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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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예술 배부른 희망 대안공간이여

가장 즐겁고 바쁜 문화생산자 ‘자리매김’ … 홍보·광고 없이 전시 통해 ‘공간 브랜드’ 확보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3-11-20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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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예술 배부른 희망 대안공간이여

    대안공간의 선구자 격인 홍대앞 ‘루프’와 운영자 서진석씨. 홍대앞 대안공간 겸 카페 ‘시월’의 운영자 구정화씨. 홍대앞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와 운영자 김기용씨 (왼쪽부터).

    지난해 말부터 서울 홍익대 앞을 중심으로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초미니 대안공간들이 문화계에서 큰 흐름을 만들며 주목받고 있다.

    대안공간이란 말 그대로 기존 공간에 대한 ‘대안’적 공간이라는 뜻이다. 즉 미술관이나 화랑의 전시장과 문화공간이 수용하기를 거부하는 비상업적이고 실험적인 미술이나 이벤트, 포럼 등의 대안적인 문화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2002년 12월 홍대앞에 대안공간 ‘시월’이 공식 오픈한 것을 시작으로 그 주변에 ‘아트스페이스 휴’ ‘멀티스페이스 키친’ ‘갤러리 한티’가 새로 문을 열었다. 또한 최근 새로운 문화지대로 각광받는 서울 삼청동 부근에도 비슷한 시기에 ‘팩토리’와 ‘시공간프로젝트 브레인팩토리’(이하 브레인팩토리)가 문을 열어 오가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돈 없어도 꾹 참고 합니다”

    대리석 외관에 매끈한 흰색 입방체 건물에 있는 미술관이나 화랑과는 달리, 이들 대안공간은 지하나 낡은 건물에 위치해 출입문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전시공간도 ‘초미니’여서 10평에서 30평 규모. 게다가 겨우 벽지만 걷어낸 시멘트벽을 드러내놓기 일쑤다.



    처음 대안공간들이 유행처럼 문을 열 때만 해도 공간을 ‘유지’라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 시각이 없지 않았다. 대안공간의 특성상 일단 ‘팔릴 만한’ 미술작품은 배제하는 데다, 돈을 받고 전시장을 빌려주는 대관전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컬렉터들이 좋아하는 깔끔한 그림이나 조각을 만드는 작가들이 이 허름한 전시장을 찾을 리도 없다.

    그러나 올 한 해 동안 문화계에서 가장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가장 즐거운 생산물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바로 이 대안공간들이다. 물론 이들이 뾰족한 운영의 묘수나 돈 많은 후원자를 찾아낸 것은 아니다.

    “꾹 참고 합니다.”(‘아트스페이스 휴’ 김기용 대표)

    “전기요금 빼고는 돈을 안 쓰는 게 비결이죠.”(‘브레인팩토리’ 오숙진 대표)

    “수익구조라는 게, 지금은 이렇다 할 게 없어요.”(‘팩토리’ 곽현정 기획자)

    대안공간 운영자들이 이처럼 대책없이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절실한 필요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예외없이 1980년대와 90년대 초 미술을 공부하고 미술판에서 일해온 운영자들은 ‘작품 값이 비싼 블루칩 아티스트를 제외한 다른 작가들은 아예 전시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 다소 과장하면 ‘홧김에’ 전시장을 냈다고도 할 수 있다. ‘브레인팩토리’의 오숙진 대표는 “미국에 살면서 작가인 남편(톰 리)이 개인전을 하려고 알아보니 젊은 작가가 전시할 곳이 없어 실망한 나머지 살림집 1층을 대안공간으로 바꿨다”고 말한다.

    가난한 예술 배부른 희망 대안공간이여

    곽현정, 김보영, 홍보라 세 명의 기획자(아래 왼쪽부터)가 의기투합해 문을 연 ‘팩토리’.

    그래서 운영자들은 다른 전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시월’이나 ‘멀티스페이스 키친’처럼 전시장이 카페를 겸하는 경우도 있다.

    그 대가로 대안공간은 공간이라는 ‘브랜드’ 혹은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권력’을 얻는다. 대안공간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획전을 통해 고유한 대안공간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소속작가군을 형성해 문화적 이슈와 담론을 제기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홍대 출신 기획자인 구정화씨와 김준기씨(사비나미술관 기획실장) 부부가 공동 운영하는 ‘시월’의 경우 지난해 대통령선거 기간에 ‘주류를 바꾸자’에 이어 ‘A4 반전’전을 열어 ‘시사 전문 공간’이란 별명을 얻었다. 구씨는 “ 대안공간의 장점은 사회적 상황에 맞춰 순발력 있게 전시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아트스페이스 휴’는 기획팀인 ‘상상력발전소’를 운영하는 김기용씨와 부인 이재윤씨(큐레이터)가 운영한다. 발랄한 작가들의 데뷔공간이면서 영상과 멀티미디어 작업에 주력하고, 외부단체와의 공동기획전을 활발히 마련하여 젊고, 쉽고, 즐거운 공간으로 유명하다.

    디자인그룹 한티(대표 이승희)가 운영하는 ‘갤러리 한티’는 원래 카페였던 곳을 그대로 사용하는 까닭에 자연스런 햇빛과 어울리는 설치작업전이 주로 열리는 곳이다. 또 ‘브레인팩토리’가 뉴욕 언더그라운드 작가들이 활동하는 갤러리를 모델로 하여 순수미술 신인들의 개인전을 주로 여는 데 비해 홍보라, 곽현정, 김보영 등 세 여성 미술인이 의기투합해 꾸려가는 ‘팩토리’는 전시장 한쪽 벽을 아트숍으로 운영하고 북아트쇼, 책묶기 워크숍 등 공예 및 디자인 성격이 강한 전시와 강연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 대안공간은 홍보나 광고 없이 단지 전시를 통해서 공간이라는 브랜드와 권력을 확보한 것이다.

    이 작은 공간들의 모델이 된 곳은 홍대앞에서 4년 전 문을 연 ‘루프’라는 대안공간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안공간의 기치를 내걸고 문을 연 ‘루프’는 경영난으로 창립 멤버 4명 중 3명이 떠나고 작가이자 기획자인 서진석씨 혼자 운영을 맡고 있다.

    “흔히 ‘보보스’라고 하는 주관적 미적 가치관과 경제적 힘을 가진 사람들은 상당히 늘어났어요. 그러나 문화 시스템이 왜곡되어서 상업화랑에서는 여전히 기성-모더니즘-작가들의 작품만 제공합니다. 새로운 문화애호층을 위한 ‘플랫폼’이 되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에선 의미 있는 일이지요.”

    대안공간 ‘루프’를 거쳐간 작가들을 보면, 정연두, 함경아, 권오상, 이동기,이진경 등으로 이젠 대부분 비엔날레 등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으며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다. 대안공간이 만든 실험적 콘텐츠들이 세계 미술계에서도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개인적 차이와 노력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한국 미술에 관심을 보이는 외국의 기획자들은 대안공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 그들의 실험적인 작업에 더 많은 호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화관광부에서 운영비의 일부를 지원해준다니까 간혹 부동산 소유자들이 하나 해볼까 한다고 문의를 하세요. 하지만 매년 운영계획에 대한 심사를 할 뿐 아니라, 치열하게 꾸려가도 힘들다는 걸 알고 단념하지요. 하지만 기획자로서 젊은 작가를 찾아내는 건 부가가치가 큰 투자입니다. 희망은 있어요.”

    아이로니컬하게도 현재 대안공간들이 가장 걱정스러워하는 것은 대안공간의 활동이 두드러지면서 홍대앞과 삼청동 등이 제2의 인사동과 대학로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즉 인사동이 전통문화지구로 지정되면서 임대료가 폭등하는 바람에 화랑과 필방 등이 쫓겨나고 음식점만 들어서 결국 문화가 죽어버리고 말았던 것과 같은 현상이 여기서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특히 마포구청이 ‘문화지구 지정’ 타당성 조사에 들어간 홍대앞은 한 달 새 옷가게만 6곳이 문을 열고 전세값이 오르는 등 상업구역으로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대안공간 ‘루프’의 경우 거리 정비를 이유로 구청에서 간판을 떼어가 ‘문화지구 지정’에 민감해진 상태다. 또 ‘시월’도 연말에 건물이 철거될 예정이라 이미 옮겨갈 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한 대안공간 운영자는 “문화지구 지정이 홍대에 맡겨져 혹시 이곳 대안공간들이 홍대 문화로 규정될까 걱정”이라고 말한다. 사실 홍대가 미술 명문대로 알려져 있으나, 그동안 인근에 활성화된 화랑이 전무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대안공간들은 ‘한국적 모더니즘의 산실’인 홍익대 미대보다 90년대 말 이곳에서 태어난 저항적이고 언더그라운드적인 ‘클럽문화’와 정신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대안공간 운영자들은 뉴욕의 ‘소호’, 서울의 인사동이 관광명소가 되듯 홍대앞이나 삼청동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문화지구 지정’에 홍대앞 문화의 특수성을 최대한 반영시킨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대안공간 운영자들은 11월13일 ‘홍대앞 대안공간 번영회’를 만들었다. 초대 회장으로 선임된 김기용씨는 “구청에서 1년 동안 홍대앞 문화로 자리잡은 프리마켓과 희망시장을 ‘정비’한다는 계획이어서 이를 저지하는 것을 첫번째 목표로 삼았다”고 말한다.

    대안공간 운영자들은 이곳이 ‘문화지구’가 되는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대안’을 찾아나서야 하는 운명인지 모른다. 사실 그들이 가진 것은 ‘공간’이 아니라 끝없이 기성체제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편입될 수도 없는 대안적인 정신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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