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전하되 ‘솔바람 태교(胎敎)’란 습속이 있다. 그러나 그 현장이 되었던 역사 속의 마을은 나와 있지 않아, 이 마을을 찾으려 몸부림친 지 20년도 넘는다. 지금의 임산부들이라면 브람스의 선율을 듣거나 청기(淸氣)의 음식을 먹는 것으로 태교의 전부인 줄 알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귀가 밝았다. 용비늘을 뒤집어쓴 천년송(千年松) 아래서 솔바람을 쐬며 며칠씩 쉬어 호연지기의 기상을 뱃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태교법치고는 가히 놀랍지 않은가?
음력 윤사월이면 이제 솔바람이 뜨기 시작할 때다. 대숲바람은 쇄락 청명하나 솔바람은 장중 은일하다. 산골짜기 천년송이 쳐보내는 솔바람이야말로 지지고 볶는 산해진미의 그 돼먹지 못한 음식상을 일격에 뒤엎고도 남는다. 벽곡( 穀:곡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밥짓는 굴뚝의 연기와는 일찍이 인연을 끊었던 신선(神仙)의 양식이었다.
이른바 선식(仙食)이요 생식(生食)이다. 그 대표적인 식이요법이 솔잎, 녹각운모 등이다. 이는 동양 최고의 의선(醫仙)이던 팽조(彭祖)의 식이요법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는 멀리 예를 들것도 없이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따르면, 의병장 망우당(忘憂堂) 곽재우도 곡식을 완전히 끊고 하루에 송화 한 조각을 먹었을 뿐이다. 그러자 몸은 오히려 가벼워지고 기운이 펄펄 솟았다. 이는 연기(嚥氣)의 법을 얻은 때문인데 도가(道家)에서 전하는 음양의 양생법 중 하나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벗들이 내가 연화(煙火)를 끊은 걸 가엾이 여겨/낙동강 가에 허술한 집 한 채를 지어주었네/주리지 않음은 다만 솔잎을 씹는데 있었고/…송창(松窓)에서 호흡을 고르니 달이 깊고 고요하네/백년을 지나면 가히 나를 신선이라 이르리
또 나도향은 ‘벽파상(碧波上)에 일엽주(一葉舟)’에 이렇게 썼다. 우주율을 타고 노는 낙랑장송의 ‘솔바람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태교 음악의 영약이 아닐 수 없다.
‘소나무에는 바람이 있어야 그 소나무의 값을 나타낸다. 허리가 굽은 늙은 솔이 우두커니 서 있을때는 마치 그 위엄이 능히 눈서리를 무서워하지 않지마는 서늘한 바람이 ‘쏴아’하고 지나면 마디마디 가지가지가 휘늘어져 춤을 추는 것은 마치 칡물 장삼의 소매를 이리 툭 치고 저리 툭 치며 신나게 춤추는 노승과 같아 몸에 넘치는 흥을 느끼게 한다’.
나는 2001년 5월9일 솔바람이 뜨는 좋은 일진을 골라 드디어 해발 8백 고지에 있는 그 마을의 천년송 아래서 태교의 솔바람을 맞았다. 그리고 와운산장(장판석)에서 아내와 함께 ‘송어회’를 먹으며 이런 농담도 했다. ‘오늘 솔바람 태교를 했으니, 용비늘을 뒤집어쓴 솔바람 같은 아이 하나 낳았으면 좋겠네요’. 히멀뜩 늙은 웃음결에도 그 천년송의 가지가 쳐보내는 솔바람이 ‘쏴아’ 쏟아졌다. 실제로 아내는 그 용비늘 한 조각을 뜯어와 냉수에 타 마시기까지 했다. 그 효험은 두고 볼 밖에.
다섯 아름이 넘는 이 천년송에 누워 있는 구름을 쳐다보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송어(松魚)가 제 격이 아닐까. 그것도 무지갯빛 송어가 솔향이 돌고, 그 청랭한 붉은 살점과 푸른 솔바람은 멋과 맛과 메시지에서도 3합의 풍류가 딱 맞는 음식이다. 더구나 천년송의 솔바람을 타는 난향유곡(蘭香幽谷)임에랴! 또한 참취쌈에 곁들이는 고추냉이 알싸한 맛까지 혀 끝에 잦아드니 일품(一品)의 음식으로는 최상이다.
들통나면 단 한 그루밖에 없는 이 태교송(胎敎松)의 용비늘이 그날로 거덜날까 두려워 그 현장을 공개할 수 없음은 서운한 일이다. 삼척군 가곡면 동활리의 단 한 그루밖에 없는 황금사목송(黃金蛇目松 : 뱀눈솔-필자의 저서 ‘태산풍류와 섬진강’ 중 한국의 솔밭 참조)도 관광객들이 관상수용으로 꺾어가 죽고 말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음력 윤사월이면 이제 솔바람이 뜨기 시작할 때다. 대숲바람은 쇄락 청명하나 솔바람은 장중 은일하다. 산골짜기 천년송이 쳐보내는 솔바람이야말로 지지고 볶는 산해진미의 그 돼먹지 못한 음식상을 일격에 뒤엎고도 남는다. 벽곡( 穀:곡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밥짓는 굴뚝의 연기와는 일찍이 인연을 끊었던 신선(神仙)의 양식이었다.
이른바 선식(仙食)이요 생식(生食)이다. 그 대표적인 식이요법이 솔잎, 녹각운모 등이다. 이는 동양 최고의 의선(醫仙)이던 팽조(彭祖)의 식이요법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는 멀리 예를 들것도 없이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따르면, 의병장 망우당(忘憂堂) 곽재우도 곡식을 완전히 끊고 하루에 송화 한 조각을 먹었을 뿐이다. 그러자 몸은 오히려 가벼워지고 기운이 펄펄 솟았다. 이는 연기(嚥氣)의 법을 얻은 때문인데 도가(道家)에서 전하는 음양의 양생법 중 하나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벗들이 내가 연화(煙火)를 끊은 걸 가엾이 여겨/낙동강 가에 허술한 집 한 채를 지어주었네/주리지 않음은 다만 솔잎을 씹는데 있었고/…송창(松窓)에서 호흡을 고르니 달이 깊고 고요하네/백년을 지나면 가히 나를 신선이라 이르리
또 나도향은 ‘벽파상(碧波上)에 일엽주(一葉舟)’에 이렇게 썼다. 우주율을 타고 노는 낙랑장송의 ‘솔바람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태교 음악의 영약이 아닐 수 없다.
‘소나무에는 바람이 있어야 그 소나무의 값을 나타낸다. 허리가 굽은 늙은 솔이 우두커니 서 있을때는 마치 그 위엄이 능히 눈서리를 무서워하지 않지마는 서늘한 바람이 ‘쏴아’하고 지나면 마디마디 가지가지가 휘늘어져 춤을 추는 것은 마치 칡물 장삼의 소매를 이리 툭 치고 저리 툭 치며 신나게 춤추는 노승과 같아 몸에 넘치는 흥을 느끼게 한다’.
나는 2001년 5월9일 솔바람이 뜨는 좋은 일진을 골라 드디어 해발 8백 고지에 있는 그 마을의 천년송 아래서 태교의 솔바람을 맞았다. 그리고 와운산장(장판석)에서 아내와 함께 ‘송어회’를 먹으며 이런 농담도 했다. ‘오늘 솔바람 태교를 했으니, 용비늘을 뒤집어쓴 솔바람 같은 아이 하나 낳았으면 좋겠네요’. 히멀뜩 늙은 웃음결에도 그 천년송의 가지가 쳐보내는 솔바람이 ‘쏴아’ 쏟아졌다. 실제로 아내는 그 용비늘 한 조각을 뜯어와 냉수에 타 마시기까지 했다. 그 효험은 두고 볼 밖에.
다섯 아름이 넘는 이 천년송에 누워 있는 구름을 쳐다보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송어(松魚)가 제 격이 아닐까. 그것도 무지갯빛 송어가 솔향이 돌고, 그 청랭한 붉은 살점과 푸른 솔바람은 멋과 맛과 메시지에서도 3합의 풍류가 딱 맞는 음식이다. 더구나 천년송의 솔바람을 타는 난향유곡(蘭香幽谷)임에랴! 또한 참취쌈에 곁들이는 고추냉이 알싸한 맛까지 혀 끝에 잦아드니 일품(一品)의 음식으로는 최상이다.
들통나면 단 한 그루밖에 없는 이 태교송(胎敎松)의 용비늘이 그날로 거덜날까 두려워 그 현장을 공개할 수 없음은 서운한 일이다. 삼척군 가곡면 동활리의 단 한 그루밖에 없는 황금사목송(黃金蛇目松 : 뱀눈솔-필자의 저서 ‘태산풍류와 섬진강’ 중 한국의 솔밭 참조)도 관광객들이 관상수용으로 꺾어가 죽고 말았음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