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일 경찰인재개발원 원장. [조영철 기자]
올해 국내 치안 현장은 KTX 차창 밖 풍경과 대비된다. 잇따른 ‘묻지 마’ 흉기난동 사건은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서울 강남에서 마약이 든 음료를 학생들에게 시음하게 한 사건도 벌어졌다. 온라인 성착취 범죄는 꾸준히 늘어나는 데다, 국민이 느끼는 체감안전도도 하락했다. 갈수록 지능화·흉포화되는 범죄에 맞서야 하는 경찰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서울역을 출발한 지 한 시간 만에 송 원장과 마주 앉았다.
AI, 다크웹, UAM, XR… 기술 진화에 대응하는 경찰
경찰인재개발원에 마련된 경찰차 운전 시뮬레이터. [경찰인재개발원 제공]
“KTX 천안아산역에서 20분 거리라 전국 경찰관들이 찾아오기 좋다. 교육과 ‘힐링’을 위한 최적의 장소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3분의 2 정도인 168만6709㎡(약 51만 평) 부지, 건물 36개 동에서 교수 60여 명과 직원 260여 명이 교육을 한다. 올해는 호신체포술 등 103개 교육 과정에 경찰관 1만2058명이 참가했다. 과정별로 일주일간 교육한다고 보면 된다.”
본관 1층 ‘미래치안교육관’에 단체 견학을 온 대학생들이 보이던데.
“일반인도 많이 찾는다. 교육관은 첨단장비를 체험하는 교육 장소로 올해 개관했다. 요즘 경찰관은 AI(인공지능) 기술, 다크웹(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해 접속하는 웹), UAM(도심항공교통), XR(확장현실), 드론 등 급격한 기술 발전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교육관에는 2016년 경찰관 1명이 사망한 서울 오패산 총기난사 현장을 VR(증강현실) 기술로 재현해놓았다. 어디에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주파수와 열 감지를 통한 ‘몰카’ 검색 시스템, 현장에서 떨어져 있는 지휘관이 현장 화면을 보며 원거리 지휘를 할 수 있는 무선망 시스템도 눈길을 끌었다.
경찰인재개발원 XR(확장현실) 체험장. [경찰인재개발원 제공]
“마약 수사는 범인을 검거하더라도 증거물(마약)을 찾기가 어렵다. 따라서 경찰견종합훈련센터에서 마약탐지견과 전자기기탐지견을 훈련시켜 활용하고, AI 기술을 탑재한 드론을 이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드론을 이용하나.
“그렇다. 드론을 띄워 양귀비 같은 마약 재배 지역이나 마약 전달 장소를 감시하는 것은 물론, 마약 거래 온상이 된 다크웹을 추적하는 등 첨단기술도 익혀야 한다. 우리가 법제처 등 여러 기관과 협력해 ‘드론 전문 교육기관’으로 지정받고, 최근 훈련교육장을 준공한 것도 이 때문이다. 드론 국가자격증 취득 과정도 운영한다.”
전자기기탐지견은 뭔가.
“‘N번방 사건’(성착취 영상을 SNS를 통해 공유·판매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처럼 성착취 음란물사범이나 산업기밀 유출사범 등을 검거하는 데 활용한다. USB(이동식 저장장치)나 외장하드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화학물질 냄새에 반응하도록 훈련시킨다. 범죄 현장을 급습해도 증거물을 저장매체에 담아 은밀한 곳에 숨겨놓으면 찾을 방도가 없다. 이를 탐지견이 냄새로 찾아낸다.”
신림동 칼부림 사건 등 ‘묻지 마 범죄’ ‘이상동기 범죄’로 사회적 충격도 컸는데.
“이상동기 범죄는 범죄자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공격할지 몰라 위험하다. 따라서 경찰관은 위기 상황 대처 능력을 키워야 하고, 언어적 통제와 총기 사용 등 물리력 전반에 걸친 종합훈련이 필요하다.”
보수교육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는데 교육을 받으려면 왠지 눈치가 보이지 않나.
“이해한다(웃음). 그래서 원장에 취임하면서 ‘휴가가 권리이듯, 교육도 권리’라고 강조했다. 이젠 교육도 휴가처럼 자기가 필요할 때 신청해 부족한 점을 채워야 한다. 물론 인재원은 교육생을 정성스레 대해야 하고….”
‘K-치안’ 해외로 확산
정성스레 대한다는 건.“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나와 세상을 변화시킨다. ‘중용(中庸)’ 23장이 내 교육철학이다(웃음).우리가 최고 교관(교수진)을 선발하고, 이들이 ‘정성’을 다해 최고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면 교육생은 감동하기 마련이다. 이들이 교육 내용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자신감 있게 ‘정성’을 다해 봉사한다면 국민 안전을 지키고 경찰 신뢰도 높아질 것이다. 결국 우리의 작은 정성에 국민은 기뻐한다. 그 출발은 교육이고, 취임 이후 ‘경찰교육·훈련 대개혁’을 추진한 이유다.”
‘중용’은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실천해야 할 자세를 담은 주자학 사서(四書) 중 하나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되고 이는 사람을 감동시켜 변하게 한다’는, 중용 23장을 설명하는 송 원장 눈빛에서 비장함이 묻어났다.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외국 경찰과 교류도 활발한 것 같다.
“그렇다. 9개 핵심 과제 이외에 요가 등 교육생을 위한 ‘힐링’ 특강, 교수 능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국민 눈높이 이상을 교육시킨다. 원장이 직접 싱가포르 HTA(내무부 교육부서)와 일본 경찰대를 방문해 과학치안 등을 논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베트남, 몽골, 태국, 네팔, 홍콩 등 해외 경찰들도 치안 연수와 교류를 위해 인재원을 찾고 있다. 국제협력은 해외 거주 한국인의 안전에도 도움 되고, 한국 ‘K-치안’도 알릴 수 있는 기회다(웃음).”
경찰대(4기) 출신인 송 원장은 경찰학 박사학위를 받고 경찰청 특수수사·형사과장, 강력범죄수사과장, 경기남부청 수사부장 등 수사 관련 보직을 두루 거친 경찰 내 대표적인 ‘수사통’이다. 지난해 6월 원장 취임 후 인재원 개혁을 이끈 성과를 인정받아 ‘2022 대한민국 공공정책 대상’(공공기관 혁신부문)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