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4

2011.02.14

‘제2의 박지성’ 도대체 어딨니?

  • 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 lunapiena7@naver.com

    입력2011-02-14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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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딸은 발레리나야” “그녀의 직업은 발레리나예요”라는 말은 틀렸다. 모든 여자 오페라 가수를 프리마돈나(prima donna=first lady)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발레리나’는 ‘백조의 호수’ 주인공 오데트, 즉 예술성과 기량이 가장 뛰어난 단 한 명의 여자 무용수에게 붙이는 존칭이기 때문이다.

    반면 지그프리드(‘백조의 호수’에서 왕자) 역을 맡는 최고의 남자 무용수는 ‘발레리노’라 한다. 발레리노! 영화 ‘백야’에서 바리시니코프가 러시아 시인 비소스키의 흐느끼는 노래에 맞춰 격렬하게 춤추는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한다.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에서 발레리노로 성장한 빌리가 아름다운 등줄기를 ‘죽~’ 펴며 힘차게 날아오를 때는 ‘어쩜 저렇게 멋있을까?’ 하고 몇 번이나 감탄했다. 그래서 그런지 무용계는 예쁜 발레리나보다 매력적인 발레리노, 즉 남자 스타 무용수 한 명이 3000명의 관객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인다는 통계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냐하면 공연장을 찾는 관객의 70% 이상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할 수 없이 따라왔을 뿐!

    무용뿐인가?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 3대 테너가 세계 성악시장을 이끌었듯 우리나라 뮤지컬계는 조승우가 90%의 여성 관객을 이끌어온다. 그가 나오는 ‘지킬 앤 하이드’는 공연 때마다 티켓 오픈 5분 만에 매진이다.

    그러잖아도 며칠 전 초연된 창작뮤지컬 ‘천국의 눈물’이 화제다. 티켓이 1차 오픈 때는 5분 만에, 2차는 3분 만에, 3차는 2분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암표는 300만 원. ‘천국의 눈물’ 주인공으로 아이돌 가수 JYJ의 시아준수(본명 김준수)가 출연하기 때문이다. 우리만 그런가? 배용준과 동방신기를 보러 오는 일본 팬도 여성이 대부분이다.

    공연 기획에서, 특히 흥행의 관건은 여성의 마음을 어떻게 잡느냐다. 스포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곳엔 멋있는 선수가 있어야 한다.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멋있는. 2002년 6월 14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D조 한국-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30·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최고의 골 장면을 연출했다. 가슴 트래핑(chest trapping) 후 오른발로 골키퍼를 제치고 왼발로 그대로 슛 골인 와! 몇 번이고 다시 봐도 멋있고, 가슴 뛴다. 그러던 그가 떠났다. 아시안컵 참가를 끝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한 박지성은 고국에서 짧은 휴가를 보내고 소속팀에 복귀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났다. 박지성은 한국과 영국을 오가는 데 따른 체력적 부담을 은퇴 이유로 들었지만, 사실 무릎 부상으로 대표팀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차범근 전 수원삼성 감독은 이렇게 심경을 밝혔다.



    “내가 한국축구를 사랑한다고? 그래서? 후배들에게 해준 게 뭔데? 그저 어린이 축구교실을 만든 게 겨우 내가 한 일이었다. 우리 축구계의 실정은 어려서부터 신체적 한계를 넘어서기를 강요당한 결과, 우리가 그토록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던 최고의 선수를 겨우 서른 살에 은퇴시키는 현실을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다.”

    ‘제2의 박지성’ 도대체 어딨니?
    박지성의 은퇴에 따른 후유증은 그것뿐이 아니다. 이제 축구계에서 조승우, 시아준수, 배용준, 이상민, 박찬호 같은 스타가 사라졌다. 떠나는 관중을 잡기 위해서라도 제2의 박지성, 새로운 스타를 찾아야 한다.

    * 황승경 단장은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에서 축구 전문 리포터로 활약한 축구 마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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