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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미국월드컵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조(왼쪽)가 승부차기 실축으로 패한 뒤 망연자실해 있다.
축구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최종 우승자를 가릴 경우, 정규전 90분과 연장전 30분을 진행하고도 승패를 결정하지 못하면 승부차기에 들어간다. 승부차기를 채택하기 전에는 재경기 혹은 제비뽑기로 다음 경기 진출 팀을 결정했다. 재경기는 체력 부담과 다음 경기 일정 때문에, 제비뽑기는 100% 운수에 좌우된다는 성격 때문에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승부차기의 탄생과 상당한 인연이 있다. 1968년 유럽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이탈리아는 소련과 연장전까지 치렀지만 0대 0 무승부를 기록해 동전던지기로 결승에 진출했다. 이 초유의 사태를 두고 결과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거세게 일었다. 이탈리아는 같은 대회 결승전에서 유고슬라비아와도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이번에는 재경기를 통해 우승컵을 손에 쥐었다. 그러자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런 시비를 없애려고 1970년 승부차기를 처음 도입했고, 월드컵에는 1982년부터 적용했다.
사실 이탈리아는 승부차기에 징크스가 있다. 1990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아르헨티나와의 4강전에서 완벽한 경기를 펼치고도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이뿐 아니다. 1994년 미국월드컵 결승전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브라질에 백기를 들었고, 1998년 프랑스월드컵 8강전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프랑스에 석패했다. 1990년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AC밀란의 로베르토 도나도니가 달았던 백넘버는 그해에 불운을 가져다주는 숫자로 기억됐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승부차기라고 하면 도나도니와 함께 꽁지머리의 ‘판타지 스타’ 로베르토 바조를 기억한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그는 16강, 8강, 4강전에서 벼랑 끝에 선 이탈리아를 구해내며 이탈리아 반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의 영웅 이미지도 한순간에 추락했다. 당시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와 브라질은 승부차기까지 갔다. 먼저 찼던 이탈리아 선수 두 명이 실축했고, 바조는 5번째 키커였다. 설령 그가 성공했더라도 경기 결과는 다른 브라질 선수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가 찬 공이 골문을 벗어나 하늘로 치솟는 순간, 이탈리아 국민은 그동안의 열광과 도취는 까맣게 잊은 채 그를 이탈리아를 국제적으로 망신시킨 역적으로 규정했다. 이탈리아는 2006년 독일월드컵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프랑스에 이겨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승부차기의 악몽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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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승경 단장은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에서 축구 전문 리포터로 활약한 축구 마니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