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유고 밀로셰비치(1941~2006) 정권이 코소보를 침략했을 때 일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밀로셰비치의 행위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즉각 군사행동에 돌입했다. 이에 유럽 각국의 프로리그 선수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전쟁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던 유고 출신 프레드락 미야토비치(42·전 레알 마드리드 단장)는 출전을 거부했으며, 그 결과 4200만 원가량의 벌금을 물었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다수의 유고 국적 선수가 축구, 배구 등의 프로 종목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SS 라치오에서 활약 중이던 시니사 미하일로비치(42·AC 피오렌티나 감독)와 데야 스탄코비치(33·인터 밀란)는 속티셔츠에 쓴 ‘PEACE’라는 단어를 보여주는 세리머니를 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관객이 타국의 민감한 정치 문제에 감정적으로 선동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면서 정치적 세리머니를 곧바로 금지시켰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45·아르헨티나)는 우리에게 ‘바티골’이라는 애칭과 기관총 세리머니로 친숙하다. 그러나 그는 10시즌을 보낸 AC 피오렌티나에서 AS 로마로 이적한 후 피오렌티나와의 경기에서 득점했을 때 어떤 세리머니도 하지 않았다. 그는 비장한 표정과 눈빛으로 묵묵히 뛰기만 했다. 이 같은 인간적인 모습은 피오렌티나 서포터까지 환호하게 만들었다.
아트 사커의 지휘자 지네딘 지단(39·프랑스)은 유벤투스 FC 시절 골을 넣은 후 흥분한 상태에서 경기장 둘레에 세워놓은 광고판 위로 뛰어올랐다가 굴러떨어진 적이 있다. 아픔보다 계면쩍음이 앞섰는지 애써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소박한 모습을 연출해 상대팀 선수들도 웃게 만들었다. 이렇듯 골 세리머니는 선수의 평판과 이미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때로는 그 파장이 정치, 사회적 이슈로까지 연결된다.
지난해 5월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한일전에서 박지성이 골을 넣고 보여준 당당하고 위엄 있는 무표정이야말로 상대방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응 세리머니라 할 수 있다. 반면 올해 1월 기성용은 원숭이 세리머니를 펼쳐 국제적인 갑론을박에 휘말렸다. 그만큼 경솔한 행동이었다. 기성용은 며칠 전 소속팀 셀틱 FC가 있는 스코틀랜드리그 첫 경기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펀치를 날리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것을 두고 일각에선 한국 격투기 임수정 선수가 일본 TV 쇼프로그램에서 보호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채 남자 3명과 실전을 방불케 한 복싱 대결을 펼친 일에 대한 비판이라 추측한다. 그렇지만 유럽 관객이 과연 그 뜻을 알아챘을까. 단순한 이소룡식 세리머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 황승경 단장은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에서 축구 전문 리포터로 활약한 축구 마니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