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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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멀리 떠나야만 쉼표를 만날까요?

서울 도심과 근교 숨겨진 휴가지 전격 공개

  • 입력2011-08-01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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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멀리 떠나야만 쉼표를 만날까요?
    휴가 못 가셨나요? 콩나물시루 같은 산, 계곡, 바다에서 고생하느니 ‘방콕’하면서 늦잠 자고 드라마 섭렵하면서 집에서 쉬시겠다고요?

    알고 보면 주변에도 보석 같은 곳이 많아요. 서울은 세계적으로 뜨는 관광지(hot place)입니다. 서울시가 외국인을 위해 꾸린 인터넷 홈페이지(www.visitseoul.net)에 들어가 보세요. 서울의 핫 플레이스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왕릉 주변의 솔숲, 북한산 둘레길은 치유의 숲입니다. 명상하면서 마음과 몸을 쉬게 해주세요. 숲길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된다고 해요.

    서울 주변 왕릉을 찾는 건 수백 년 두께와 마주하는 호젓한 여정입니다. 쉼터, 놀이터가 휴양객으로 넘쳐나도 왕릉은 아늑합니다. 세월의 무게와 시간의 덧없음이 교차하는 사색, 쉼의 공간이죠.

    골목 기행은 어떨까요.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젊음이 열정을 불사르는 홍대 뒷골목, 금단반점의 꼬치가 일품인 ‘작은 중국’ 가리봉동, 인쇄밥 먹는 사람이 이제껏 살아남은 충무로…. 골목 기행에서 ‘이태원 프리덤’을 빼놓을 순 없겠죠.



    특급호텔에서 하룻밤 호사를 누려보는 건 어떨까요. 도심 속 카바나에서 가족과 파티를 즐기는 겁니다.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풀사이드 바비큐’도 맛볼 수 있어요.

    아들딸 손잡고 ‘국립 기행’에 나서보는 것도 좋습니다. 국립 기행이 뭐냐고요? 아빠 노릇 해보시란 겁니다. 아이와 함께 ‘국립’ ‘시립’이 이름 앞에 붙은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을 순례해보세요.

    자, 국립 기행부터 시작해볼까요?

    >> 아이들과 손잡고 ‘국립 기행’

    출근과 등교시간에 맞춰 각자 아침밥 먹고 일터로, 학교로 뿔뿔이 흩어졌다가 밤늦게 돌아와 잠을 청하기 바쁜 가족을 가족이라 할 수 있을까. 한 집에 산다 해서 ‘가족(家族)’이라 하고, 한 솥에 지은 밥을 나눠 먹는다 해서 ‘식구(食口)’라 하지만 정작 사전적 의미와는 반대로 사는 가족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방학과 휴가가 겹치는 이른바 휴가시즌에는 가족과 식구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는 듯 온 가족이 산으로, 바다로,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큰맘 먹고 떠난 여행이 자칫 ‘어른들의 잔치’로 끝날 소지가 크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아이들이 보고 즐기고 싶은 ‘꺼리’를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적잖이 드는 휴가 비용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멀리 휴가를 다녀오기도 마땅치 않고 그렇다고 집에서 방콕하자니 아이들 보기에 미안한 가장에게 꼭 맞는 휴가지가 있다. 바로 ‘국립’ 시설이다.

    서울 등 대도시 주변에 산재한 국립 시설에는 비용 부담 없이 아이들의 오감을 만족시킬 만한 ‘놀거리’ ‘볼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하다. 단순히 놀고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교에서 책으로 배운 내용을 눈과 귀, 손과 발로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살아 있는 교육장이다. 매달 꼬박꼬박 세금을 내왔던 월급쟁이에게는 자신이 낸 세금이 값지게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다.

    01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꼭 멀리 떠나야만 쉼표를 만날까요?

    어린이들이 조각을 붙여 토기를 만들어보고 있다.

    박물관이라 하면 으레 대형 유리벽 안에 가지런히 놓인, 예쁜 조명을 받는 유물을 떠올리기 쉽다.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을 위한 박물관이다. 어린이박물관은 다르다.

    신라시대 왕이 썼던 ‘왕관’을 머리에 써보고, 백제금동대향로를 만져보고, 악기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버튼을 눌러 귀로 들어보고, 석기시대에 사용한 토기 조각을 틀에 맞춰 만들어보고, 전쟁에 대비한 성도 직접 쌓아보고, 고대인이 살았던 움집에 들어가보고, 농사짓는 사람처럼 삽질도 해보고, 기와무늬를 화선지에 탁본도 뜨고….

    어린이박물관에서는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손으로 만지고 만드는 ‘행위’를 통한 체험이 대부분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등 한국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어린이박물관이다.

    어린이박물관에는 상설전시장에 전시하는 유물을 같은 형태와 크기로 복제해 어린이들이 직접 만져보며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백제금동대향로와 신라 금관이 대표적이다.

    어린이박물관팀 조혜진 학예연구사는 “전시실 관람이 박물관에 첫발을 내딛는 것이라면, 체험 프로그램은 박물관을 내 것으로 체화하는 적극적인 활동 과정”이라며 “어린이박물관은 아이들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박물관을 찾는 어린이와 가족을 위해 박물관 측은 다양한 심화학습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여름 및 겨울방학에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이해하고 체험해보는 ‘고대로의 여행을 떠나요’와 박물관 사람들의 업무를 체험해보는 ‘나도 큐레이터’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인터넷 접수를 통해 컴퓨터 추첨으로 참가 학생과 가족을 선정한다. 꼭 방학이 아니더라도 주말에 열리는 가족 교육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도 있다.

    TIP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3층에 있다. 이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직접 체험하는 코너가 많은 어린이박물관의 특성상 한꺼번에 너무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것을 막으려고 1시간 30분 단위로 하루 6회씩 나눠 입장시킨다. 인터넷 예약으로 매회 100명을 접수받는데 현장에서도 매회 200명까지 발권해 입장시킨다.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은 휴관한다.

    전화 | 02-2077-9000

    홈페이지 | www.museum.go.kr

    꼭 멀리 떠나야만 쉼표를 만날까요?

    어린이도서관에는 다양한 주제의 전시회를 여는 ‘전시실’도 있다.

    02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 눈에 ‘당연’해 보이는 세상사도 이제 막 세상에 눈뜨기 시작한 어린이에게는 호기심 천국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이 ‘왜?’라는 질문을 입에 달고 사는 까닭도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지적 욕구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질문 공세에 일일이 답해주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짧은 지식을 절감하게 된다. ‘모른다’고 하자니 자존심 상하고, 그렇다고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할 수도 없을 때 요긴하게 아이들의 질문공세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책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자녀의 지적 욕구를 맘껏 충족시켜주고, 자녀가 더 넓고 깊은 지식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 바로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하 어린이도서관)이다.

    어린이도서관 1층에 자리한 어린이자료실에는 우리나라에서 발행한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 도서는 물론, 학년별 교과 연계 도서도 한데 모아놓았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는 ‘이야기방’도 따로 구비했고, 유아용 자료를 모아놓은 ‘그림책 나라’도 있다.

    세계 여러 나라 그림책과 동화책, 교과서와 참고도서 등을 한데 모아놓은 외국아동자료실은 ‘책’을 통해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일본어, 중국어 등으로 된 2만4000여 권의 외국 책이 있다.

    어린이도서관에서는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권장하려고 ‘독서통장’을 마련했다. 어린이가 읽은 책 목록을 통장에 그때그때 기록해 자신의 독서량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 어린이도서관 현묘자 사서는 “통장에 잔액이 늘어가는 즐거움에 더 자주 저금을 하듯, 아이들은 독서통장에 도서목록이 늘어나는 것을 즐거워한다”며 “독서통장을 가진 아이는 도서관을 더 자주 찾고 더 많은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어린이도서관은 자료실 외에도 그림책과 원화, 독서공모전 수상작품 등 다양한 주제로 전시를 여는 ‘전시실’도 마련해놓았으며, 영화와 음악을 감상하고 인터넷으로 정보검색도 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실도 갖췄다.

    멀티미디어실 한쪽에 자리 잡은 ‘체험형 동화구연실’에서는 어린이가 주인공이 돼 직접 체험하는 동화구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체험형 동화구연’은 대형 스크린 속 가상공간에서 어린이들이 직접 주인공이 돼 만져보고 느끼는 참여활동이다. 하루 두 차례 실시하고 1회당 9명만 입장할 수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접수는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으로 받는다.

    TIP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용 가능하다. 매월 둘째, 넷째 월요일에는 휴관하고, 일요일을 제외한 공휴일에도 휴관한다.

    전화 | 02-3413-4800

    홈페이지 | www.nlcy.go.kr

    03 국립과천과학관

    아이들과 함께 둘러본 ‘국립’ 시설 가운데 아이들 만족도가 가장 큰 곳이 국립과천과학관(이하 과학관)이다. 일단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다. 반나절을 돌아다녔을 뿐인데 다리가 아플 정도였다. 찬찬히 둘러보려면 이틀은 족히 걸릴 만한 규모다.

    과학관은 크게 기초과학관과 첨단기술관, 자연사관, 전통과학관, 생태체험관, 어린이탐구관으로 나뉜다. 외부에는 나로호 모형이 서 있는 야외전시장과 천체관측소, 천체투영관이 자리하고, 곤충생태관도 있다.

    기초과학관에서는 시뮬레이터를 통해 태풍과 지진을 체험할 수 있다. 전자기유도로 전기방전 현상을 경험하는 테슬라 코일에서는 번개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시뮬레이터와 3D 영상으로 우주여행을 체험하는 우주여행극장과 로봇 스타디움이 자리 잡은 첨단기술관은 항상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소녀시대 노래에 맞춰 춤추는 로봇들과 드럼 치는 로봇, 한복 곱게 차려입고 노래하는 로봇 등은 우리나라 첨단기술의 발전상을 실감케 한다.

    비스듬히 누워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아보고, 우주인의 활동을 영상물로 감상하는 천체투영관은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인기가 높다.

    페달을 밟거나 레버를 돌려 에너지를 만든 뒤 물을 끌어올리는 에너지 만들기 체험 코너를 갖춘 어린이탐구체험관은 과학과 놀이를 결합한 어린이 과학놀이터다.

    홍현선 학예연구관은 “아이들이 처음에는 원리를 잘 모르고 무작정 체험했다 하더라도 나중에 그 원리를 이해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오래 기억한다”고 말했다.

    자연사관에서는 남자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룡 화석을 모아 전시한다. 또 이곳에서는 손을 집어넣어 직접 닥터피시를 체험할 수 있고, 이구나아에게 먹이를 줄 수도 있다. 보고 듣고 만지면서 과학을 접한 어린이들에게 과학은 더는 따분한 학문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다.

    TIP

    관람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다. 여름방학에 한해 관람시간을 1시간 연장한다. 천체투영관에서는 하루 다섯 번 별자리 설명과 영상물 상영을 한다(천체투영관 문의전화 : 02-3677-1561). 체험 코너는 각 전시관 안내데스크나 체험시설 앞에서 개별적으로 예약 접수를 해야 이용 가능하다. 단, 천체관측소는 3일 전부터 하루 전까지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 천체투영관은 인터넷 접수와 현장 접수가 가능하다. 전시관에 대한 심층해설을 원하는 이용자는 인터넷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체험시설이 많은 국립과천과학관은 어른 4000원, 청소년 및 어린이 2000원의 관람료를 받는다. 천체투영관도 어른 2000원, 청소년 및 어린이 1000원의 관람료를 내야 한다.

    전화 | 02-3677-1500

    홈페이지 | www.scientorium.go.kr

    꼭 멀리 떠나야만 쉼표를 만날까요?

    어린이박물관에서 체험활동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

    04 또 다른 ‘국립’ 시설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


    우리 조상의 생활상을 알기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전래동화 ‘심청전’을 주제로 상설전시장을 꾸며놓았다. 아이들이 놀이와 동화, 게임 등을 통해 우리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학교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전화 | 02-3704-4540

    홈페이지 | www.kidsnfm.go.kr

    국립현대미술관 어린이미술관

    이곳의 캐릭터 ‘달 토끼’는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의 작품 ‘토끼와 달’에서 나왔다. ‘달 토끼’는 어린이미술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자신의 소망을 적은 종이를 붙여놓은 것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된다. 색연필을 이용해 직접 그림도 그릴 수 있다.

    전화 | 02-2188-6000

    홈페이지 | www.moca.go.kr

    꼭 멀리 떠나야만 쉼표를 만날까요?

    경기 남양주 금곡동에 있는 고종황제의 무덤 홍릉(洪陵).

    >> 역사와 시간을 만나는 ‘왕릉 기행’

    뭔가 이름이 있을 듯했다. 왕릉을 지키는 석물마다 피어오른 저 검은색 얼룩. 한참이나 자료를 뒤져보니 ‘흑화(黑化)’라는 용어가 나타난다. 공기 중에 흩어져 날아다니는 오염물질이 달라붙었거나, 석재에 포함된 철 성분이 한곳에 뭉쳐 산화했거나. 원인은 다르지만 이유는 하나다. 바로 수백 년의 시간이다.

    그 시간을 마주하려고 나선 길.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경기 여주시에 있는 세종대왕의 영릉(英陵)이었다. 성군(聖君)의 묘에 걸맞게 여주 일대의 빼곡한 숲을 모두 끌어안은 듯 위엄 넘치는 기세를 지닐 수 있는 것은 힘 있게 뻗어나가기 시작한 15세기 조선의 젊음 덕분이었을 터. 관람객 누구나 사초지(莎草地) 위를 올라 봉분 바로 앞까지 다가갈 수 있도록 해놓은 관리소 직원들의 배려가 고맙다.

    밖에서의 은밀성과 안에서의 개방감

    조선 왕릉이 공유하는 공간철학은 단 두 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밖에서의 은밀성과 안에서의 개방감. 능부터 입구까지 쭉 뻗은 구조 때문에 수십 리 밖에서도 존재를 알 수 있는 중국 황제릉과 달리 조선 왕릉은 지척에 이르고도 잘 보이지 않는다. 구불구불한 숲길을 따라 모퉁이를 돌면 그제야 신성한 곳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강렬한 빨강의 홍살문이 불쑥 나타난다. 그 대신 사초지 위를 올라 ‘왕의 눈’으로 내려다보면 얘기는 완전히 다르다. 주산이니 안산이니 하는 풍수용어를 몰라도, 전방에 탁 트인 숲의 바다는 누가 봐도 최고의 명당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정자각(丁字閣). 왕릉 앞에 제사를 지내려고 만들어놓은 건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고무래 같은 丁자 모양이라 해서 정자각이다. 세종대왕릉 정자각의 처마 밑에 걸터앉아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가만히 바라보며 다리를 쉬는 동안,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매미 울음소리가 귀를 가득 메운다. 무덤이 처음 만들어진 500여 년 전부터 하늘은 한결같이 푸르렀을 테고, 잠자리는 무심히 날았을 것이다. 숲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여행객의 피로를 깨운다.

    세종대왕릉의 오른편에서 산속으로 난 700m 남짓의 길을 걸으면 17대 효종의 영릉(寧陵)을 만날 수 있다. 그 앞에 자리한 인선왕후의 봉분으로 이어진 사초지의 곡선이 부드럽고 따뜻하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8년의 시간을 보낸 뒤에야 귀국했던 왕자, 재위 동안에는 북벌(北伐)의 꿈을 버리지 못하다 마흔 남짓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군주와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움이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40분 남짓을 달려 여정은 경기 구리시 동구릉으로 이어진다. 한양의 동쪽에 있는 9개 능이라는 뜻에서 동구릉이다. 굳이 따지자면 고양시 서오릉, 서삼릉과 대칭 형세를 이루는 셈.

    임금 아홉 명의 무덤 가운데 단연 발길을 끄는 것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잠들어 있는 건원릉(健元陵)이다. 동구릉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태조의 무덤은 위압감을 줄 정도로 높은 사초지가 우선 독보적이다. 젊어서는 동북 지방의 호랑이라 불렸고, 나이 들어서는 새로 나라를 세워 스스로 용이 된 무장(武將)의 기개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건원릉의 봉분에는 잔디 대신 억새를 가득 심었다. ‘불효자’ 태종이 아버지 고향인 함경도 영흥에서 자라는 억새를 가져다 심었다는 게 실록의 기록. 전통은 오늘까지 이어져 여전히 태조의 봉분에는 억새를 심어 관리한다. 여름에는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잔디가 사그라진 겨울이 오면 억새는 바람에 나부끼는 봉두난발이 되어 ‘하늘을 열었던 사내’의 풍채를 떠올리게 만든다.

    햇볕 강한 날보다 비 소식 있는 날이 제격

    어느 틈엔가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잰걸음을 서둘러 옮겨 닿은 곳은 공교롭게도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가 잠든 목릉(穆陵)이었다. 전쟁의 참화를 피해 서둘러 피난길에 올라야 했던 비운의 임금.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하는 서어나무 숲 오솔길을 굽이굽이 지나는 동안 400여 년 전 그가 경험했을 파천(播遷)의 쓰라림을 떠올린다.

    여행의 끝은 누가 뭐래도 조선의 마지막 두 임금 고종과 순종이 잠들어 있는 홍릉(洪陵)과 유릉(裕陵)으로 장식해야 옳을 것이다. 동구릉에서 멀지 않은 남양주 금곡동의 홍유릉은 한눈에 보기에도 선대의 다른 무덤과는 형식이나 배치가 다르다. 중국의 제후국 왕릉 양식에 맞춰 석물을 사초지 위 봉분 앞에 소박하게 두었던 이전 것과 달리, 홍살문을 넘자마자 양 옆으로 열을 지어 문무백관처럼 세워둔 것이 대표적이다. 정자각 대신 한 일(一) 자 모양의 침전을 사초지 앞에 배치한 것도 마찬가지. 제후가 아니라 황제이고자 했던 고종의 눈물겨운 자주 선언이 죽어서도 이어진 형국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두 왕릉이 만들어진 1919년과 26년은 이미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병합한 후였다. 특히 좁은 골짜기에 들어앉은 순종의 능 위치는 수명을 다한 왕조의 말로를 상징하는 듯 옹색하다. 사초지 위에서 느끼는 개방감이 압권이던 다른 무덤과 달리, 코앞까지 치고 들어선 고층 병원 건물은 왕릉의 위세를 정면에서 가로막는다. 무너져 내린 국가의 서글픈 말로. 때마침 어둡던 하늘이 비를 내리기 시작한다.

    재실 마루에 앉아 퍼붓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동안 바람도 춤을 춘다. 무수한 빗방울이 솔숲과 잔디를 두드리는 쏴아 소리가 시간을 가로지르며 이어진 사념을 씻어내기라도 할 듯 시원하다. 왕릉의 여름은 비가 와도 좋다. 숲길을 걷느라 땀 흘린 여행객에게는 지나가는 소나기가 오히려 반가울 터. 하루 종일 햇볕이 강한 날보다는 잠시 비 소식이 있는 날이 안성맞춤인 이유다.

    왕릉을 찾는 길은 수백 년의 두께와 마주하는 외로운 듯 호젓한 여정이다. 세월의 무게와 시간의 덧없음이라는 모순 가득한 사색이 교차하는 흔치 않은 경험이다. 전국의 쉼터와 놀이터가 휴양객으로 넘쳐나는 계절에도 왕릉은 여전히 조용하고 아늑하다. 대견스러울 만큼 늠름한 소나무가 줄지어선 숲을 지나 역사 속 임금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혼자라도 나쁘지 않다. 번잡한 말 없이 마음이 통하는 동행이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TIP

    조선은 개국 초기 도읍을 개성으로 잠시 옮겼지만 그 이후 옮기지 않았고, 그래서 왕릉도 대부분 서울과 경기에 자리한다. 총 42기의 능 가운데 북한 개성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남한에 있는데, 북쪽으로는 파주와 포천, 남쪽으로는 여주와 화성까지 골고루 흩어져 있어 수도권에서는 누구나 멀지 않은 곳에서 만날 수 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릉은 어느 곳이나 고즈넉한 분위기와 숲길이 아름답다.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왕릉은 대개 여름에는 오전 6시부터 관람객 입장이 가능해 오후 6시 30분이면 문을 닫고, 동절기에는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그러나 몇몇 왕릉은 오전 9시에 문을 열거나 야간관람을 허용하는 등 예외가 있으므로 문화재청이 운영하는 조선왕릉 정보 사이트(royaltombs.cha.go.kr)에서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매주 월요일은 쉬는 날이고, 관람요금은 500~1000원 남짓으로 저렴한 대신 대부분 주차요금은 별도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문정왕후 태릉 안에는 세계문화유산 지정 즈음에 만든 조선왕릉전시관이 있어 탐방의 길잡이 구실을 한다.

    >> 부부가 함께 서울에서 ‘1박2일’

    꼭 멀리 떠나야만 쉼표를 만날까요?

    여의도 한강공원 수영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들.

    ‘방콕’하면서 늦은 아침까지 늦잠 자기, ‘본방 사수’ 못한 드라마 섭렵하기, 에어컨 틀어놓고 수박 먹으면서 책 읽기로 휴가를 보내려고 했어요. 집 떠나면 고생 아닌가요.

    휴가 첫날 침대와 소파에서 굴러다니니 지루하고 좀이 쑤시더군요. 아내와 함께 서울을 탐험해보기로 했어요. ‘서울에서 하룻밤, 이틀 낮 놀기’가 콘셉트입니다. 지방으로, 해외로 사람들이 떠난 터라 평일의 서울은 호젓했어요.

    서울은 세계적으로 뜨는 관광지예요. 한류 열풍도 일조했죠. 국립공원이 도심을 내려다보고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강이 도심을 가로지릅니다.

    북한산 오르고 경복궁 돌담 따라 걷고

    새벽, 배낭을 메고 북한산을 오릅니다. 평일의 북한산은 아늑해요. 해가 떠오릅니다. 비봉에 올라 도심을 내려다보니 아등바등 사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원한 바람이 귀를 간질여요. 수도에 국립공원이 있는 나라가 있던가요?

    휴가로 찾은 북한산은 보통 때 북한산과 달랐어요. 짙푸르게 우거진 나무숲,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숲소리’, 오랫동안 온 비 덕분에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맑은 하늘, 아련하게 이어진 산길….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아침 10시, 삼계탕집 토속촌(종로구 체부동·02-737-7444)이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 늦은 아침을 먹었어요. 밥을 먹기에 어중간한 때인데도 일본인 손님이 줄지어 들어오더군요. 일본인 관광객에게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죠. 삼계탕 특수재료 3가지를 밝혀내고자 혀를 곤두세웠지만 비밀을 찾아내는 데 실패했습니다.

    조선의 법궁(法宮)인 경복궁(景福宮) 돌담을 따라 걸으면 통의동이 나와요. 통의동의 랜드마크는 열린책들 사옥 ‘더 소설’. 통의동과 잇닿은 부암동은 서울의 보석이에요. 삼청동이 ‘옛것’을 배신했다면, ‘서울 속 산촌’ 부암동은 ‘옛것’을 보듬으면서 진화했죠. 1960년대식 간판을 내건 낡은 가게와 문화공간이 잇대어 서 있어요. 생커피콩을 직접 볶고 묵힌 뒤 갈아서 내놓는 ‘클럽 에스프레소’(북악산길 삼거리·02-764-8719)에서 커피를 마셨어요.

    뚝섬으로 움직일 시간입니다. move! move! 수상스키를 배우기로 했거든요. 서울 한복판에서 수상스키, 웨이크보드, 윈드서핑을 즐길 수 있어요. 한강 뚝섬지구 윈드서핑장에 수상레저클럽이 성업 중입니다.

    지상 훈련을 마치고 강으로 처음 나갔을 때는 스키, 보드에서 일어서기가 어려워요. 일어서려다 자빠져 한강물을 들이켜는 게 묘미죠. 세 번쯤 타면 일어설 수 있어요. 생각보다 배우기 쉽더군요. 한강 양안의 높은 건물을 바라보면서 강 위를 내달리는 기분은 안 해본 사람은 절대로 모릅니다.

    뚝섬전망문화컴플렉스(02-3780-0760)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어요. 자벌레(나비목의 곤충) 모습을 한 아름다운 건물이 식욕을 돋워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국인도 많더군요.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강변을 내달립니다. 덥지 않느냐고요? 자전거에 올라타서 바라보는 서울은 색달라요. 발아래로 길이 흐르고, 밟아가는 속도대로 원경이 근경이 됩니다. 땀을 흘리니 몸에서 니코틴, 알코올이 빠져나가요.

    잠은 난지도 캠핑장에서 자기로 했어요. 여장을 풀기 전 여의도 한강공원 수영장에서 더위를 식혔습니다. 평일의 한강공원 수영장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요. 입장료 5000원, 선 베드 이용료 5000원. 여의도 증권가,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면서 떡볶이를 안주 삼아 맥주를 들이켜요.

    해가 삐뚜름히 눕습니다. 밤섬을 바라보면서 선탠을 즐기던 이들이 하나 둘씩 짐을 싸네요. 마켓에서 밤에 마실 술과 저녁 찬을 산 뒤 캠핑장에 도착했어요. 근사하게 지어놓은 야구장에서 아이들이 야구를 합니다. 난지습지공원은 아이들을 위한 ‘자연 학교’더군요. 캠핑장 백미는 바비큐 파티입니다. ‘자전거 타고 난지캠핑장에서 바비큐 구워 먹기!’ 동호회도 있다고 하네요. 아내와 함께 밤늦도록 맥주 마시면서 세상 사는 얘기를 했습니다. 찍은 사진을 보면서 키득거렸고요. 서울 풍경이 사진 속 부부의 얼굴을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이튿날 새벽, 강변을 산책했어요. 새벽의 하늘빛을 강둑에 서서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허름한 식당에서 북엇국을 먹고 창덕궁 후원으로 향합니다. 창덕궁은 아침 9시 문을 엽니다.

    후원의 숲은 도심의 숨통이자 휴식처예요(02-762-8261·입장료 3000원). 동산과 숲을 조경으로 삼으면서 정자와 집칸을 배치한 원림(園林)의 풍취는 인공 정원과는 격이 달라요.

    툭~툭 가랑비가 내립니다. 여름 후원은 맨발로 걸어야 참맛입니다. 그러니 비가 오면 금상첨화겠죠.

    난지 캠핑장서 하룻밤…원림에서 맨발 산책

    꼭 멀리 떠나야만 쉼표를 만날까요?

    난지캠핑장의 고즈넉한 오후.

    바짓가랑이가 성가시지만 발부리부터 올라오는 촉감이 짜릿합니다. 비릿한 숲향기는 숲이 깊어질수록 흙냄새를 만나 가라앉습니다. 숲냄새, 흙냄새를 따라 오르면 금원의 ‘으뜸 비경’ 옥류천을 만납니다.

    ‘뚜벅이’로 서울을 탐험하는 게 고되지 않았느냐고요? 버스, 지하철 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똑똑하더군요. 하긴, 서울은 잘 짜인 대중교통을 자랑하는 메트로폴리탄 아니던가요.

    삶의 공간과 휴가 공간은 거리가 상당해야 한다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서울 탐험은 즐겁고 흥미로웠어요. 파리와 런던 뒷골목을 여행하는 것처럼, 서울에서 잠잘 곳을 예약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이따금 해보기로 했습니다. 서울시가 4개 국어로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www.visitseoul.net)에 세계적으로 ‘뜨는’ 서울의 관광지를 가득 담았습니다. 외국인처럼 지도 들고 서울을 여행한 후 특급호텔에서 하룻밤 묵는 호사를 누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 참. 7월 27, 28일 내린 폭우로 한강시민공원이 물에 잠겼습니다. 한강 쪽으로 서울 탐험에 나선다면 청소, 정비가 끝났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서울캠핑장

    난지캠핑장


    서울 최대 규모 캠핑장. 잔디 야구장과 물놀이장을 갖췄다.

    홈페이지 | nanjicamping.co.kr

    중랑 캠핑 숲

    가족 단위 오토캠핑장, 청소년문화존, 생태학습존, 숲체험존 등이 있다.

    홈페이지 | parks.seoul.go.kr/jungnang camp ground

    노을캠핑장

    상암동 노을공원에 위치해 한강 하류로 지는 해를 볼 수 있다.

    홈페이지 | worldcuppark.seoul.go.kr

    강동그린웨이 가족캠핑장

    강동구 길동 일자산 자연공원에 위치했다. 삼림욕도 즐길 수 있다.

    홈페이지 | gdfamilycamp.or.kr

    >> 솔로·연인의 ‘이태원 프리덤’

    꼭 멀리 떠나야만 쉼표를 만날까요?
    브리짓 존스가 속옷 차림으로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흡입’하는 것을 보고 동병상련을 느끼는 싱글녀, 주중엔 해지기 전에 들어온다고 혼나고 주말엔 집에 있느냐며 구박당하는 솔로를 구제해줄 곳. ‘찬란한 불빛과 젊음으로 가득 찬’ 이태원으로 홀연히 떠나는 하루 여행은 어떨까.

    서울엔 보석 같은 골목이 많다. 배호의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삼각지, 케이팝(K-pop) 가수 뺨치는 젊은이가 열정을 불사르는 홍대 뒷골목, 금단반점의 꼬치가 일품인 ‘작은 중국’ 가리봉동, 인쇄밥 먹는 사람이 이제껏 살아남은 충무로…. 솔로라도 좋고 커플이라도 좋다. 연인이라도 좋고, 부부라도 좋다. 서울의 낮과 밤은 아름답다.

    ‘서울 탐험’을 돕는 책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이동미가 쓴 ‘매일 너와 이 길을 걷는다면’(생각의 나무)을 가이드북으로 추천한다.

    오늘, 우리가 가볼 곳은 이태원이다. 서울에서 해외를 맛볼 수 있는 곳. 중년 부부가 나들이하기에도 좋다.

    01 ‘이태원 프리덤’ 만끽하기

    주변에 배(梨)밭이 많아 이태원(梨泰院)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사령부, 해방 후에는 미 8군부대가 주둔해 일찍부터 다문화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팔던 ‘양공주’ 거리로 유명세를 탔고, 수입 식료품을 접하기가 어려웠을 시절 ‘이태원에 가면 뭐든 살 수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큰 사이즈 옷을 사고자 이태원 시장을 찾는 내국인, 산업 연수생으로 와서 싼 방값에 숙식을 해결하는 외국인 노동자, 기념품을 사러 온 관광객으로 이태원은 늘 붐빈다. 올해 3월 인기가수 UV가 발표한 복고풍 댄스곡 ‘이태원 프리덤’을 듣고 이태원을 다시 찾는 사람도 늘었다. 최근에는 멕시칸 패스트푸드점이 이태원에 상륙해 주목을 끌었다. 왕복 대중교통비만 있다면 세계 각국을 둘러볼 수 있는 이태원으로 단출하게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02 갤러리 골목

    사람들은 ‘갤러리’라고 하면 인사동이나 삼청동을 떠올린다. 이태원 깊숙한 곳에 갤러리가 숨어 있다. 갤러리 ‘골목’은 이름처럼 골목에서 만나는 갤러리다. 골목은 한국인보다 외국인에게 더 유명하다.

    2007년 현재 위치로 이전한 골목은 인사동, 삼청동 갤러리에 비해 대관료가 저렴해 신진 작가 등용문 구실을 한다. 또한 외국 작가와의 교류전을 통해 다국적 공간으로서의 기틀도 마련해왔다.

    골목은 1관, 2관으로 나뉜다. 1관 옆에 카페가 있다. 심선영 큐레이터는 “차를 마시면서 그림도 보고 파티도 여는 캐주얼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카페 앞으로 ‘작은 골목’이 나 있고 골목을 지나면 2관이 나타난다.

    테이블을 치우고 창문을 열면 카페는 무대가 되고 작은 골목은 객석으로 탈바꿈한다. 새 전시가 열릴 때마다 ‘오프닝 공연’을 연다. 갤러리가 무대가 되는 골목은 색다른 갤러리다.

    1관에서는 ‘虛.虛.실.실.’, 2관에서는 ‘오브제, 생활을 품다’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태원동 34-23. 문의 02-792-2960.

    03 What the book?

    꼭 멀리 떠나야만 쉼표를 만날까요?
    들어서는 순간, 새 책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What the book?’은 영문도서 전문점. 중고서적, 신간, 잡지, 동화책 등 영문도서를 총망라한다. 과거엔 주로 외국인이 이용했지만 한국인 고객이 부쩍 늘었다. 아이에게 선물할 영어동화책을 찾는 한국인 부모도 적지 않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화려한 표지의 최신 잡지가 눈을 즐겁게 한다. ‘키다리 서가’에 기대 있는 사다리를 보면 나만의 큰 서재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로 나와 걷다 보면 ‘What the book?’이라고 적은 초록색 간판이 보인다. 온라인 매장도 운영한다(www.whatthebook.com). 문의 02-797-2342.

    04 이태원 앤티크 거리

    6호선 이태원역 2번출구로 나와 ‘맛집’으로 유명한 게코스 가든을 지나면 가구점이 이어진다. 빈티지 앤티크 가구를 취급하는데 유럽풍 가게, 아시아풍 업소가 섞여 있다. 어느 가게에 들어가든 색다른 소품이 가득하다. 빛바랜 자전거, 어느 외국식당의 메뉴판, 철제 물뿌리개…. 앤티크 가구에 걸맞은 레이스 제품과 도자기를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재스퍼 같은 브랜드 제품을 비롯해 프랑스나 독일제 빈티지 도자기도 세트로 살 수 있다. 백화점에서 취급하지 않는 ‘한정판’ 빈티지도 다량 보유했다. 세트가 아닌 피스로도 구매할 수 있다. 팁(tip) 한 개. 가구점에서 ‘컬렉터급’ 관심을 엿보이면 점포 안쪽의 보관 창고도 둘러볼 수 있다.

    05 이슬람교 서울성원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본 적이 있는지. 이혼에 실연까지 겪은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이탈리아를 거쳐 인도에 당도한다. 참된 자아가 결여된 삶에 회의를 느낀 그는 헛헛함을 이겨내려 인도에서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다른 종교의 영적 공간을 찾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1976년 세운 이슬람교 서울성원 주변은 대표적 다문화 공간. 중동 및 북아프리카 무슬림이 차린 음식점, 슈퍼마켓이 들어서 있다. 중동, 북아프리카로 여행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영적 공간에서 경험하는 ‘갱생’과 ‘힐링’은 덤이다. 기분을 낸답시고 속살이 지나치게 드러나는 옷을 입고 방문하는 것은 실례다. 주차관리소에서 긴 치마를 빌려준다. 6호선 이태원역 3번출구로 나와 직진하다 던킨도너츠 골목으로 꺾어 언덕을 오르면 사원 가는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인다. 한남2동 732-21. 문의 02-798-8611.

    06 패션파이브

    슬슬 피곤이 밀려온다. 다리를 쉬게 할 때다. 배도 출출하다. ‘달콤한’ 간식으로 재충전해야 한다. 멀티음식문화공간 ‘패션파이브’가 우리를 기다린다.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를 거느린 SPC그룹이 운영하는 패션파이브는 1층은 디저트 카페, 2층은 레스토랑으로 이뤄져 있다. 6호선 한강진역 3번출구로 나와 이태원 소방서 쪽에 있다. 한남동 729-24.

    Islamic book center

    이슬람 서울성원 근처에 발길을 사로잡는 곳이 있다. ‘Islamic book center’가 그곳이다. 무니어 아마드(Muneer Ahmad) 씨가 이슬람교를 알리고자 서점을 열었다. 코란을 비롯해 이슬람교를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을 위한 입문서적도 있다. 한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색다른 공간. 히잡, 예배용 카펫, 모자, 향수 등 ‘신기한 기념품’이 될 만한 것도 판매한다. 이태원동 137-46, 문의 02-794-0968.

    꼭 멀리 떠나야만 쉼표를 만날까요?
    브라운 앤티크

    고가구와 영국, 프랑스, 북유럽산 앤티크 도자기를 취급한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둘러봐야 한다. 손님에게 뽐내기 좋은 찻잔을 종류 및 색깔별로 구비해놓았다. 제품마다 가격이 붙어 있어 쇼핑이 편하다. 이태원동 11-27, 문의 02-792-1774.

    갤러리 두루

    ‘갤러리 두루’는 ‘예술 놀이 곳간’을 지향한다. 두루는 ‘through’에서 따온 것으로 작가와 관람객을 잇는 매개가 되겠다는 뜻이다. 1층 카페, 1.5층과 2층 전시관으로 구성한 복합 문화공간. 전시를 감상한 후 카페에서 쉬어가게끔 배려했다. 현재는 ‘2011 New wave artist 기획전 Another Round’가 열린다. 신진 작가를 육성하고자 기획한 이번 전시에 5명의 작가가 선정됐다. 이태원 1동 102-29, 문의 02-798-1900.

    마이타이

    이태원 한복판에서 태국 음식을 즐겨보자. 타이풍으로 꾸며진 실내와 테라스 가운데 자리를 골라 앉을 수 있다. 물이 와인 병에 담겨 나온다. 이태원동 123-20. 6호선 이태원역 2번출구로 나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쌀람 베이커리 Salam Bakery

    중동 전통과자, 터키식 디저트를 취급한다. 페이스트리 반죽에 견과류를 곁들인 바클라바(Backlowat), 브루마(Burma)는 각각 1조각, 3조각에 3500원. 중동에서 들여온 각종 수입과자도 있다. 한남동 732-21, 문의 02-749-4323.

    방갈로

    ‘방갈로’라는 이름처럼 이국적인 라운지바(lounge bar). 동남아시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두 명이 함께 앉는 그네석, 물장구치며 칵테일을 즐기는 야외석, 바닥에 모래가 깔린 3층석…. 휴양지에 온 것 같다. 6호선 이태원역 1번출구에서 해밀톤호텔 뒤편으로 가면 찾을 수 있다. 이태원1동 112-3.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박하정 인턴기자 서울대 정치학과 3학년 김보경 인턴기자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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