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중앙지법은 10월 31일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 등에게 최대 징역 8년과 추징금 총 473억3200만 원을 선고했다. 검찰에 출석하고 있는 김 씨(왼쪽)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 뉴시스
검찰 구형의 6%만 인정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조형우)는 10월 31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하고 428억 원 추징을 명령했다.(표 참조) 함께 재판을 받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8억1000만 원), 정민용 변호사(37억2200만 원) 등에게 부과한 금액을 더하면 추징금 총액은 473억3200만 원이다. 당초 검찰은 2021년 10월 이들을 기소하면서 “민간업자들이 성남시 공무원 등과 결탁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는 이유로 총 7814억 원 추징을 구형한 바 있다. 법원 선고가 구형액의 6% 수준에 그쳤는데도 검찰이 11월 7일 항소를 포기해 파문이 일었다. 전문가들은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이상 민사소송이 진행돼도 범죄수익금 전체를 환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검찰은 피고인들이 대장동 관련 사업을 통해 거둬들인 전체 이익을 추징금으로 구형했다. 성남시 수뇌부와 민간업자가 공모해 저지른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행위 결과로 본 것이다. 하지만 1심 재판부가 공소 시효(7년)가 지났다는 이유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추징금 액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재판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도 무죄로 봤다. 범죄가 벌어질 당시 재산상 이득 액수가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하고 이에 따른 부패 재산 1128억 원을 추정한 뒤 추징액을 결정했다.
문제는 대장동 5인이 항소한 반면, 검찰은 항소를 포기해 형량과 추징금 액수를 사실상 늘릴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형사소송법 제368조(불이익 변경의 금지)는 피고인만 항소한 경우 원심보다 더 무거운 형을 내리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1심보다 징역형을 낮춰 추징금을 늘리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 경우 징역형을 대폭 낮춰야 하고, 추징금을 크게 늘리기도 어렵다. 만일 피고인들이 2심 진행 중 항소를 취하하면 재판이 중단되고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왼쪽)이 11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 돈 훔쳐 호주머니 찔러준 꼴”
이에 대해 야권에서는 곧바로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민 돈을 훔쳐 김만배 호주머니에 찔러준 격”이라면서 “김만배는 묶여 있던 재산을 되돌려받아 떵떵거리며 잘살게 생겼다”고 지적했다. 김 씨가 대장동 관련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은 6100억 원으로 추정돼 추징금을 납부하더라도 5672억 원이 남는다.검찰 내부에서도 반발이 나오고 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는 11월 9일 내부망에 올린 ‘대장동 개발 비리 관련자 5명에 대한 1심 판결 항소 필요성’이라는 글에서 천문학적 액수의 범죄수익 환수가 좌절된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강 검사는 “항소 포기로 남욱, 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0분의 1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 조직 윗선의 역할은 실무 수사·공판을 하는 검사들을 외압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인데, 수사·공판팀의 항소 요구를 윗선에서 막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검찰의 항소 포기로 대장동 일당이 7800억 원대 수익의 상당액을 그대로 챙기게 됐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11월 10일 도어스테핑에서 “2000억 원 정도는 이미 몰수보전돼 있다”며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입증만 제대로 하면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국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도 “성남시가 이미 민사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국가가 몰수·추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지난해 10월 이재명 대통령 등에게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 재판은 현재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민사소송을 맡은 재판부는 범죄수익 여부부터 따져야 해 결국 형사재판 결과가 손해배상 근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대장동 1심 재판부 역시 “(대장동) 민사소송은 1심 변론 기일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며 “공사가 민사소송 절차를 통해 피해를 회복하는 것은 심히 곤란하게 됐다고 봄이 상당하다. 뒤늦게나마 피해 회복 과정에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항소 포기 이해 안 돼”
또 검찰이 몰수보전해둔 2070억 원에 대해서도 대장동 피고인들이 1심에서 인정된 추징금이 사실상 확정된 것을 근거로 법원에 2070억 원에 대한 추징 보전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 신상진 경기 성남시장은 11월 10일 입장문을 통해 “검찰의 항소 포기는 1심 재판부가 지적한 ‘장기간 유착 관계에 따른 부패 범죄’에 대해 ‘국가형벌권’을 포기하고 면죄부를 주는 부당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12일에는 항소 포기 외압 의혹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정 장관 등 관련자를 공수처에 고소·고발 조치하고, 2070억 원에 대해 가압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법조계에서는 검찰의 항소 포기로 대장동 5인으로부터 환수할 수 있는 금액의 상한선이 사실상 정해졌다고 평가한다. 황도수 교수는 “2심에서 추징액은 지금보다 늘어나기가 거의 어렵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구형한 추징액과 실제 나온 추징액이 상당히 차이 나는 상황에서 항소를 포기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민사소송에서 배상을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형사상 추징금과 민사상 배상액은 엄연히 다른데, 정치권에서 이를 혼용해 쓰는 것은 의미를 축소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몰수보전한 2000억여 원도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1심 추징액을 근거로 피고인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몰수보전금 반환에 대해서는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고인들이 법원에 청구하더라도 민사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범죄자들이 주로 차명으로 재산을 은닉하는 만큼 더 많은 범죄수익금에 대해 몰수보전을 신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안녕하세요. 문영훈 기자입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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