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화제다. 김 부장은 서울에 자기 집을 갖고 있고 대기업 부장이라는 타이틀도 보유 중이다. 서울에 본인 집을 갖는 것도, 대기업에서 부장까지 승진하는 것도 어려운 요즘 상황에 김 부장은 분명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다만 지금까지 잘살아왔다는 게 앞으로도 잘산다는 것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나는 이 드라마를 원작 소설로 먼저 접했다. 드라마가 소설과 비슷하게 줄거리를 끌고 갈지, 아니면 드라마 성격에 맞게 스토리를 재구성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소설대로라면 김 부장은 직장 그늘에서 벗어난 이후 많은 금전적 어려움을 겪는다. 그것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지인 A는 재벌 계열사 대기업에 다녔다. 열심히 일해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계속 승진해 최고경영자(CEO)까지 됐다. 지금은 재벌가 일원이 아니어도 계열사 CEO가 되는 경우가 꽤 있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일반 직원이 재벌 계열사 CEO까지 올라가는 사례가 드물었다. A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고 열심히 한 것은 사실이다. 몇 년 뒤 CEO를 그만두고 나서도 한 코스닥 상장사 CEO로 영입돼 몇 년간 더 일했다.
당시 대기업 CEO의 보수는 최근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수준은 됐다. A는 60세 정도에 은퇴했는데, 대기업 이사를 오래 하고 CEO도 하고 이후 코스닥 회사 CEO도 했으니 충분한 재산을 만들 수 있었다. 서울 강남에 아파트 하나, 빌라 하나, 그리고 오피스텔 2채를 보유해 여유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A는 김 부장처럼 투자에 문외한이 아니었다. 기업 CEO를 지낸 사람이 돈 관리를 허투루 할 리 없다. 아파트, 오피스텔까지 미리 투자용으로 마련해놓아 소위 말하는 노후 대책을 완성했다.
전직 CEO답게 노후 대책도 단순히 재산을 마련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은퇴하고 나서 얼마나 돈이 들어오고 나갈지 수입·지출 계획서를 만들었고, 그것에 맞춰 자금을 관리했다. A는 자식들에게 큰돈을 남기지 않고 살아생전 자신이 번 돈을 다 쓰고 세상을 떠나기를 바랐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배우자가 여생을 보낼 수 있는 돈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다 쓰려고 했다.
그렇게 A가 만반의 노후 대책을 마련하고 퇴직한 지 20년이 됐다. 지금 A는 어떻게 됐을까. 현재 A는 보유한 부동산이 없다. 따로 주식 같은 자산도 없다. 전 재산이 사라졌다. 수입은 월 100만 원이 채 안 되는 국민연금뿐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노후 빈곤층’이 됐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가장 큰 문제는 A가 스스로 생각한 예상 수명보다 더 오래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A는 자기 수명을 75세 정도로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일찍 죽을 거라고 예상했던 건 아니다. 20년 전에는 그 정도면 충분히 오래 사는 것으로 봤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예산 계획을 짰다. 그런데 평균 수명이 계속 늘었다. A는 75세까지 자기 돈을 다 쓰고 죽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는데 80세가 넘어서도 살아 있으니 결국 노후 빈곤을 경험하게 됐다.
이런 사람들이 75세까지 잘살다가 76세부터 갑자기 가난해지는 것은 아니다. 훨씬 이전부터 이대로라면 75세를 넘어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때부터 지출을 원래 계획대로 할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이제는 돈이 부족해질 거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걱정하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돈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생활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A는 차근차근 부동산을 팔았다. 애초에 현금이 떨어지면 부동산을 처분해 생활비를 보충하려 했으니 그것은 계획 범위 안이었다. 오피스텔들을 팔 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그다음 강남 아파트를 처분하려 할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A는 빌라에 거주했으니 아파트를 팔아야 했다. 그런데 그즈음 다주택자 규제가 강화됐다. 집을 2채 이상 보유한 사람이 집을 팔면 엄청난 양도소득세가 부과됐다. A가 강남 아파트를 마련한 것은 한참 전이고 그사이 가격이 크게 올랐다. 그러니 양도소득세로 내야 하는 돈도 많아졌다. A는 아파트를 전세 준 상태였는데, 결과적으로 전세 보증금과 양도소득세를 제하고 나니 남는 돈이 별로 없었다. 계획대로라면 아파트에서 많은 돈이 나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빌라를 팔아야 했다. 그런데 아파트와 달리 빌라는 잘 팔리지 않는다. 빌라를 처분해 생활비로 써야 하는데, 팔리지 않으니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빌라에는 은행 대출이 있었다. 매달 이자를 갚아야 했지만 이자 내기가 어려워졌다. 여유가 있을 때는 별것 아닌 은행 이자였지만 돈에 쪼들리기 시작하니 은행 이자가 지출에서 가장 무서운 항목이 돼버렸다. 집은 팔리지 않고 은행 이자는 내야 하니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서 당장의 지출은 메꿀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부터는 그 빌린 돈의 이자도 지불해야 했다. A는 정말 돈 때문에 고생하는 삶을 살았다.
국민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렵다. 평소 A는 나이 들어 자식들에게 용돈을 받아 사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결국 A는 자식들의 지원이 있어야만 살 수 있게 됐다. 60대까지 A의 삶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80대가 된 지금 모습을 보면 A의 삶이 성공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A는 절대 되고 싶지 않다던 궁핍한 노인이 된 것이다.
노후 준비는 어렵다. 특히 언제까지 살지 모르는 장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속 김 부장처럼 재테크와 투자에 무지한 사람만 노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잘 준비하고 대처해도 세상이 바뀌면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단지 재산을 많이 준비했다고 노후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A의 상황은 그것을 알려준다. 노후 생활을 잘 계획하고 실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지인 A는 대기업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내며 남부럽지 않은 노후 대책을 세웠지만 지금은 궁핍한 80대 노인이 됐다. GettyImages
강남 아파트·빌라·오피스텔 마련했는데…
김 부장은 회사에 충실한 삶을 살았지만 나이 들어 이른바 ‘꼰대’가 됐고, 업무 이외 재테크나 투자 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회사를 벗어난 뒤 삶이 어려워졌다. 김 부장이 퇴직 후 고생한 이유는 평소 돈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리 투자를 배우고 돈 관리를 했더라면 퇴직 이후 삶, 특히 노후 생활이 평안해졌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내 경험상 꼭 그렇지는 않다. 돈에 대해 잘 알아도 노후는 어려울 수 있다.지인 A는 재벌 계열사 대기업에 다녔다. 열심히 일해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계속 승진해 최고경영자(CEO)까지 됐다. 지금은 재벌가 일원이 아니어도 계열사 CEO가 되는 경우가 꽤 있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일반 직원이 재벌 계열사 CEO까지 올라가는 사례가 드물었다. A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고 열심히 한 것은 사실이다. 몇 년 뒤 CEO를 그만두고 나서도 한 코스닥 상장사 CEO로 영입돼 몇 년간 더 일했다.
당시 대기업 CEO의 보수는 최근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수준은 됐다. A는 60세 정도에 은퇴했는데, 대기업 이사를 오래 하고 CEO도 하고 이후 코스닥 회사 CEO도 했으니 충분한 재산을 만들 수 있었다. 서울 강남에 아파트 하나, 빌라 하나, 그리고 오피스텔 2채를 보유해 여유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A는 김 부장처럼 투자에 문외한이 아니었다. 기업 CEO를 지낸 사람이 돈 관리를 허투루 할 리 없다. 아파트, 오피스텔까지 미리 투자용으로 마련해놓아 소위 말하는 노후 대책을 완성했다.
전직 CEO답게 노후 대책도 단순히 재산을 마련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은퇴하고 나서 얼마나 돈이 들어오고 나갈지 수입·지출 계획서를 만들었고, 그것에 맞춰 자금을 관리했다. A는 자식들에게 큰돈을 남기지 않고 살아생전 자신이 번 돈을 다 쓰고 세상을 떠나기를 바랐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배우자가 여생을 보낼 수 있는 돈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다 쓰려고 했다.
그렇게 A가 만반의 노후 대책을 마련하고 퇴직한 지 20년이 됐다. 지금 A는 어떻게 됐을까. 현재 A는 보유한 부동산이 없다. 따로 주식 같은 자산도 없다. 전 재산이 사라졌다. 수입은 월 100만 원이 채 안 되는 국민연금뿐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노후 빈곤층’이 됐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예상 못한 다주택자 규제 강화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돌이켜보면 퇴직한 뒤 예상보다 지출이 컸던 것 같다. A가 특별히 흥청망청 돈을 쓴 건 아니다. 그러나 퇴직 이전의 생활수준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랐다. 이 점에서 대기업 CEO를 지냈다는 것이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 됐다. 대기업 CEO는 좋은 차를 타고, 좋은 것을 먹는다. 자기 돈이 아니라 회사 돈으로 생활비의 많은 부분을 지출할 수 있다. 그런데 퇴직 후에는 그런 것들을 모두 자기 돈으로 써야 한다. 대기업 CEO로 있을 때 회사 돈으로 누렸던 의식주 수준을 자기 돈을 써가며 그대로 유지하려 하니 지출이 많을 수밖에 없다. A가 생활수준을 낮춘 건 퇴직한 지 한참 돼서 노후 지출 계획에 차질이 생긴 후였다. 퇴직하고 수입이 크게 줄어들면 생활수준도 그것에 맞게 변해야 한다. 수입이 없는데 생활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면 어떤 식으로든 탈이 난다.가장 큰 문제는 A가 스스로 생각한 예상 수명보다 더 오래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A는 자기 수명을 75세 정도로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일찍 죽을 거라고 예상했던 건 아니다. 20년 전에는 그 정도면 충분히 오래 사는 것으로 봤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예산 계획을 짰다. 그런데 평균 수명이 계속 늘었다. A는 75세까지 자기 돈을 다 쓰고 죽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는데 80세가 넘어서도 살아 있으니 결국 노후 빈곤을 경험하게 됐다.
이런 사람들이 75세까지 잘살다가 76세부터 갑자기 가난해지는 것은 아니다. 훨씬 이전부터 이대로라면 75세를 넘어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때부터 지출을 원래 계획대로 할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이제는 돈이 부족해질 거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걱정하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돈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생활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A는 차근차근 부동산을 팔았다. 애초에 현금이 떨어지면 부동산을 처분해 생활비를 보충하려 했으니 그것은 계획 범위 안이었다. 오피스텔들을 팔 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그다음 강남 아파트를 처분하려 할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A는 빌라에 거주했으니 아파트를 팔아야 했다. 그런데 그즈음 다주택자 규제가 강화됐다. 집을 2채 이상 보유한 사람이 집을 팔면 엄청난 양도소득세가 부과됐다. A가 강남 아파트를 마련한 것은 한참 전이고 그사이 가격이 크게 올랐다. 그러니 양도소득세로 내야 하는 돈도 많아졌다. A는 아파트를 전세 준 상태였는데, 결과적으로 전세 보증금과 양도소득세를 제하고 나니 남는 돈이 별로 없었다. 계획대로라면 아파트에서 많은 돈이 나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빌라를 팔아야 했다. 그런데 아파트와 달리 빌라는 잘 팔리지 않는다. 빌라를 처분해 생활비로 써야 하는데, 팔리지 않으니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빌라에는 은행 대출이 있었다. 매달 이자를 갚아야 했지만 이자 내기가 어려워졌다. 여유가 있을 때는 별것 아닌 은행 이자였지만 돈에 쪼들리기 시작하니 은행 이자가 지출에서 가장 무서운 항목이 돼버렸다. 집은 팔리지 않고 은행 이자는 내야 하니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서 당장의 지출은 메꿀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부터는 그 빌린 돈의 이자도 지불해야 했다. A는 정말 돈 때문에 고생하는 삶을 살았다.
변수 많아 준비 어려운 노후
빌라는 한참 뒤에 팔렸다. 하지만 은행 대출을 갚고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빌린 돈을 갚자 남은 돈이 별로 없었다. 빌라에서 나와 자신과 배우자가 살 집을 새로 구하고 나니 끝이었다. 부동산은 모두 처분했는데, 남은 목돈은 없고 생활비는 국민연금으로 나오는 돈뿐이었다. A가 대기업 CEO를 지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에게는, A가 승승장구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에게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노후였다.국민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렵다. 평소 A는 나이 들어 자식들에게 용돈을 받아 사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결국 A는 자식들의 지원이 있어야만 살 수 있게 됐다. 60대까지 A의 삶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80대가 된 지금 모습을 보면 A의 삶이 성공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A는 절대 되고 싶지 않다던 궁핍한 노인이 된 것이다.
노후 준비는 어렵다. 특히 언제까지 살지 모르는 장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속 김 부장처럼 재테크와 투자에 무지한 사람만 노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잘 준비하고 대처해도 세상이 바뀌면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단지 재산을 많이 준비했다고 노후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A의 상황은 그것을 알려준다. 노후 생활을 잘 계획하고 실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