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달러 환율이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555.2원에 거래를 시작한 6월 8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은행 환전소 모니터에 원화 구입가가 달러당 1612원으로 표시돼 있다. 뉴시스
코스피 8000, 경상수지 최대 흑자인데 왜?
원/달러 환율은 6월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1550.2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환율 시초가로는 서브프라임발(發)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이던 2009년 3월 6일(1590원)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연초 원/달러 환율이 1440원대에서 출발한 것을 감안하면 100원 넘게 오른 것이다(그래프 참조).최근 원화 약세 추이는 연초부터 코스피 랠리가 지속하고 1~4월 누적 경상수지가 사상 최고치인 1026억7000만 달러(약 155조9000억 원) 흑자를 기록한 국내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통상 증시가 오르면 외국인 자금이 유입돼 원화가 강세를 보이고,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되면 달러 공급이 늘어나 환율 하락 압력이 커진다.
하지만 최근 원화 가치는 여타 통화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6월 5일 종가 기준 원화 가치는 미국-이란 전쟁 전인 2월 27일보다 6.9% 떨어졌다. 하락폭은 한국은행이 환율을 집계하는 42개국 통화 중 이집트 파운드 8.1%, 인도네시아 루피아 7.6%에 이어 세 번째로 컸다.
여기엔 외국인의 국내 주식 대규모 순매도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월부터 6월 8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순매도는 113조7900억 원에 이른다. 특히 최근 들어 ‘셀 코리아’ 추세는 더 두드러진다. 외국인투자자는 5월 7일부터 6월 9일까지 22거래일 연속 코스피 시장 순매도를 이어가며 70조7063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코스피가 급격히 오르면서 자산배분 관점의 기계적 리밸런싱(재조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매도하면 이를 달러로 바꾸기 위해 외환시장에 원화 공급이 늘어나 원화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서학개미가 미국 주식을 팔아 국내 증시로 돌아오는 추세는 외국인 매도세에 비해서는 미미한 수준이다.
늘어난 경상수지도 환율 안정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쌓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우리 기업들이 10% 이상 지분을 가진 해외 자회사가 국내 배당이나 현지 투자에 사용하지 않고 쌓아둔 달러를 ‘재투자 수익 수입’으로 분류하는데, 1분기 재투자 수익 수입은 42억 달러(약 6조3800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13억5000만 달러)의 3배 이상 수준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가가 오르고, 기준금리 인상 전망이 나오면서 달러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점 역시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환율 상승이 경제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 현재 한국은 달러 빚보다 해외 투자 자산이 많은 순대외채권국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나, 서브프라임발(發) 금융위기 당시엔 한국은 갚아야 할 달러 빚이 더 많은 순채무국이었다.
문제는 고환율이 지속되면 지출 비용 중 달러 비중이 큰 항공·정유·석유화학 업계 등 산업 전반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환율 10% 상승 시 단기적으로 보면 수익성이 악화되는 기업 수는 38.2%로 절반 이하에 머물지만, 환율 상승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수출기업이 비용 인상분을 판매가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수익성 악화 기업 수 비중은 80.1%로 크게 상승한다. 고환율에 따른 물가상승도 서민층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3.1% 오르며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

“정부가 달러 푸는 데 한계 있다”
정부는 환율 급등에 대해 강도 높은 개입을 이어가고 있다. 6월 8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재부 장관 주재로 긴급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소집했고, 같은 날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는 국장급 공동명의의 구두 개입 메시지까지 추가로 발표했다. 두 기관이 공동 구두 개입에 나선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6개월 만이다.이후 환율은 1510원대까지 내려오는 등 소강상태를 보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년간의 확장 재정으로 늘어난 통화량과 전쟁 등에 의한 강달러 기조로 볼 때 고환율이 ‘뉴노멀’로 지속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는 “2022년 말부터 3년간 미국 통화량이 3% 늘어나는 동안 한국 통화량은 15% 늘었다”며 “미국의 금리인상 우려와 외국인의 증시 매도세 우려에 의한 오버슈팅(과잉 상승) 분을 제외하더라도 1480~1490원을 적정 환율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중동 리스크와 외국인 주식 매도라는 원화 약세 요인이 소멸해도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안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구두 개입 등 외환정책으로도 환율이 떨어지지 않으면 한국은행이 빅스텝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최지욱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다양한 외환정책 투입에도 1600원 내외까지 접근할 경우 과도한 쏠림 방지 및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방지하고자 기준금리를 0.5% 인상할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분석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외환보유고를 사용해 달러를 풀거나 국민연금이 환헤지를 지속하는 등 정부가 개입하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고환율 상황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안녕하세요. 문영훈 기자입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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