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 지방자치단체라는 사실을 종종 망각하는 게 문제죠.”
일전에 한 정치학자는 언론인에게 이같이 충고했다. 언론이 서울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지적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특별시의 행정은 여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와 달리 ‘정치’로 둘러싸여 있다. ‘복지논쟁’이 대표적이다. 바람이 불면 선거는 끝이다. 이 때문인지 현재의 민선 5기까지 서울 25개 구청장 가운데 연임을 이룬 이도, 꿈꾸는 이도 적다. 이런 한계를 깬 이가 추재엽(56) 양천구청장이다.
“어이쿠! 위대한 양천구민이시군요.”
키가 170cm 정도 될까. 작지만 단단해 보였다. 그는 기자의 거주지를 물어보곤 과장된 어투로 환영했다. 기자는 5년 전 종로구에서 양천구로 이사했다. 아파트 숲으로 이뤄진 양천구는 짧은 역사만큼이나 기묘한 도시다. 신월동이라는 가장 열악한 동네와 목동이라는 부촌으로 양분된 것.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였던 김영배 국회부의장이 한동안 이 지역에서 내리 4선을 이뤘다. 그러나 양천구 집값이 상승하면서 한나라당으로 국회의원이 바뀌었다.
원희룡 의원도 유명했지만 ‘추재엽’이란 브랜드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재선 구청장으로 ‘일을 잘한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특히 국회의원을 꿈꾸지 않는 전문 행정가라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번 10·26 재·보궐선거(이하 재보선)를 통해 3선 구청장이 됐다.
“인터뷰에 응할 처지가 안 됐습니다. 인물도 부족하고 정치인도 아니에요. 그저 양천구민의 일꾼으로 심부름이나 잘하면 되지, 웬 인터뷰인가요? 선거 치르고 언론사 20여 곳의 요청을 모두 거절했어요.”
실제 그의 인터뷰 섭외는 서울시장 섭외보다 더 힘들었다. 사실 3선 행정가에게 무슨 홍보가 더 필요할까. 더구나 그는 한동안 ‘과거 이력’ 논란으로 언론을 기피해왔다. 이번 재보선 결과도 따지고 보면 그의 ‘보안사’ 이력 논란이 빚은 아이러니였다. 언론의 관심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던 셈이다.
“진짜 이번엔 안 나오려 했어요. 그런데 쉬다 보니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 필요하더군요. 주위에서도 진짜 ‘경험 있는 구청장’이 나와야 한다고….”
“민원 70%는 해결 어려운 악성”
그의 3선 고지는 지난해 5월 선거에서 실패로 막을 내리는 듯 보였다. 그간 쌓인 불신도 있었고 재선 직후 불거진 보안사 활동 경력도 부정적 이미지를 더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이제학 민주당 후보에게 참패했다.
그런데 깜짝 반전이 일어난다. 불과 1년 만에 현직 구청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퇴진한 것이다(2006년 전임 구청장이 학력 위조로 물러난 행운에 이어 두 번째다). 추 후보의 보안사 경력을 과장한 것이 원인이었다. 결국 재보선에서는 이제학 씨 부인이 야당후보로 나서서 지난해 구도를 이어갔고, 다른 한편으론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학원재벌 출신 후보의 견제까지 있었다. 결과는 추 후보의 압승(49%)이었다.
“구청장요? 이거 할 짓 못됩니다. 차라리 동네 구의원이 훨씬 근사하고 끗발도 있어요. 구청장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민원인 따라다니며 공과를 따져야 해요. 의원들은 생색이라도 내지만 우리는 무한책임이에요.”
거대도시 행정가의 삶이란 ‘민원’과의 투쟁이라는 하소연부터 시작했다. 민원의 70% 이상이 해결이 난망한 악성이란다. 그는 자신의 빼곡한 일정표를 꺼내들었다. 실제 오전 한 시간의 결재 시간을 빼곤 30분 단위로 사람 만나는 약속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터뷰를 길게 할 수 없다는 당부기도 했다.
그는 양천구에서만 5번 출마해 3번 구청장으로 당선됐다. 3선 연임 구청장이라는 사실도 특이하지만 두 번은 재보선에서 승리했다는 것도 기록이라면 기록이다.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무소속으로 나올 뻔했지만 극적으로 여당에 합류했다. 공천부터 승리까지의 과정도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일단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대한 원망부터 풀어놨다.
“오 시장이 자리까지 내걸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찬반이 대립한 재보선도 33% 넘은 적이 없는데, 이건 절대 안 되니 그러지 말라고 건의까지 했는데, 아니…. 바보도 아니고, 어떤 썩을 ×들이 시장을 부추겨서. 여하튼 입당했는데 경선부터 치르라면서 공천도 곧장 안 주더니…. 그 순간 잘못 입당했지 싶더군요.”
그의 당적은 꽤나 복잡한 편이다. 신민주공화당(김종필)에서부터 한국신당(김용환)은 물론, 한나라당과 무소속을 오갔다. 또한 그는 공고 출신에 군대는 장교가 아닌 하사관으로 마쳤다. 그가 실무에 밝다는 평가를 듣는 것은 이 같은 현장경험 때문일 터. 어쨌든 선거에서는 이겼지만 자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았나 보다. 현직 의원과의 힘겨루기 끝에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으로 밀리기도 했다. 아픈 기억 때문인지 그는 적극적인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 배제론자’다.
“무소속 지자체장을 해본 사람이면 알아요. 얼마나 좋은지를. 지구당위원장 눈치 안 봐도 되고, 지역의회도 상대적으로 편해요. 내가 한나라당이면 민주당 의원만 나를 싫어할 것 같죠? 천만에요. 시의원들도 구청장을 노린다고요. 결국 모두가 구청장의 적이라니까요. 차라리 모두가 무소속이면 정치권 눈치 안 보고 지역을 위해 일할 것 아니겠어요?”
그의 이론은 지나치게 단순했지만 쉽게 흘려들을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행정에서 정치를 빼야 한다는 주장은 기초자치단체 운영의 폐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화두다.
“법과 원칙을 바탕으로 소신을 펼치고 주민에게 심판받으면 돼요. 지금은 정치권 눈치를 너무 봐요. 서울시는 예산(30조 원)이라도 많지, 양천구는 기껏 3400억뿐인데….”
3선 구청장 당선자를 만났는데 그의 자랑을 안 들어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사실 양천구는 뽐낼 것이 지천에 널린 동네다.
“요즘 서울에서 노인요양시설 만들 수 있는 동네가 어디 있나요? 지역주민 반대도 심하고요. 우리는 이미 만들었죠. 처음부터 도시 인프라를 주차장이나 공원 같은 하드웨어에서 벗어나 ‘학교’ ‘병원’ 등으로 확장시켰어요. 일본을 보니 육아가 안 되고 학교가 나쁘면 주민이 떠나더군요. 그래서 일찍부터 할부로 땅 사면서까지 준비한 게 이제야 빛을 보는 거예요.”
맞는 얘기다. 강남이 인기 있는 이유는 여타 서울지역의 교육 및 육아 관련 경쟁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 아닌가.
“천만에요. 복지를 예산 관점으로만 본다면 구청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양천구에 사는 탈북자가 1066명이에요. 복지란 한도 끝도 없어요. 결국 예산이 아니라 휴먼인프라를 통한 나눔운동의 체계화가 중요하죠. 양천구엔 자원봉사자가 연간 4만 명쯤 돼요. 2004년에 최초로 푸드마켓을 만들었을 정도예요. 또 우리가 방과후학교 등 공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요? 그런데 강남에선 수능TV 만드는 데 120억 원을 한 방에 쏘더군요. 우린 12억도 없는데….”
부동산 인허가 문제는 말 그대로 지뢰밭
그는 ‘복지’ 콘셉트를 가져온 행정가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에겐 복지보다 개발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 이번 재보선에서도 그는 ‘목동 아파트 재건축’을 선거구호로 내세웠다.
“복지가 아닌 개발 이미지? 글쎄요. 목동은 대한민국 양극화의 상징이에요. 저는 재건축·재개발 뉴타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실제 양천구 뉴타운이 제일 빠르게 진행됩니다. 더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재건축·재개발 총합인 뉴타운. 결국 이 시대 구청장의 성공 여부는 이런 과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를 조정하는 능력에 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부동산 인허가 문제는 그야말로 지뢰밭이다. 지자체장이 안전하게 임기를 끝마치는 경우가 희귀한 것도 그래서다.
“막을 방도가 없더군요. 일단 원칙대로 가는 거죠. 술은 동료와 먹자. 나도 공무원을 40년 가까이 해봤는데, 업자들이 직접 전화하는 경우가 어디 있나요? 일단 친구가 전화하는 것 아닙니까. 막상 나가보면 업자가 합석하는 거고. 대한민국 어디나 마찬가지예요. 물론 공무원만 독야청청할 순 없어요. 하지만 업자와 양주 먹는 것보다 동료끼리 소주 먹어야 한다고 얘기해요.”
물론 이런 뭉뚱그린 교과서적인 대답에 기자가 만족할 리 없다.
“맞아요. 당선되고 와보니까 급박한 재개발과 재건축 사안이 70여 개더군요. 당선된 날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문제가 뭔지 알아요? 그 친구들이 다 선거운동에 동참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
이게 비단 양천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수도권 전체가 대부분 이런 상황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비결을 갖고 있을까.
“문제는 떼로 몰려오면 차라리 낫다는 거예요. 진짜 문제는 친한 사람으로부터 생기는 법입니다. 조합장 중에는 찾아오면서 꼭 총무만 데려오는 분들이 있어요. 이런 분들 만나주면 큰일 납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선택해 조합원에게 알려주거든요. 반드시 조합장, 부조합장, 총무 등 3명이 함께 와야 만나줍니다. 될 수 있는 한 정보를 공개해 잘된 조합을 벤치마킹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방법이고요.”
그가 희망제작소 시절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그는 박 시장을 ‘점진적 개혁’, 자신은 ‘점진적 보수’라 칭하며 “급진적이지 않다”는 점이 공통점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가 길어지자 지켜보던 공무원이 구청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빨리 다음 일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신호였다. 그가 떠나려는 기자에게 한마디 물었다. “이번 선거에서 나 찍었죠?” 흡사 정치인 같은 질문이었지만 기자는 솔직히 답했다. “아닙니다.”
“어이쿠, 우리 위대하신 양천구민이….”
그는 아주 침착하고 유쾌하게 받아넘겼다.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언제든 실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일종의 여유로 비쳤다.
일전에 한 정치학자는 언론인에게 이같이 충고했다. 언론이 서울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지적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특별시의 행정은 여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와 달리 ‘정치’로 둘러싸여 있다. ‘복지논쟁’이 대표적이다. 바람이 불면 선거는 끝이다. 이 때문인지 현재의 민선 5기까지 서울 25개 구청장 가운데 연임을 이룬 이도, 꿈꾸는 이도 적다. 이런 한계를 깬 이가 추재엽(56) 양천구청장이다.
“어이쿠! 위대한 양천구민이시군요.”
키가 170cm 정도 될까. 작지만 단단해 보였다. 그는 기자의 거주지를 물어보곤 과장된 어투로 환영했다. 기자는 5년 전 종로구에서 양천구로 이사했다. 아파트 숲으로 이뤄진 양천구는 짧은 역사만큼이나 기묘한 도시다. 신월동이라는 가장 열악한 동네와 목동이라는 부촌으로 양분된 것.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였던 김영배 국회부의장이 한동안 이 지역에서 내리 4선을 이뤘다. 그러나 양천구 집값이 상승하면서 한나라당으로 국회의원이 바뀌었다.
원희룡 의원도 유명했지만 ‘추재엽’이란 브랜드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재선 구청장으로 ‘일을 잘한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특히 국회의원을 꿈꾸지 않는 전문 행정가라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번 10·26 재·보궐선거(이하 재보선)를 통해 3선 구청장이 됐다.
“인터뷰에 응할 처지가 안 됐습니다. 인물도 부족하고 정치인도 아니에요. 그저 양천구민의 일꾼으로 심부름이나 잘하면 되지, 웬 인터뷰인가요? 선거 치르고 언론사 20여 곳의 요청을 모두 거절했어요.”
실제 그의 인터뷰 섭외는 서울시장 섭외보다 더 힘들었다. 사실 3선 행정가에게 무슨 홍보가 더 필요할까. 더구나 그는 한동안 ‘과거 이력’ 논란으로 언론을 기피해왔다. 이번 재보선 결과도 따지고 보면 그의 ‘보안사’ 이력 논란이 빚은 아이러니였다. 언론의 관심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던 셈이다.
“진짜 이번엔 안 나오려 했어요. 그런데 쉬다 보니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 필요하더군요. 주위에서도 진짜 ‘경험 있는 구청장’이 나와야 한다고….”
“민원 70%는 해결 어려운 악성”
10월 16일 제18회 양천 노인교실 문화예술제에 참석한 추재엽 양천구청장.
그런데 깜짝 반전이 일어난다. 불과 1년 만에 현직 구청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퇴진한 것이다(2006년 전임 구청장이 학력 위조로 물러난 행운에 이어 두 번째다). 추 후보의 보안사 경력을 과장한 것이 원인이었다. 결국 재보선에서는 이제학 씨 부인이 야당후보로 나서서 지난해 구도를 이어갔고, 다른 한편으론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학원재벌 출신 후보의 견제까지 있었다. 결과는 추 후보의 압승(49%)이었다.
“구청장요? 이거 할 짓 못됩니다. 차라리 동네 구의원이 훨씬 근사하고 끗발도 있어요. 구청장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민원인 따라다니며 공과를 따져야 해요. 의원들은 생색이라도 내지만 우리는 무한책임이에요.”
거대도시 행정가의 삶이란 ‘민원’과의 투쟁이라는 하소연부터 시작했다. 민원의 70% 이상이 해결이 난망한 악성이란다. 그는 자신의 빼곡한 일정표를 꺼내들었다. 실제 오전 한 시간의 결재 시간을 빼곤 30분 단위로 사람 만나는 약속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터뷰를 길게 할 수 없다는 당부기도 했다.
그는 양천구에서만 5번 출마해 3번 구청장으로 당선됐다. 3선 연임 구청장이라는 사실도 특이하지만 두 번은 재보선에서 승리했다는 것도 기록이라면 기록이다.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무소속으로 나올 뻔했지만 극적으로 여당에 합류했다. 공천부터 승리까지의 과정도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일단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대한 원망부터 풀어놨다.
“오 시장이 자리까지 내걸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찬반이 대립한 재보선도 33% 넘은 적이 없는데, 이건 절대 안 되니 그러지 말라고 건의까지 했는데, 아니…. 바보도 아니고, 어떤 썩을 ×들이 시장을 부추겨서. 여하튼 입당했는데 경선부터 치르라면서 공천도 곧장 안 주더니…. 그 순간 잘못 입당했지 싶더군요.”
그의 당적은 꽤나 복잡한 편이다. 신민주공화당(김종필)에서부터 한국신당(김용환)은 물론, 한나라당과 무소속을 오갔다. 또한 그는 공고 출신에 군대는 장교가 아닌 하사관으로 마쳤다. 그가 실무에 밝다는 평가를 듣는 것은 이 같은 현장경험 때문일 터. 어쨌든 선거에서는 이겼지만 자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았나 보다. 현직 의원과의 힘겨루기 끝에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으로 밀리기도 했다. 아픈 기억 때문인지 그는 적극적인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 배제론자’다.
“무소속 지자체장을 해본 사람이면 알아요. 얼마나 좋은지를. 지구당위원장 눈치 안 봐도 되고, 지역의회도 상대적으로 편해요. 내가 한나라당이면 민주당 의원만 나를 싫어할 것 같죠? 천만에요. 시의원들도 구청장을 노린다고요. 결국 모두가 구청장의 적이라니까요. 차라리 모두가 무소속이면 정치권 눈치 안 보고 지역을 위해 일할 것 아니겠어요?”
그의 이론은 지나치게 단순했지만 쉽게 흘려들을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행정에서 정치를 빼야 한다는 주장은 기초자치단체 운영의 폐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화두다.
“법과 원칙을 바탕으로 소신을 펼치고 주민에게 심판받으면 돼요. 지금은 정치권 눈치를 너무 봐요. 서울시는 예산(30조 원)이라도 많지, 양천구는 기껏 3400억뿐인데….”
3선 구청장 당선자를 만났는데 그의 자랑을 안 들어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사실 양천구는 뽐낼 것이 지천에 널린 동네다.
“요즘 서울에서 노인요양시설 만들 수 있는 동네가 어디 있나요? 지역주민 반대도 심하고요. 우리는 이미 만들었죠. 처음부터 도시 인프라를 주차장이나 공원 같은 하드웨어에서 벗어나 ‘학교’ ‘병원’ 등으로 확장시켰어요. 일본을 보니 육아가 안 되고 학교가 나쁘면 주민이 떠나더군요. 그래서 일찍부터 할부로 땅 사면서까지 준비한 게 이제야 빛을 보는 거예요.”
맞는 얘기다. 강남이 인기 있는 이유는 여타 서울지역의 교육 및 육아 관련 경쟁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 아닌가.
“천만에요. 복지를 예산 관점으로만 본다면 구청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양천구에 사는 탈북자가 1066명이에요. 복지란 한도 끝도 없어요. 결국 예산이 아니라 휴먼인프라를 통한 나눔운동의 체계화가 중요하죠. 양천구엔 자원봉사자가 연간 4만 명쯤 돼요. 2004년에 최초로 푸드마켓을 만들었을 정도예요. 또 우리가 방과후학교 등 공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요? 그런데 강남에선 수능TV 만드는 데 120억 원을 한 방에 쏘더군요. 우린 12억도 없는데….”
부동산 인허가 문제는 말 그대로 지뢰밭
추재엽 양천구청장은 오뚝이 인생을 거듭해온 행정가다.
“복지가 아닌 개발 이미지? 글쎄요. 목동은 대한민국 양극화의 상징이에요. 저는 재건축·재개발 뉴타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실제 양천구 뉴타운이 제일 빠르게 진행됩니다. 더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재건축·재개발 총합인 뉴타운. 결국 이 시대 구청장의 성공 여부는 이런 과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를 조정하는 능력에 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부동산 인허가 문제는 그야말로 지뢰밭이다. 지자체장이 안전하게 임기를 끝마치는 경우가 희귀한 것도 그래서다.
“막을 방도가 없더군요. 일단 원칙대로 가는 거죠. 술은 동료와 먹자. 나도 공무원을 40년 가까이 해봤는데, 업자들이 직접 전화하는 경우가 어디 있나요? 일단 친구가 전화하는 것 아닙니까. 막상 나가보면 업자가 합석하는 거고. 대한민국 어디나 마찬가지예요. 물론 공무원만 독야청청할 순 없어요. 하지만 업자와 양주 먹는 것보다 동료끼리 소주 먹어야 한다고 얘기해요.”
물론 이런 뭉뚱그린 교과서적인 대답에 기자가 만족할 리 없다.
“맞아요. 당선되고 와보니까 급박한 재개발과 재건축 사안이 70여 개더군요. 당선된 날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문제가 뭔지 알아요? 그 친구들이 다 선거운동에 동참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
이게 비단 양천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수도권 전체가 대부분 이런 상황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비결을 갖고 있을까.
“문제는 떼로 몰려오면 차라리 낫다는 거예요. 진짜 문제는 친한 사람으로부터 생기는 법입니다. 조합장 중에는 찾아오면서 꼭 총무만 데려오는 분들이 있어요. 이런 분들 만나주면 큰일 납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선택해 조합원에게 알려주거든요. 반드시 조합장, 부조합장, 총무 등 3명이 함께 와야 만나줍니다. 될 수 있는 한 정보를 공개해 잘된 조합을 벤치마킹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방법이고요.”
그가 희망제작소 시절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그는 박 시장을 ‘점진적 개혁’, 자신은 ‘점진적 보수’라 칭하며 “급진적이지 않다”는 점이 공통점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가 길어지자 지켜보던 공무원이 구청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빨리 다음 일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신호였다. 그가 떠나려는 기자에게 한마디 물었다. “이번 선거에서 나 찍었죠?” 흡사 정치인 같은 질문이었지만 기자는 솔직히 답했다. “아닙니다.”
“어이쿠, 우리 위대하신 양천구민이….”
그는 아주 침착하고 유쾌하게 받아넘겼다.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언제든 실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일종의 여유로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