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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묘기지권은 우리 고유의 매장문화에서 유래했다. 조상을 모실 땅조차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화장하면 불효자라고 욕을 먹는 분위기에서 남의 땅이라도 빌려 매장하고 분묘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한 번 묘지로 쓴 땅은 풍수지리학상 ‘음택(陰宅)’이라 해서 이후 이장돼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매우 꺼렸다.
현행 판례상 분묘기지권은 한 번 성립하면 분묘로 기능하는 한 소멸되지 않는다. 사용료를 지급하지도 않는다. 토지 소유자도 함부로 이장할 수 없다. 매우 강력한 권리다. 따라서 임야를 매수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현장을 방문한 후 분묘가 있는지 철저히 살펴봐야 한다. 분묘기지권은 물권인 까닭에 새로운 땅 소유자가 됐다 해도 이미 설치된 묘지는 이장을 요구할 수 없다. 심지어 제사 등을 지내느 데 필요한 주변 공간에도 분묘기지권의 효력이 미친다. 따라서 분묘가 여럿 붙어 있는 경우에는 상당한 범위의 공간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분묘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고 새로 임야를 구매했다 크게 다툼이 벌어진 적이 있는데, 대법원은 분묘기지권이 성립하는 경우를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①소유자의 승낙을 얻어서 묘지를 쓴 경우 ②소유자가 분묘를 설치했는데 그 토지를 매도함에 있어 분묘에 대한 별다른 특약을 하지 않은 경우 ③(소유자로부터 분묘 설치) 승낙을 얻지 못하였더라도 평온·공평하게 20년 이상 유지된 경우.’
분묘기지권이 성립하면 분묘로서 기능을 유지하는 한 분묘와 그 주변 토지에 거의 소유권과 같은 권리가 인정되기 때문에 토지 소유자는 큰 피해를 입는다. 따라서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더라도 이 부분에 대한 비난과 지적은 과거부터 계속 있어왔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분묘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분묘기지권이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①가묘의 경우 ②후손들이 상당 기간 성묘 등을 하지 않은 경우 ③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평장의 경우.’
지금까지 분묘기지권은 상당히 확고한 권리였다. 그러나 사회인식이 변하면서 존폐 기로에 서 있다.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분묘기지권에 대한 공개변론을 진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갈수록 유교문화가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는 데다 화장 비율이 80%에 이르고, 이미 성립된 분묘기지권도 사용료를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형평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까닭이다. 이미 성립한 분묘기지권을 갑자기 철폐하면 많은 혼란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회가 변한 만큼 특정 시점을 정해 그 후로는 분묘기지권이 더는 성립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