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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불붙은 홍콩 시위…팽팽한 긴장감

홍콩 민주화 ‘우산혁명’ 확산 내부 문제에서 국제 문제로 비화

  • 구자룡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불붙은 홍콩 시위…팽팽한 긴장감

중국에 반환된 지 17년, 홍콩은 민주화 시위의 홍역을 앓고 있다. 중국은 ‘홍콩기본법’에 따라 반환 후 50년간 홍콩을 ‘일국양제(一國兩制)’ 체제로 운영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바 있다. 중국 정부가 군사와 외교를 주관하되 다른 분야는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더불어 중국은 2017년까지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을 ‘보통직접선거’로 뽑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홍콩 시위를 주도하는 민주단체나 학생들은 중국이 이 같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이 이끄는 현 홍콩 정부는 중국 방침만 대변하고 있으므로 물러나야 한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9월 말 홍콩 대학생의 동맹휴업과 시민단체 ‘센트럴을 점령하라(Occupy Central)’의 ‘점령 행동 개시’로 시작된 이번 시위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계층의 시민이 참여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그만큼 명분과 취지가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화’에 대한 불안과 반발

대학생뿐 아니라 중고생과 교사, 일반 직장인까지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섰다. 홍콩 거주 외국인도 ‘홍콩은 우리 집(HongKong is our home)’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세했다. 9월 29일 9년 만에 처음으로 경찰이 ‘페퍼 스프레이’(액체 최루가스)를 뿌리며 시위를 진압하려 하자 더 많은 시민이 시위에 동참하기도 했다.

이번 시위는 처음 ‘센트럴 점령’을 기치로 내걸며 홍콩섬 정부청사 인근에서 시작됐지만, 점차 홍콩섬 서부지역과 주룽(九龍)반도의 몽콕, 침사추이 등으로 확대됐다. 홍콩섬에서 시위대가 점거한 지역의 17개 은행 29개 지점이 일시 휴업에 들어가고 점거 지역을 지나는 버스 노선 200여 개가 운행을 중단해 도시 기능이 일부 마비되기도 했다.



시위의 뇌관이 된 것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8월 31일 내놓은 홍콩 행정장관 선거 입후보 자격안. 2017년 직선제로 치를 이 선거에 1200명 규모의 후보 추천위원 중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은 2∼3명만 출마할 수 있게 한정한다는 내용이었다. 홍콩의 범민주 세력은 추천위원 대부분이 친중(親中) 성향 인물로 구성돼, 반중(反中) 인사나 중국에 비판적인 인물은 사실상 출마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진정한 의미의 보통선거로 볼 수 없다는 것. 일정 수 이상 유권자 추천을 받은 인물은 모두 출마할 수 있게 해야 하며, ‘진정한 보통선거’로서 원하는 지도자를 뽑지 못하면 정치체제상 중국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이들 주장이다.

중국 정부가 6월 10일 처음으로 발간한 ‘홍콩백서’도 기름을 부었다. 이 백서는 “중국 정부가 홍콩특별행정구의 전면적인 관할권을 행사한다”며 “홍콩이 고도의 자치를 시행하지만 중앙이 감독권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많은 홍콩인은 “외교와 국방을 제외하고는 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7월 1일 홍콩 반환 17주년 기념일에는 50만 명 이상이 거리로 나와 홍콩백서 반대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이번 시민 불복종 시위는 행정장관 선거 방식에 대한 반대에 그치지 않는다”며 “홍콩과 중국의 관계 설정과도 관련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중국이 느리지만 체계적으로 홍콩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나가자, 홍콩인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주변화하고 경제적으로 압박받는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자본이 몰려오면서 부동산시장이 크게 교란돼 내 집 마련이 어려워졌다거나, 홍콩의 큰 장점 중 하나였던 언론 자유가 언론사들의 자율적인 검열 강화로 후퇴하고 있다거나,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면 위협을 당하기도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등의 불만이 대표적이다.

17세 학생 영웅 ‘조슈아 웡’

불붙은 홍콩 시위…팽팽한 긴장감

‘우산혁명’ 주역으로 손꼽히는 17세 학생운동가 조슈아 웡(오른쪽).

이렇게 보면 이번 시위 바탕에는 이른바 ‘중국과 한 국가(一國)’로 돼가는 것 자체에 대한 불안이 깔려 있다는 게 가디언의 분석이다. 홍콩대가 6월 홍콩 시민 1026명을 대상으로 ‘정체성’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나는 중국인’이라는 응답은 67.7점으로 반환 이후 가장 낮았다. ‘나는 홍콩인’이라는 응답은 78.2점이었다. 홍콩이 점차 ‘중국화’돼가는 것에 대한 홍콩인의 불안감과 반발을 엿볼 수 있는 수치다.

중국은 2003년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하다 수십만 명이 거리시위에 나서자 포기한 바 있다. 2012년에는 충성심을 강조하는 ‘국민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려다 ‘정치적 세뇌’라는 반발에 부딪혀 역시 포기했다.

이번 시위는 ‘우산혁명’이란 표현이 함축하듯 다양하고 색다른 모습이 연출됐다. 시위 참가자들이 저마다 우산을 드는가 하면, 이마에 두툼한 흰색 파스를 붙이고 팔은 비닐 랩으로 감싸는 식이다. 흰색 파스는 섭씨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이마를 시원하게 해주는 ‘보냉(保冷)’ 효과도 있지만 최루탄이 터졌을 때 최루효과를 약화하는 기능도 있다. 최루가스를 막으려고 아예 마스크나 고글을 쓰고 비닐 비옷을 입은 사람도 적잖았다.

시위대가 검은색 상의로 옷을 통일하고 노란색 리본을 단 것도 특징이다. 홍콩대 학생인 앤서니 바(18)는 “리본 매듭은 중국에서 단결을 의미한다. 학생과 일반 시민을 막론하고 다 함께 힘을 모아 진정한 행정장관 직선제를 쟁취하자는 의미에서 리본을 달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센트럴을 점령하라’ 측은 시위 참가자들에게 ‘불복종 매뉴얼’을 나눠주기도 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무기로 오해받을 수 있는 어떤 것도 소지하지 말라는 안내. 폭력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 진압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조치다. 주룽반도의 대표 번화가인 침사추이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는 영화 ‘레미제라블’ 삽입곡을 광둥화(廣東話)로 편집한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이 있나요(試問誰還未覺醒)’를 부르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중국의 대응 초미의 관심사

불붙은 홍콩 시위…팽팽한 긴장감

9월 30일 밤 홍콩 중심가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자 정부청사 인근 도로에 모인 시위대가 일제히 비옷을 입고 집회를 강행하고 있다. 시위대는 바리케이드에 ‘사선(死線)’이라 적힌 종이를 붙여놓고 외부세력 진입 방지와 투쟁 의지를 보여 주기도 했다.

이번 시위에 참가한 중고교생 가운데 스타도 탄생했다. 17세 학생운동가 조슈아 웡(黃之鋒)이 그 주인공. 15세 때인 2012년 중고교생 운동단체 ‘학민사조(學民思潮)’를 세워 대표를 맡은 그는 이번에도 대학생, 시민단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9월 26일 시작된 대학생의 연합휴업 시위에 중고교생까지 동참하게 한 당사자다. 웡은 2012년 홍콩 당국이 ‘국민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려 할 때도 반대운동을 이끌었다.

이번 시위의 가장 큰 특징은 그 파장이 홍콩 내부 문제로 끝나지 않고 국제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9월 30일자 ‘홍콩 시위 사태는 1989년 이래 최대의 정치적 도전’이라는 평론에서 “홍콩 시위 사태가 폭력적으로 끝나면 중국과 서방 관계가 단절될 수 있다. 이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러시아와 서방 관계가 파괴된 것과 비슷하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미 영국과 미국 정부는 시위대의 민주주의 요구를 지지한다고 밝혔고,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 역시 “중국은 홍콩인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중국 정부는 “홍콩은 국내 문제”라는 방침을 거듭 밝히고 있지만, 국제사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홍콩섬에는 육·해·공 중국인민해방군 6000명가량이 주둔하고 있으나,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무력진압으로 국제적 위상이 추락한 악몽을 갖고 있는 중국이 쉽게 군을 투입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반대로 중국 정부가 시위대의 ‘진정한 직접선거’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홍콩에서 밀리면 향후 대만에도 적용해야 할 일국양제 원칙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 중국 정부는 이번 사태 영향이 분리 독립과 종교의 자유 보장 요구가 거센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와 티베트에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상황이 어디로 번져나갈지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형국이다.



주간동아 2014.10.06 957호 (p54~56)

구자룡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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