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소, 무제, 1995, 아쿠아틴트, 사진에 에칭. 한국적 다다이즘 작가로 통하는 이강소는 최근 새로운 회화적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 홍익대 앞 쌈지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타이틀매치’전은 미술의 ‘헝그리 정신’과 도전정신, 혹은 도발성에서 왕년의 챔피언인 이강소(61)와 이름부터 심상찮은 신세대 작가 조습(29)의 대결로 이루어지는 전시다.
1970년대 초, 작가와 평론가들이 흰색 전시장에 벽지로 유추되는 그림을 걸어놓고 ‘모더니즘 미술’이라 일컫던 시대에, 이강소는 전시장 바닥에 밀가루를 뿌린 뒤 그 한가운데 살아 있는 닭을 줄로 3일 동안 매놓고 ‘미술’이라 주장한 작가다.
지금이야 모두 이를 가리켜 ‘개념미술’ ‘퍼포먼스’라 부르겠고, 이보다 더 해괴한 행동을 하는 아티스트들도 많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로도 그는 전시장에서 술판을 벌이는 등 파격적인 행위를 통해 엄숙주의를 뒤집어쓴 미술판의 커넥션을 깨고자 노력해왔다.
파격적 신구 세대의 작품 대결
그로부터 꼭 30년 뒤, 명랑만화의 주인공 같은 외모의 조습이란 작가가 나타났다. 2001년 그가 처음 연 개인전의 제목은 ‘월드컵 프로젝트-조습의 한국여행기’와 ‘명랑교 첫 부흥회-난 명랑을 보았네’였다. 명랑교 교주를 자처하는 그는 사이비교 교주로 연출한 자신의 ‘명랑한’ 사진들을 전시장에 내걸어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순결주의와 도덕주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극적으로 객관화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위선성을 드러내려는 전략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가 해낸 더 중요한 역할은 ‘미술의 대중화’를 고민하며 점점 더 엘리트화, 아카데미화하며 뉴욕을 지향하던 젊은 작가들에게 100% 한국산 작가가 순수하게 한국적인 방식으로 한국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그는 무단복제된 일본만화책과 무차별적으로 생산된 시각 이미지를 보고 자랐으며, 그것을 자양분 삼아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터였기 때문이다.
조습은 단 한 번의 전시로 한국미술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이후 무수한 단체전에서 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30년의 시차를 둔 이 한국적 ‘타이틀매치’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현재 뉴욕에서 작업하는 이강소는 더 이상 스트레이트로 충격을 주는 방식을 쓰지 않는다. 조습의 신작 역시 다행히도 짧은 ‘잽’이 아니라 비교적 긴 호흡을 얻은 것으로 보이나, 여전히 그가 어디로 갈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70년대 복싱 타이틀매치가 그러했듯 ‘타이틀매치’전의 결과는 두 주인공만 나누는 것이 아니다. ‘타이틀매치’전이 한국적 ‘헝그리 정신’을 평가하는 데 왠지 인색한 우리 관객들에게 새로운 눈과 관용의 정신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점에서 전시가 다소 불친절하다는 아쉬움도 느껴진다.(12월18일까지, 전시 문의 02-3142-1693)
조습, 무제, 2003, 사진 시리즈 중 일부.그는 최근 연속촬영한 사진으로 영화와는 또 다른 표현법을 만들어냈다. 강변에서 보신탕을 끓여 먹는 야유회가 결국 난장판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일상과 휴식 속에 숨은 폭력성과 억압 및 갈등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