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도 아닌 일반인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단순히 동영상 내용의 수위 때문만은 아니다. 타인의 은밀한 사생활에 대한 관심과 침해도 문제지만, 그 유출 경로에 누리꾼이 경악했다고 할 수 있다.
반나절 만에 발가벗겨진 사생활
사건은 중고 카메라에서 시작됐다. 중고 카메라 소유주는 자신의 사생활을 촬영했던 카메라를 중고 매물로 내놓았다. 당연히 메모리카드에 담긴 데이터는 모두 삭제했다. 그런데 문제는 중고 카메라를 구입한 사람이 사진 데이터를 복구해 퍼뜨리면서 발생했다. 이때 사진이나 동영상 전체를 올린 것이 아니라, 파일을 쪼개 여러 개인용 컴퓨터(PC)에 저장되게 한 다음 URL 정보를 주고받아 파일을 다수가 공유했다.
영상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최근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영상이 유출되면 전국에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도를 넘은 관음증을 그대로 보여줌과 동시에 디지털 세상의 문제점을 여실히 확인시켜줬다. 개인정보 관리의 중요성과 디지털 데이터의 현실을 일깨워준 것이다. 해당 사건 이후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메모리 관리법’ ‘데이터 완전 삭제’ 같은 글이 올라 인기를 끌었다.
사실 이 사건은 돈을 노린 해킹도 아니고, 특정인의 명예를 실추시키기 위한 유포도 아니다. 우연히 중고 카메라를 구입한 사람이 함께 중고로 구입한 메모리카드를 손쉽게 복원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더욱이 동영상 공개 사이트나 P2P를 통해서가 아니라, 파일을 쪼갰다가 다시 퍼즐 맞추듯 합치는 방식으로 유출돼 적발도 어려웠다.
문제는 이 메모리카드에 다른 사람에게 공개되어서는 안 될 성관계를 포함한 은밀한 사생활이 담겨 있었다는 점이다. 비단 성관계 장면이 아니라 해도 사생활이 담긴 사진이나 동영상을 함부로 유출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세간을 달군 일명 ‘A양 동영상’ 또한 트위터와 문자메시지를 타고 반나절 만에 확산됐다. 과거 CD에 동영상을 복사해 확산하거나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던 방식과는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URL만 주고받기 때문에 동영상 크기에 대한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메모리카드는 그 속의 데이터를 삭제해도 간단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쉽게 복구 가능하다. 데이터를 완전히 삭제하려고 여러 조치를 취해도 전문가에게 맡기면 금세 복구할 수 있다. 미국의 과학수사 드라마 ‘CSI’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에서 충분히 가능한 셈이다. 경찰이 하드디스크를 복원해 사건의 단서를 잡았다는 뉴스를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데이터 복구 프로그램을 만드는 한 엔지니어는 “저장장치를 완전히 폐기하기 전에는 데이터 영구 삭제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술보다 사생활 보호 문화 정착돼야
개인정보가 담겼던 모든 기기를 사용 이후 무조건 폐기하기 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안 케이블의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켄싱턴의 ‘켄싱턴 록’.
이번 사건 이후 ‘카메라는 중고 거래를 하더라도 메모리카드는 웬만하면 폐기하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폐기한다는 말은 외부의 강력한 충격으로 완전히 깨뜨리거나 불에 태우는 등의 물리적 조치를 뜻한다. 완전 폐기를 통해 데이터를 보호하라는 것이다. 또한 돈이 필요해도 메모리카드나 하드디스크 같은 데이터 저장장치는 되도록 중고 거래를 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메모리카드 폐기가 정답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개인 데이터가 담겼던 모든 기기를 사용 이후 무조건 폐기하는 것은 심각한 자원낭비로 이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메모리카드뿐 아니라, 저장장치를 지닌 모든 기기가 이런 문제을 안고 있다. 노트북이나 휴대전화에 담긴 정보의 경우 매우 중요할 수 있는데, 이들 기기를 모두 폐기처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보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기기에 보안 기술을 내장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프로세서 업체인 인텔의 경우, 보안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 칩에 내장해 노트북의 보안을 강화하려고 한다. 노트북을 분실했을 때 원격으로 노트북을 제어하거나,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자동으로 내부 시스템을 망가뜨려 저장된 정보 유출을 막기도 한다.
하지만 해킹을 막는 보안 기술을 아무리 개발한다고 해도 빈틈을 파고드는 해킹을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뛰어난 보안 기술이나 유출 방지 기술, 정보관리 기술을 개발한다고 해도 유출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실제 기술 발전에 따라 보안 기술을 뛰어넘는 해킹(유출)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한 보안업체 관계자는 “데이터 유출을 막는 기술을 개발해도 사람의 환경이나 사용 습관에 따라 기술이 제구실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털어놨다.
결국 개인 스스로가 자신의 정보나 데이터를 관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방법밖에 없다. 상당수의 해킹 사고가 내부에서 발생한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또한 사생활 보호 문화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생활 침해로 인한 개인의 인격 훼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엿보고자 하는 도를 넘어선 관음증이 이 같은 사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술의 허점을 이용한 사건은 이번처럼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다행히 이번 올림푸스 사건이 발생한 직후 “또 한 명의 여성이 희생되고 있다”면서 “전파하지 말자”는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유포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보안 업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정보를 관리하는 사람들의 비도덕적 행위를 막는 것이 기술 도입보다 우선시돼야 한다”면서 “이런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기술보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마인드가 더욱더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