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0

2011.06.07

제프 베조스·피에르 오미디아르

닷컴 버블 창조적 파괴 미래 기업으로 또 다른 돌풍

  • 정지훈 관동대 IT융합연구소 교수 @hiconcep

    입력2011-06-07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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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프 베조스·피에르 오미디아르
    1990년대 넷스케이프와 야후가 성공하면서 닷컴 버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산업 패러다임을 바꾼 두 명의 혁신가가 등장했는데, 바로 초대형 가상서점인 아마존의 설립자 제프 베조스와 이베이를 창업한 피에르 오미디아르다.

    베조스와 오미디아르는 공통적으로 인터넷을 사업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성향과 일하는 방식은 상당히 달랐다. 베조스는 사업 계획과 시장 조사 등을 체계적으로 했던 반면, 오미디아르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그는 인터넷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였던 것이다.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데 필요한 모든 단계를 혼자 다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월스트리트에서는 이들이 단기간에 엄청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제껏 역사에 없었던 방식으로, 또한 과거에 봤던 기업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는 대부분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예를 들어, 아마존이 1997년 5월 상장했을 때만 해도 수익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투자금을 다 쓰고 나면 결국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에도 베조스는 가격을 지속적으로 낮추면서 덩치를 키우는 자기 방식을 밀고 나갔다. 매출이 꾸준히 올랐지만, 적자는 계속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사업가는 가격과 이윤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베조스는 배짱이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당시 인터넷 러시를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골드러시와 비슷하게 생각했다. 규모가 어느 정도 되면 고객에게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기에 이윤을 일시적으로 포기하는 선택도 할 수 있었다. 그 대신 더 안전하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고객의 개인정보와 신용카드 정보 보안에 역량을 집중했다.



    오미디아르의 이베이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이베이에 대한 당시 월스트리트의 평가는 아예 이런 형태의 비즈니스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였다. 1998년 봄, 오미디아르와 투자자들은 전문 경영인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메그 휘트먼을 영입했다. 그리고 1998년 기업 공개를 했는데, 월스트리트의 평가를 비웃듯 공개 당일 주가가 3배 이상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다.

    아마존과 이베이 주식의 성공은 닷컴 버블을 부채질했다. 결국 버블의 최후는 수많은 사람의 해고사태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 아마존도 부도직전까지 몰렸고, 눈물을 머금은 채 1300명의 직원을 해고하며 생존에 집중했다.

    그러나 버블에 부정적인 측면만 있던 것은 아니다. 버블 형성과 몰락을 겪으면서 인터넷 혁명은 좀 더 건전하게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아마존과 이베이도 탄탄한 인터넷 기업으로 입지를 다졌다. 이렇게 본다면 닷컴 버블의 붕괴야말로 창조적인 파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부침에 힘입어 새로운 형태의 기업이 탄생했으며, 살아남은 기업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경험도 쌓았기 때문이다.

    제프 베조스·피에르 오미디아르
    특히 아마존은 향후 벌어질 콘텐츠 및 서비스 융합 생태계에서 애플에 맞서서 가장 강력한 돌풍을 몰고 올 다크호스로 꼽힌다. 이들의 선전을 기대한다.

    * 정지훈 교수는 의사이면서 IT 전문가라는 이색 경력을 지니고 있다. 현재 관동대 의과대 명지병원 융합의학과 교수이자 IT융합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IT의 역사’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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