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수 HSL파트너스 대표. 박해윤 기자
11월 10일 만난 반도체 전문가 이형수 HSL파트너스 대표는 이에 대해 “충분히 더 오를 공간이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국내외 투자업계는 HBM(고대역폭메모리) 기업 밸류에이션을 평가할 때 주가순자산비율(PBR) 할증도 모자라 주가수익비율(PER)을 적용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D램 쪽에서는 10월 고정거래가격 책정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제는 D램도 HBM처럼 ‘장기공급계약(LTA)’을 맺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패러다임 변화를 고려할 때 SK하이닉스의 적정 주가는 지금의 약 2배 수준이다.” 다음은 이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AI 버블 초입, 아직 붕괴 멀었다”
이번에도 ‘지나가는 버블론’인 것 같다.“AI 버블 우려는 계속 제기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짧은 파동이 생기는 흐름이 반복될 전망이다. 2022년 11월 AI 혁명이 시작된 이래 이미 여러 차례 버블론이 불거지지 않았나. 아닌가 보다, 아닌가 보다 하다가 언젠가 진짜가 오겠지만 당장 올해, 내년은 아니다.”
미국 빅테크의 채권 발행도 괜찮은 건가.
“신사업 분야에 진출하는 기업은 처음에는 현금으로 투자하다가 나중에는 빚을 내서 하고, 그다음에는 증자를 한다. 현금 투입과 회사채 발행은 모두 초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시장이 꺾이려면 아직 한참 더 가야 한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빅테크의 채권 발행 금리가 미국 국채보다 낮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이 미국 정부 파산보다 빅테크 파산 가능성이 더 적다고 본다는 의미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아직은 버블이 붕괴하는 위험 단계로 보기 어렵다.”
지난달 인터뷰 때 연말 전 조정은 매수 기회라고 했다. 이번이 그때였나.
“그렇다. 오늘(11월 10일)부터 다시 오르고 있지만 비중이 없다면 오늘이라도 따라붙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SK하이닉스가 60만 원대, 삼성전자가 10만 원대다(그래프1·2 참조). 상방이 그리 많이 열려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기존 관점에서는 그렇지만, 최근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메모리 기업은 항상 재고 리스크를 안고 있다 보니 PBR로 밸류에이션이 매겨졌다. 수요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오너들이 동물적 감각으로 베팅하고 그게 맞아떨어지면 50% 이익, 아니면 공급 과잉으로 손실을 보는 것이다. 반면 TSMC 같은 파운드리업체는 주문을 받은 다음 설비투자(CAPEX·자본적 지출)에 나선다. 투자가 늘면 실적으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있고, 그래서 PER로 가치를 평가한다. 이런 가운데 SK하이닉스의 주력인 HBM은 연 단위 공급계약을 맺는다는 점에서 파운드리에 가깝다. 특히 HBM이 SK하이닉스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한 이후 더는 PBR로 SK하이닉스의 밸류에이션을 매길 수 없게 됐다. 이미 주가가 천장을 뚫었다는 뜻이다. HBM에 PER 15배 프리미엄을 적용한 SK하이닉스의 적정 주가는 지금의 2배, 120만 원이다.”

D램 기업도 PER 밸류 매겨지나
D램이 주력인 삼성전자, 마이크론은 사이클 회복이 이미 주가에 반영됐다고 보면 되나.“사이클 회복의 연장선에서 최근 D램 기업에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10월 반도체 고정거래가격 결정이 잠정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D램은 95%가 계약 당사자가 정해져 있는 B2B(기업 간 거래) 비즈니스다. 5% 정도만 일반 유통가에서 스폿 가격으로 거래된다. 그리고 이 스폿 가격이 한 달에서 한 달 보름 뒤쯤 고정거래가격에 반영된다. 그런데 최근 스폿 가격이 기존의 2배로 올라버렸다. 이를 두고 수요업체는 ‘단기 이상 징후다’, 공급업체는 ‘이게 일시적인지, 구조적인지 어떻게 아느냐’며 이견을 보였고, 일단 가격 책정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공급업체들은 이를 계기로 아예 범용 D램도 장기공급계약을 맺으려 하고 있다. 기존에는 월 단위, 분기 단위로 거래했지만 앞으로 D램도 HBM처럼 6개월~1년 치를 미리 계약하자는 것이다. 예전에는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기였지만 지금은 장기 공급 부족이 예상되다 보니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들도 ‘한번 논의해보자’는 반응이다. 그러면 앞으로는 D램도 범용이 아닌 주문형으로 진화하는 것이고, 이에 따라 삼성전자나 마이크론처럼 D램에 주력하는 기업도 PER로 밸류에이션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외국인은 삼성전자로, 개인은 SK하이닉스로 매수세가 엇갈리는 것도 이와 관련 있나.
“그렇다. SK하이닉스는 지금도 PER로 가격 책정이 이뤄지지만, 삼성전자는 이제 막 PBR에서 PER로 넘어갈 수 있는 트리거 포인트가 생겼다. 외국인투자자들은 이미 SK하이닉스를 충분히 갖고 있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단기 업사이드는 삼성전자에 더 있다고 보는 듯하다.”
‘깐부 회동’은 어떻게 봤나.
“‘한마디로 삼성전자 HBM4에 대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러브콜이었다. 올해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4 납품 단가를 약 50%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HBM4부터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꽤 의미 있는 물량을 조달할 예정이라서 엔비디아는 오히려 가격을 깎으려고 했는데, SK하이닉스가 ‘보아 하니 (경쟁사가) 잘 못할 것 같은데’ 하면서 베팅에 나섰고 그게 통한 것이다. 당초 엔비디아는 HBM4부터 SK하이닉스 물량을 기존 85~90%에서 50% 초반까지 낮추려 했다. 삼성전자가 25%, 마이크론이 20% 정도를 담당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그런데 최근 D램 가격이 급등하면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이전처럼 HBM4에 사활을 걸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지 않았나. 물론 미래 성장동력을 위해서는 뛰어들어야 하지만 D램 사이클이 살아나면 사실 가만히 있어도 50% 이익이 발생한다. 외려 HBM4로 전환하면 SK하이닉스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려 적자가 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HBM4 양산 시점에 대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톤이 연초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러면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SK하이닉스에 급행료를 주면서 HBM4를 추가 발주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삼성전자가 25%라는 목표 물량을 담당하지 못할까 봐 치맥까지 마셔가며 ‘제이(J: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절대 포기해선 안 돼’라는 메시지를 낸 것이다. 아무리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 일이 많다지만 그 자리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왜 안 불렀겠나.”
삼성전자 HBM4 급해진 엔비디아
연말 반도체 투자에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그동안은 반도체를 논할 때 내수, 소비재 수요 등을 따졌다. 하지만 이제는 반도체 최종 수요처가 AI 인프라로 이동했다. 인프라는 대규모 펀드를 만들어 투자하기 때문에 금리에 굉장히 민감하다. 따라서 12월 금리인하를 두고 계속 노이즈가 나오는 게 단기 변동성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행하는 막대한 규모의 국채가 시장에서 소화가 안 될 경우에도 일시적 충격이 올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들이 중장기적 반도체 사이클을 훼손한다는 뜻은 아니다.
추가로 반도체 소부장 랠리가 언제 발생하느냐에 따라 대형주 주가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만 수급이 몰려 있는데 이게 조금 분산될 것이냐, 아니면 계속 대형주 중심으로 갈 것이냐가 중요 포인트다. 개인적으로는 늦어도 12월에는 소부장 랠리가 나올 것이라고 본다.”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슬아 기자입니다. 국내외 증시 및 산업 동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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