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0

2011.06.07

눈 씻고도 찾기 힘든 ‘엔젤투자자’

자금 투자 및 회수 환경 열악해 너도나도 외면…성공 벤처인들이 팔 걷고 나서 지원

  • 문보경 전자신문 부품산업부 기자 okmun@etnews.co.kr

    입력2011-06-07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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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씻고도 찾기 힘든 ‘엔젤투자자’
    “스타트업 기업(Start-Up, 갓 창업한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엔젤투자자를 한국에서 찾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입니다. 설령 투자받았다고 해도 기업공개(IPO) 압박에 시달렸을 겁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기업이 될 때까지 성장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미국은 ‘함께 가는 전략’ 구사

    창업 초기 미국 엔젤투자자에게 투자받아 회사를 키울 수 있었던 반도체 관련 기업 A사 최고경영자(CEO)의 말이다. 그는 미국 벤처 투자자는 기업 로드맵을 공유하고, 그에 따른 투자전략을 짜는 등 ‘함께 가는 전략’을 구사한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한 데다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는 다음 단계의 성장을 위한 추가 투자도 진행한다. 투자전략에 따라 단계별 투자가 이뤄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세계적인 미국 기업의 성장 이면에는 엔젤투자자의 활약이 있었다.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하는 엔젤투자자, IPO 직전에 거금을 투자하는 투자사 등 기업의 성장 단계에 맞게 투자하는 벤처투자가 활성화했다.

    단적인 예가 구글이다. 1998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 창업자인 앤디 베히톨스하임에게 10만 달러를 투자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이어 1999년에는 클라이너퍼킨스와 세쿼이아캐피털 등 두 벤처캐피털이 1250만 달러씩 총 2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들의 투자를 자양분으로 구글은 극심한 자금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10년 만에 세계 최고의 인터넷 기업이 됐다. 구글에게 이들 투자자는 말 그대로 천사였던 셈이다.



    구글, 애플 등 내로라하는 기업이 즐비한 실리콘밸리의 성공 요인으로 크게 3가지를 꼽는다. 명문 스탠퍼드대의 기업 지원 구조, 활발한 인수합병(M·A), 탄탄한 엔젤투자 등이다. 특히 엔젤투자는 실리콘밸리를 구성하는 절대적 요소다. 엔젤투자자란 기관투자자에게 투자받기 힘든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를 말하지만, 미국에는 엔젤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벤처캐피털도 있다. 클라이너퍼킨스와 세쿼이아캐피털 두 회사는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 기업에 돈을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업체다.

    지난해 벤처펀드의 1.1%에 그쳐

    최근에는 슈퍼엔젤펀드를 조성하는 붐도 일었다. 전 구글 임원이었던 아이딘 센쿠트는 기관투자자와 헤지펀드 매니저 피터 티엘 등 부유한 개인투자자에게서 4000만 달러를 모아 벤처투자펀드를 조성했다. 또 다른 전 구글 임원 크리스 사카는 850만 달러의 펀드를, 벤처투자자 론 콘웨이는 5월 2000만 달러의 슈퍼엔젤펀드를 조성했다. 전 페이팔 임원인 데이브 매클루어와 슈퍼엔젤 투자자 마이크 메이플스도 각각 3000만 달러와 7350만 달러의 벤처투자펀드를 만들었다.

    엔젤투자자는 스타트업 기업뿐 아니라, 이미 커질 만큼 커진 기업에도 더 큰 성장을 위한 투자를 이어간다. 몇 달 전에도 트위터는 벤처캐피털 클라이너퍼킨스·바이어스(KPCB) 등에서 2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이에 따라 트위터의 기업 가치는 15개월 사이에 10억 달러에서 37억 달러로 껑충 뛰었다.

    소셜게임 1위 업체인 징가도 최근 벤처캐피털과 투자은행으로부터 3억6000만 달러의 자금을 유치했으며, 구글에서도 자금을 투자받았다. 이미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오른 페이스북도 투자를 받았다. 1월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디지털스카이테크놀로지스는 페이스북에 15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페이스북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넘어 광고, 커머스, 미디어 등 전 방위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투자가 절실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엔젤투자를 구경하기 힘들다. 중소기업청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 1/4분기 벤처투자 규모는 317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678억 원보다 89.4% 늘어났다. 최근 2년간 정부 모태펀드의 출자 확대로 벤처펀드가 대거 결성된 덕이다. 올해도 2010년에 이어 1조5000억 원이 넘는 펀드를 결성할 예정이어서 벤처투자 확대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벤처투자가 느는 추세임에도 엔젤투자는 오히려 자취를 감췄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벤처투자정보센터는 2010년 전체 벤처펀드 출자 금액 가운데 엔젤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1.1%(181억 원)에 그쳤다고 밝혔다. 외국인(4.1%)보다 낮은 수치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00년 등록한 엔젤투자자는 약 2만8000명이었지만, 2009년에는 1243명으로 급감했다. 9년 사이 2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엔젤투자 금액도 2000년에는 5493억 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2009년 346억 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2004년 463억 원까지 감소했던 투자금액은 이후 잠시 상승세를 보였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엔젤투자 건수 역시 2000년 1291건에서 2009년 87건으로 감소했다.

    스타트업 기업이 창업 후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운영 자금 확보다. 은행은 대출심사 과정에서 담보나 높은 신용등급을 요구하기 때문에 스타트업 기업으로선 그 문턱을 넘을 수 없다. 벤처캐피털이 대안일 수 있지만, 스타트업 기업이 창업해 IPO를 하기까지 일반적으로 10년 이상 걸리는 반면, 벤처펀드의 운용 기간은 보통 5∼7년이어서 민간 벤처캐피털은 투자를 기피한다. 이런 점에서 스타트업 기업에 가장 적합한 투자자는 엔젤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언감생심이다. 최근 창업붐이 다시 일지만, 과거 벤처붐과 달리 투자에 적극 나서는 엔젤투자자는 찾기 힘들다.

    엔젤투자가 한국에서 설 자리를 잃은 것은 과거 벤처붐의 영향이 크다. ‘묻지마’ 투자와 그에 따른 실패가 한국에서 엔젤투자를 내몬 큰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에서는 성공한 사람이 엔젤투자자로 나서지만, 한국에서는 개인이 주식투자를 하는 식으로 ‘대박’을 꿈꾸며 엔젤투자자로 나선 경우가 많았다. 충분한 정보 없이 막연한 기대를 안고 투자에 나섰다가 벤처 버블이 꺼지면서 막대한 피해를 봤고, 그 경험이 엔젤투자 위축으로 이어졌다.

    이뿐이 아니다. 아무리 ‘천사’라 해도, 이들의 목적은 투자 자금을 크게 키워 회수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자금 회수’가 쉽지 않다. 창업 후 상장까지 평균 12년이 걸린다는 시간적 한계 때문에 엔젤투자자는 투자를 주저한다. 그러다 보니 상장을 몇 년 앞둔 기업에 자금이 몰리고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투자는 극도로 부진할 수밖에 없다. 엔젤투자를 유인하려면 투자한 자금 회수 기간을 줄여야 한다.

    엔젤투자 환경 조성 시급

    투자자금 회수가 쉽지 않은 것은 M·A가 활발하지 않은 탓이다. 국내 벤처기업은 대부분 M·A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기업 M·A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인식은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에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벤처캐피털은 IPO 외에 투자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 미국만 하더라도 벤처캐피털 자금 회수 비율에서 M·A 비중이 89.2%로, IPO 비중(10.8%)을 크게 앞선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09년 기준 전체 자금 회수 비율에서 M·A 비중이 7.1%로, 15.7%인 IPO보다 크게 적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주식이나 채권의 매각, 상환이었다. 이는 벤처캐피털 투자지분을 전문으로 매수하는 세컨더리펀드나 피투자회사 또는 장외시장을 통해 제3자에게 매각한 경우다. 기대만큼의 수익을 거두지 못한 상태로 펀드 만기가 도래하자 피치 못하게 매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엔젤투자를 활성화하려면 무엇보다 엔젤이 투자하고,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정책적으로 M·A를 활성화해 투자자의 자금 회수 기간을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엔젤투자자 중에는 기관투자자도 있지만, 개인투자자가 대부분이다. 기관투자자가 투자에 나서기 전까지 아이디어 하나에 투자하는 엔젤투자자의 임무가 무척 크다. 미국에는 엔젤투자자를 위한 혜택도 다양하다. 미국 28개 주는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해 최소 10%에서 최고 80%까지 소득공제율을 적용한다. 투자 손실분을 소득과 합산해 소득공제를 해주기도 한다. 유럽에서도 엔젤투자가 벤처캐피털보다 초기 리스크가 높다는 점을 감안해 다양한 방식으로 보상 및 지원책을 시행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엔젤투자자에 대한 혜택이 많지 않다. 과거에는 투자금액 중 30%까지 소득공제를 해줬으나 현재는 10%로 줄었다. 이나마도 거의 무용지물이다. 벤처기업 투자금액으로 한정해 벤처 등록을 못한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할 경우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 그런데 이 제도마저 내년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벤처기업 외에 창업 3년 미만 스타트업 기업에도 이 같은 혜택을 적용하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한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엔젤투자 시장이 위축되자, 성공한 벤처인들이 직접 스타트업 기업을 후원하는 일에 나섰다. NHN 김범수 전 대표는 카카오톡에 이어 포도트리에 1대 주주로 참여했다. 평소 그는 100명의 CEO를 만들고 싶다고 공언했다. 국내 1세대 벤처로 네오위즈와 첫눈 등을 창업한 장병규 대표는 본엔젤스벤처를 설립하고 동영상 검색업체 엔써즈에 투자했다.

    전자결제업체인 이니시스를 창업한 권도균 씨도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을 창업한 이재웅, 이택경 씨와 프라이머라는 회사를 설립해 스타트업 기업을 지원하는 일에 나섰다. 네오플 허민 전 사장도 엔젤투자자로 컴백했다. 지오인터랙티브 김병기 전 대표는 후배 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애플민트홀딩스를 설립하고 스타트업 기업의 투자, 비즈니스 개발, 마케팅 같은 일을 돕는다.

    이들은 단순히 투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멘토링도 한다. 이 같은 문화는 다시 후발 벤처로 이어져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벤처투자 전문가들은 “스타트업 기업을 키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질 수 있도록 엔젤투자자에 대한 더 많은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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