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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한의 세상 속으로

가족들이여 손을 내밀어라, 불안에 빠진 아버지에게

서글픈 대한민국 아버지

가족들이여 손을 내밀어라, 불안에 빠진 아버지에게

가족들이여 손을 내밀어라, 불안에 빠진 아버지에게

우리 사회는 아버지에게 ‘슈퍼 대디’가 되기를 요구한다. 직장인들이 점심식사 후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다.

‘월가 점령’ 시위가 전 세계 도시로 확산됐다. 소수에 의한 부의 독점으로 빈부격차가 커지고 젊은이의 일자리가 감소한 것이 주된 이유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한계 상황에 온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이는 가운데 나눔의 가치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젊은 세대의 불안감과 취업을 걱정하면서 세대 간 갈등을 우려한다.

아버지 어깨를 짓누르는 환경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버지는 기성세대요, 기득권이기에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누리고, 아들과 딸은 고착화한 사회구조에 진입하려 애쓰면서도 번번이 좌절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실제로 아버지의 삶이 어디 그러한가. 기득권으로서 삶을 편히 누리기는커녕 불안한 마음과 위축된 태도로 생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아버지가 흔들린다. 집 밖에서는 돈을 벌려고 치열한 삶을 살지만,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은 불안정하기만 하다.

빚과 이자 부담의 고통, 실직에 대한 두려움이 아버지의 어깨를 매일 짓누른다. 집 안에선 아내와 자녀에게 환영받지 못해 그 주변만 맴돈다. 자녀 사교비를 아끼지 않고 대줘야 한다는 아내의 요구가 부담스러워, 교육방식에 대해 제 나름 의 의견을 말할라치면 “당신이 학교에 다녔던 시대는 이미 옛날이니 괜히 비현실적인 말로 애들 교육에 혼란을 주지 마세요”라는 반격만 당한다.

너무 회사 일에만 신경 쓴 것 같아 모처럼 마음먹고 자녀와 대화라도 나눌라치면 “저는 할 얘기가 없어요” 내지는 “…(묵묵부답)”의 반응이 돌아온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서글프다. 과거에는 권위의 상징이요, 가장이라는 지위를 확고하게 누렸던 아버지가 몰락한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필자는 요즘 불안과 우울증에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많이 만난다. 아버지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을 분류해봤다.



먼저 경제적 불안이다. 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구조조정의 시험대에 올랐다. 이러한 와중에 아버지는 ‘내가 이 일을 그만두면 무엇으로 먹고살고, 아이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는 가장 현실적인 고민이다. 아버지는 주변 사람의 퇴직 또는 실직 소식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불안에 휩싸인다. 설령 당장 실직 위험이 없는 아버지라도 불투명한 미래 탓에 씀씀이를 줄이고 싶어 한다. 대출을 많이 받은 아버지는 연이은 자산 가치의 하락에 마음고생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적 상황에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다음은 위치적 불안이다. 예전에는 가정에서 가장 높은 사람으로 대접받던 아버지였다. 과거 권의주의 시대의 아버지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아버지는 가정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아버지는 그다지 크고 강한 사람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는 돈만 벌어다 주면 되는 사람 또는 자녀 사교육비를 충당하는 사람으로 전락했다. 아버지는 자녀의 시험 스케줄에 맞춰 여가 활동 계획을 잡아야 한다. 집에서 큰 소리를 내면 안 되는 분위기다. 가족 전체의 필요성에 맞춰 아버지는 나름대로 몸을 낮추지만, 때로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가장 구실을 제대로 하는지 의문스럽다.

아버지의 사랑 의심치 마라

가족들이여 손을 내밀어라, 불안에 빠진 아버지에게

스트레스 지수가 한계에 이른 아버지에게 가족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기능적 불안도 존재한다. 아버지는 여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아버지는 집안의 가장이자 아내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다. 우리 사회는 이른바 ‘슈퍼 대디’를 원한다. 돈을 잘 벌어오는 것은 아버지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기능이며, 자상하고 따뜻한 남편이어야 하는 것은 물론, 자녀와 잘 놀아주고 친구 같은 아버지가 돼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곧바로 옆집 아버지 또는 내 친구 아버지와 비교당한다.

마지막으로 신체적 불안이다. 심리적 스트레스는 마음뿐 아니라, 신체마저 갉아 먹는다.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 이뤄지면서 아버지의 몸은 한두 군데 망가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사회생활을 하느라 술자리 회식을 자주 갖게 되면, 장기에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 40대 사망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는 자기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불안한 건강 상태에 놓여 있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또다시 심리적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없는가. 사회적, 경제적 여건이 좋아지고 좀 더 살 맛 나는 세상이 된다면 많은 부분이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환경이 좋아지기를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예기 불안을 없애자. 지금 경제가 좋지 않아도 나중에는 결국 좋아지리라는 긍정적인 믿음을 갖도록 노력하자. 물론 현재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사람과도 긍정적인 관계를 맺도록 애쓰는 것은 기본이다.

목소리를 크게 내자. 누가 뭐래도 우리 집안의 가장은 아버지인 자신이다. 가족도 자신감 넘치고 리더십을 갖춘 아버지를 좋아할 것이다. 군림하려 들지 말고 모범을 보이면서 ‘나를 따르라’고 해보라. 그리고 아내를 존중하고 배려하라. 그러면 아내는 더 큰 존경과 배려를 돌려줄 것이다. 자녀를 믿고 기다려라. 자녀는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으로 화답할 것이다.

그리고 공부하자.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을 공부해보라. 이제껏 익숙지 않거나 몰라서 못 했을 뿐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충분하지 않은가. 서점에 들러 눈에 띄는 육아서적, 특히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을 설명해놓은 책을 한 권 사라. 그리고 책에 있는 내용대로 해보라. 처음에는 어색하고, 또 책에 적힌 대로 해봐도 잘 안 되겠지만, 점차 노력하면서 달라지는 아버지 모습을 가족 전체가 인식할 것이다.

운동을 하자.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동네를 산책하거나 조깅을 하라. 사무실에서 중간에 맨손체조를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아버지의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자신감과 의욕도 생겨난다. 술과 담배도 줄이자. 영양소도 골고루 섭취하되 체중 증가를 조심하라.

가족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가족이여!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라. 아버지는 분명히 가족을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일을 염려하고 고민하는 것이다. 자신의 건강과 미래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아버지의 마음은 늘 불안하다. 가족과 친해지려고 열심히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방법을 잘 모를 뿐이다. 이제 가족이 먼저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어라.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여보, 우리 마음을 터놓고 얘기 좀 해요”라는 말로 시작하라.



주간동아 2011.10.24 809호 (p60~61)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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