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8

2011.08.01

좌절은 금지 인생 캔버스에 다시 색칠해봐!

바보 화가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1-08-01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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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절은 금지 인생 캔버스에 다시 색칠해봐!

    몽우 조셉킴 지음/ 동아일보사/ 284쪽/ 1만8000원

    서른여섯 살, 꿈을 주는 화가 몽우(夢友) 조셉킴. 그는 그림을 그릴 때면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초라해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10대에 발병한 백혈병과 암으로 죽음을 항상 곁에 둔 채 살아간다.

    “나는 밤이 싫었다.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몸이 염증으로 붓고 열이 나고 정신이 날카롭고 아파서 잠을 자지 못했다. 밤이 오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어린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새벽의 푸르스름한 색깔이 날 위로해주었다.”

    ‘바보 화가’는 ‘천재 화가’ ‘한국의 서정적 피카소’라는 찬사를 받았던 몽우가 자신의 꿈과 삶의 모습을 진솔하게 기록해 놓은 책이다. 죽음과 긴 어둠을 이겨낸 화가답게 직접 그린 삽화는 생명력이 꿈틀댄다.

    몽우의 첫 스승은 아버지로 음악, 서예, 전각, 그림 등 다방면에서 감성이 넘치는 예술인이었다. 어린 몽우는 아버지 어깨너머로 말보다 그림을 먼저 배웠다. 어린 시절 집이나 길을 찾을 때도 주소가 아닌 색깔로 기억해냈다. 병마가 시도 때도 없이 괴롭혀도 몽우의 천재성을 막지는 못했다. 작품 영감이 떠오르면 식당에서 김치, 고추장, 된장 등으로 그림을 그렸고, 집에서도 음식으로 그림을 그리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정신병원에 가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인사동 길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려 용돈을 벌던 열아홉 살. 전시를 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그러나 화가가 자신의 돈으로 일주일간 전시회를 연다면 최소 이천만 원이 들었다. 인사동 길가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나에게 외국인이 이 그림 파는 거냐고 물었다. 그 자리에서 전시회를 위해 가져간 그림들이 다 팔렸다.”



    아픈 몸을 이끌고 초등학교를 간신히 마친 후 아버지 공방에서 일을 도우며 틈틈이 그림을 그려왔던 몽우에게 그날 일은 삶의 빛이 됐다. 인사동 거리에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팔기 시작한 몽우의 그림은 인기가 좋아 외국 관광객이 한국에 오기 전 미리 부탁을하거나, 시간이 없는 사람은 샘플링 그림을 몽땅 사가기도 했다.

    24세가 된 1999년, 몽우는 우연한 기회에 미국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저명한 미술 관계자와 금융계 인사가 모인 뉴욕의 한 파티에서 작품 500점이 단 이틀 만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1억5000만 원의 거금이 통장에 입금되면서 그의 앞날은 분홍빛으로 펼쳐지는 듯했다. 하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같은 화가에게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평생 물감값 걱정을 덜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시작한 사업이 실패한 데다 지인의 빚보증까지 선 그에게 남은 것은 사채업자의 협박 전화와 악화한 건강뿐이었다.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그는 마지막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림은 그를 기적적으로 다시 일으켜 세웠다.

    “현실이 날 옭아매며 힘들게 할 때 나는 독수리를 타고 저 하늘로 날아간다. 독수리야. 어둠 속에서 날 아침 햇살 밝은 곳으로 데려가 주렴!”

    아무리 무겁고 암울한 현실이 닥쳐도 몽우는 긍정적인 마음과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스무 살을 넘기기 어렵다던 그가 서른여섯 해 여름에 여전히 꿈꾸고 현실을 사랑하며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몽우가 진심으로 꾹꾹 눌러 쓴 이야기는 쉽게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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