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8

2009.08.11

11살 퀴즈영웅을 만든 위대한 책 읽기

‘책갈피 공부법’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9-08-05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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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살 퀴즈영웅을 만든 위대한 책 읽기

    서정희·신상진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320쪽/ 1만2000원

    학벌사회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한민국 출판시장에서 가장 통하기 쉬운 키워드 중 하나는 ‘공부’다. 제목에 ‘공부’가 들어간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해가 없는 것을 보면 부모들의 자식 공부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공부를 주제로 한 책이 성공하려면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 유명 대학 수석 입학 등의 임상결과, 부모를 설득할 만한 눈에 보이는 이익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성공한 공부 책은 모두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임상결과가 뚜렷한 이야기가 신문에 1단 크기로라도 보도되면 지금도 수십 명의 출판기획자가 달려든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책은 천편일률적인 이야기가 되기 십상이라는 데 있다. 아마도 그 분야 관련 출판 실적이 있는 사람이 일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KBS ‘퀴즈 대한민국’에서 11세로 최연소 퀴즈영웅에 오른 정한이의 ‘책갈피 공부법’을 보고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그렇고 그런 공부법 책이 또 한 권 나왔구나 하는 일종의 기시감에 휘둘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한이라는 아이가 세상의 모든 이치를 책으로 해결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서둘러 책을 찾아 읽었다. 물론 이 책은 ‘퀴즈영웅’이라는 임상결과가 없었으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된 목표는 아니었다. 단지 정한이 엄마는 아이가 밥 먹고, 세수하고, 화장실 가는 것처럼 책 읽기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되도록 목표를 세웠을 뿐이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문제집을 풀 시간이 없을까 봐 독후감 숙제를 대신해주기도 한다. 나는 그게 아이를 망치는 일이라 확신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성적에만 집착하는 부모들은 이런 평범한 진실마저 망각해버리기 일쑤다.

    정한이 엄마는 정한이가 갓난아이일 때 거금을 투자해 ‘초점 책’을 장난감처럼 사주었고, 대답도 못하는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었으며, 생후 7개월이 되어서는 정기적으로 어린이 서점에 함께 가기 시작했다. 시골(고령)에 살다 보니 볼만한 책을 구하려면 시외버스를 한 시간 이상 타야 했다. 네 살 무렵에는 어린이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정한이가 책을 맘껏 보게 하기 위해서 대도시인 대구로 나가야 했다.

    읽고 그리며 놀던 정한이의 ‘책놀이’는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과격해졌다. 단순한 독후 수준을 넘어, 책을 ‘장난감’ 다루듯 갖고 논다. 책으로 도미노놀이를 하고, 성을 쌓아 전쟁놀이도 한다. 책으로 생각해낼 수 있는 어지간한 것은 다 했다. 학교 도서관은 책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상식을 확인해준 셈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정한이는 지금까지 3000권 가까운 책을 먹어치웠다. 이 책 대부분은 교사나 부모가 추천한 책이 아니라 정한이 스스로 흥미를 느껴 고른 것이다. 어떤 책은 너무 많이 읽어 해진 바람에 다시 사줘야 했다. 재미를 느끼며 책을 읽다 보니 세계 국가와 수도를 줄줄 외고, 비밀노트를 작성하고, 책을 찾아 뒤지고, 새롭게 알게 된 것에 대해 열심히 수다를 떨게 되었다.

    여기서 수다가 중요하다. 물론 수다는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정한이 엄마는 아이가 어릴 때에는 책을 사서 주기 전에 반드시 먼저 읽었다. 처음에 정한이는 엄마의 ‘무릎학교’에서 책을 보았지만 지금은 정한이가 읽은 책을 엄마가 따라 읽는다. 엄마에게도 일이 생겨 바빠졌기 때문이다. 정한이네 온 집안이 아이들의 서재가 된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은 어디서나 가장 편한 자세로 마음껏 책을 읽는다. 그러니 책을 매개로 한 토론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것은 당연할 터.

    정한이 엄마는 아이의 질문에 답을 주지 않고 스스로 찾아보게 했다. 책으로는 한계가 많았기에 자연스럽게 인터넷, 텔레비전, 신문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도록 배려했다. 덕분에 단조롭게 책만 읽을 때보다 훨씬 폭넓고 생생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정한이는 책을 읽다 궁금증이 생기면 다른 책을 수시로 참조하며 읽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권을 동시에 읽을 수밖에 없다. 이게 책갈피 독서공부법인데 이 말을 짧게 줄여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오늘날 인간은 기억과 재생의 능력에서 결코 컴퓨터를 따라잡을 수 없다. 웬만한 지식은 휴대전화 검색을 통해 즉각 확인이 가능하다.

    이제는 무수히 접하는 과잉 정보 중에서 불필요한 지식은 버리고 필요한 것만을 연결해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정한이는 암기도 잘해서 퀴즈왕도 되고 학교성적도 최상위이긴 하지만, 정보를 연결해 지식을 만드는 능력 면에서는 동세대 선두를 달릴 것이다. 미래형 인간에 가장 접근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담고 있는 임상실험은 정말로 소중하다. 대한민국 엄마들이여! 진정 자식을 위한다면 이 책부터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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