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명품 브랜드가 입점한 신세계 파주프리미엄 아울렛.
빚의 그림자 ‘우울증, 불안장애’
대한민국 국민이 빚에 허덕이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지속된 경제성장 시기에는 소비는 탐욕이자 해악이므로 최대한 억제하고 아껴 쓰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리고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우리의 생활습관을 지배하면서 저축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초등학생이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가득 모아 은행에 가져가면 은행원이 대견해하며 통장을 만들어주고, 이를 지켜보는 부모는 뿌듯해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소비는 미덕’이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열심히 소비활동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좋은 자동차, 근사한 외식, 멋진 주말여행이 강조됐고, 돈을 잘 쓰는 사람이 속속 등장했다. 신용카드 보편화로 미래 소득을 당겨쓰고, 저금리 대출의 유혹에 빠져 금융기관의 돈을 끌어다가 소비활동에 충당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소득이 계속 증가하면 상관없지만, 빚은 빚일 뿐이다. 여기에 투자했던 자산 가치까지 폭락하면서 빚 갚을 능력은 더 떨어졌다.
늘어나는 빚으로 우울증 또는 불안장애를 겪거나 가정파탄에 이르기도 하고, 심한 경우 자살까지 하는 등 온갖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강조되는 것은 절제 능력이다. 절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조절하는 능력을 말한다. 절제 능력은 인간이 유아기 시절부터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꼭 배우고 갖춰야 할 인성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린이는 절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배탈이 난 상태에서도 눈앞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려 한다. 또한 내일 당장 시험인데도 인터넷 게임을 멈추지 못하는 중학생은 절제 능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 PC방에 가면 부모님과 심한 갈등과 다툼이 야기될 것이 예상됨에도, 당장의 즐거움과 유혹을 이기지 못해 결국 PC방에 가고 마는 고등학생 역시 절제 능력이 부족해서다.
이렇듯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젊은 사람은 대체로 나이 든 사람에 비해 절제 능력이 부족하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위 성인기에 접어 든 30대나 40대, 심지어 노인 중에서도 절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계속 등장하는 추세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필자는 이와 같은 사회적 현상에 우려를 표한다. 그들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원인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거짓 자기의 득세와 경쟁의식
시민단체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과소비를 막고 에너지를 절약하자고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멋진 옷과 액세서리, 그리고 자동차와 명품 핸드백은 시각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는 물품이다. 이러한 물품을 소유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자신이 돈을 벌어서 마련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돈을 빌려서 확보하기도 한다. 시각적 자극과 가치를 극대화시킨 우리 사회의 분위기 탓이다. 우리가 어떤 모임에서 음식점을 고를 때 “거기는 깔끔한가, 아니면 허름한가” 내지는 “분위기가 고급스러운가, 아니면 서민적인가”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음식 맛이 아니라 음식점의 외양이다.
여기에 비교와 경쟁의식의 발로도 한몫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 속담이 그런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나는 지금 중형차를 타는데, 얼마 전부터 옆집에선 대형차를 타고 다닌다. 그러던 차에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이 모임에 외제차를 끌고 나왔다. 내가 저들보다 못한 것이 무엇인가 싶다. 결국 며칠 뒤 외제차 매장을 기웃거리고 대형차 판매 조건을 살펴보다가 그런대로 조건이 좋은 할부 금융을 이용해 고급차를 구입한다. 내가 저들보다 못하다는 느낌을 피하려고, 혹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려고 그만 평정심을 잃은 것이다.
‘거짓 자기’의 득세도 있다. 자기는 자기가 잘 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형태의 자기가 있다. 하나는 ‘참된 자기’요, 다른 하나는 ‘거짓 자기’다. 참된 자기는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감정에 충실해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자기를 말한다. 거짓 자기는 스스로 희망하지만 현재의 모습은 아니고, 남에게 비치는 모습이다. 스스로 속이면서 조작하는 자기를 말한다. 한 달 수입이 보잘것없지만 부자인 것처럼 보이려고 비싼 옷을 입고 고급차를 소유한 나, 부자가 아니지만 호탕하고 통 큰 사람처럼 보이려고 돈을 펑펑 쓰는 나는 모두 전형적인 거짓 자기의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정신문명의 피폐화를 들 수 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적어도 수십 년 전 우리 사회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더 존경했다. 그런데 차츰 분위기가 바뀌더니 2011년 현재 대한민국 사회 분위기는 배부른 돼지가 차라리 낫다고 말한다. 배부른 소크라테스야 어차피 되기 힘들고, 그렇다고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은 더 싫다고 말한다. 어설픈 정신적 가치의 추구보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행복 수준은 낮아지고 절제 능력의 퇴보는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