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7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야권연합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 민원실을 통해 본청에 들어서고 있다.
현상만 놓고 보자면 여권의 ‘압도적 대세’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못지않은 관심을 받고 있다. 시류에 민감한 주식시장에서는 벌써부터 문재인 관련주(테마주)가 호사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이대로라면 현재 야권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마저 금세 뛰어넘을 기세다. ‘박근혜 대세론’에 맞설 대항마가 문 이사장이 될 것이라는 대망론(大望論)의 출처이자 근거다.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자서전은 한 달여 만에 15만 부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 집계에서도 베스트셀러다. 시쳇말로 대박이다. 정치인 책이, 그것도 자서전 형식의 책이 일반인에게 이 정도로 열렬한 호응을 받은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문 이사장의 책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의 인간적 매력이 일반인에게 충분히 상품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지지도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여론조사 기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문 이사장의 지지도는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 2.5%(5월)→3.8%(6월)→6%(7월)로 두 달 새 두 배 이상 뛰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손 대표를 제치기도 했다. 7월 17일 모노리서치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문 이사장은 11.8%의 지지율을 보여 11.3%를 얻은 손 대표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문 이사장의 지지도 상승 곡선과 손 대표의 지지도 정체 내지는 하락 곡선이 교차하는 분위기다.
인간적 매력+야권의 지리멸렬
인기 비결은 뭘까.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문 이사장이 갖는 이미지의 장점이다. ‘신사다워 보인다’ ‘가볍지 않고 강직해 보인다’ ‘쉽게 말을 바꾸거나 태도를 바꿀 것 같지 않다’ 등으로 요약된다.
학생운동권 출신에 특전사 제대, 그리고 인권변호사이자 노 전 대통령의 평생 동지로 살아온 삶의 궤적이 유권자에게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다. 야권 후보군으로 함께 거론되는 손 대표,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 같은 현역 정치인과 대비되는 측면이 많다.
또 다른 인기 비결은 야권의 지리멸렬함에 대한 반대급부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소위 말하는 진보개혁 성향의 야권이 현 정부 실정에 염증을 느끼는 유권자를 충분히 품어줄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손학규도, 유시민도 아닌 것 같다’고 실망한 개혁적 성향의 유권자들이 새로운 대안으로 문 이사장을 바라보는 것이다. 범야권이 통합하고 단일 후보를 만들어갈 때 문 이사장도 함께 선수로 뛰길 바라는 기대감이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지역구도, 이미지, 그리고 언제든 열렬하게 지지할 용의를 가진 친노 진영 등이 뭉쳐 ‘문재인 대망론’을 만들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정치적 능력은 아직 한 번도 검증된 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정치적 방식으로 정치에 어필하는 것을 ‘비정치의 정치’라고 하는데 문 이사장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문제는 본선 경쟁력이다. 평가가 크게 엇갈린다. 아직 검증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본인 스스로도 자기 구실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 대선후보로 거론되지만 정작 본인은 거취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야권 대통합과 2012년 정권교체를 위해 소임을 다하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직접 선수로 참여해 링에 오를지, 아니면 조력자로 남을지조차 여전히 불분명한 셈이다. 그렇다고 그가 마냥 이런 상태를 ‘즐길 수는’ 없다. 당장 내년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문 이사장이 내년 총선 때 PK(부산경남) 지역에서 어떤 구실을 할지가 검증의 첫 관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치’ 추구할까, ‘보람’을 느낄까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문 이사장이 내년 총선에서 PK 지역을 진두지휘하는 것이 민주당이 바라는 바고, 민주개혁세력에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도 “문 이사장이 총선 때 제 구실을 하면 PK 지역에서 의미 있는 의석을 얻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망론’보다 ‘역할론’에 무게를 실은 발언이다.
이에 반해 친노 핵심인 안희정 충남지사는 7월 27일 문 이사장의 대권 도전 가능성에 대해 “정치인 스스로의 도전 의지도 중요하지만 본인도 꺾을 수 없는 어떤 흐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망론’에 좀 더 비중을 두는 뉘앙스다. 문 이사장의 책 제목이자 스스로도 여러 차례 언급한 ‘운명’처럼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고 박사는 “정치를 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고, 권력의지가 있어야 대권을 잡을 수 있는데 문 이사장은 스스로 권력의지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권력의지는 정치에 대한 철학과 오랜 자기성찰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단기간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직은 판단하기에 이르다는 의미다.
어찌 됐든 문 이사장의 등장은 야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박근혜 대세론’에 맞설 야권 카드로 ‘손학규의 수도권 경쟁력’과 ‘문재인의 PK 경쟁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위력적일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자서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노무현)는 그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을 해나갔고, 나는 나대로 ‘보람’ 있다고 여기는 일을 해나갔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문 이사장은 어떤 ‘역할’로 ‘보람’을 느끼려 하는 걸까. 야권통합의 촉매? 아니면 범야권 대표주자? 그가 어떤 ‘운명’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의 보람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