기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이는 인생을 살며 우리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통과의례죠. 그 슬픔마저 인스턴트로 처리되는 이 시대에 빌 비올라는 특유의 느린 화면을 통해 때로는 억제되고, 때로는 간과되는 이 감정을 증폭시킵니다. 그리하여 슬픔이 인간의 전제조건임을 부각합니다.
하지만 빌 비올라가 작품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슬픔 자체가 아니라 슬픔의 ‘교감’입니다. 그가 비디오를 예술 매체로 선택한 것 역시 ‘교감’의 가능성이 가장 큰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류의 고통에 ‘함께 애도’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유한성을 지닌 인간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덕목이라고 강조합니다.
전시장 복도 끝에 앉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던 저는 로마의 관광명소를 돌아볼 수는 없었지만, 로마제국보다 더 오래됐을 인간 내면의 역사를 성찰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전시 제목 ‘내면의 비전’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