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8

2009.08.11

아파트 장터에서 명품 ‘스탈’ 쇼핑하기

  • 김민경 holden@donga.com

    입력2009-08-05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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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장터에서 명품 ‘스탈’ 쇼핑하기

    7월28일 경찰이 압수한 짝퉁 해외브랜드 셔츠와 불법모조품 방지 캠페인에 전시됐던 짝퉁 가방입니다.

    퇴근길, 쇼핑이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백화점 명품관에서 무료로 서비스하는 샴페인 한 잔을 받아 마시고, 90% 세일하는 청바지를 하나 건지기도 하죠.

    매장 문은 이미 닫힌 시간, 백화점 주차장에서 빵을 엄청나게 싸게 살 수도 있어요. 그러나 백화점과 시장에서 아무리 많이 샀더라도, 하루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쇼핑 장소는 언제나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와 장사를 하는 이동차량 노점입니다. 흔히 아파트 ‘장터’라고 부르죠.

    단지 내 ‘장터’에서 영업하려면 상인은 아파트 부녀회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아파트에 따라 부녀회에서 돈을 받기도 하죠. 부녀회에선 업종이 겹치지 않도록 선정합니다.

    장사하는 분은 그날 하루 독점 영업을 보장받고요. 부녀회의 깐깐한 심사를 받기 때문인지, 옮겨 다니는 노점들이지만 가격 대비 품질도 만족스럽습니다.

    아파트 장터에서는 요일에 따라 물건들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단지 입구에 들어서면서 ‘오늘은 뭘 팔고 있을까?’ ‘지난주에 온 명품 꿀호떡이 맛있던데 7시30분이면 ‘솔드아웃’된다니, 내가 너무 늦었겠지?’ 등등의 생각을 하면서 냠냠 입맛을 다십니다. 어쩌다 두부 만드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하죠. 가끔 이동식 도서관도 오고 구두가방 수리점도 들어오지만, 역시 주린 배를 움켜쥐고 귀가하는 길에는 ‘오늘의 음식’이 가장 반가울 수밖에요.



    그런데 이번 주 아파트 단지 내에 ‘명품’ 노점이 들어왔더군요. 설마. 꿀호떡도, 족발도 아니었지만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어딘가에 가방 수리를 위한 재봉틀이 있지 않나 봤지만, 그것은 정녕 ‘명품’ 가방 편집숍이었습니다. 쇼윈도로 변신한 트럭의 짐칸에 마네킹 대신 주인아저씨가 올라앉아 있었습니다. 요즘 인기 절정인 루이비통의 네버풀부터 구찌와 메탈 컬러의 샤넬 지갑까지 반가운 얼굴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오, 얼마 전에 A패션지 기자가 외국서 샀다고 자랑한 그 지갑 아냐?’

    어렸을 때 잃어버린 혈육을 상봉한 것처럼 가방의 시접이 뜯어지도록 들여다보다 아아, 역시 네가 아니구나, 넌 가짜구나라고 소리치려 했을 때 저를 뚫어지게 보던 아저씨가 먼저 말했습니다.

    “국산도 있고, 중국산도 있어요. 국산이 가격은 딱 두 배인데, 차이가 많이 나죠. 여기 이 잡지 보고 마음에 드는 거 있음 찍어봐요. 다 있으니까.”

    한때 ‘짝퉁’으로 악명을 날린 서울 이태원 길거리에서 너무나 많이 들었던 말이었습니다. 적어도 이태원 큰길가에서 공공연히 팔리는 장면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짝퉁이 트럭에 실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온 거죠. 이상한 건 제가 꽤 오래 가방들을 들여다보는 동안 단 한 명의 손님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머쓱해 일단 집에 들어가기로 했죠. 마침 엘리베이터 안에서 몇 번 인사를 건넨 미시족 이웃을 만났어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저기… 입구에 있는 트럭에서 가짜 명품들까지 팔더라고요.”

    “아아, 그런 데서 누가 사겠어요? 그런 물건 사는 거 누가 보면 어쩌려고요? 다들 얼굴 아는데.”

    이런! 이제 사람들은 가짜를 사는 것이 잘못된 일이고, 부끄러운 행동임을 인식하나 봅니다. 이태원 거리에서 짝퉁이 사라진 만큼의 변화가 우리 머릿속에서도 일어난 거죠. 그러나 동시에 요즘 잘나가는 커리어우먼들은 미국 뉴욕에 가서 짝퉁 쇼핑을 한다는 사실도 떠올랐습니다.

    “짝퉁이라도 뉴욕으로 들어오는 건 ‘진짜’거든. 그런데 절대 이거 비밀인 거 알지? 나 매장돼.”

    ‘비밀’이 최고의 미덕인 짝퉁 거래가 예전에 이태원 상가들을 먹여살린 것처럼, 가짜 명품 매출이 이번에 단속된 ‘파크’ 말고도 대형 인터넷 쇼핑몰의 가장 큰 버팀목이라는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알죠. ‘스탈’이니 ‘st’ 붙인 건 그나마 양심적이고요.

    그러니 짝퉁 가방을 구경하던 저를 모두가 아파트 창문에 숨어서 지켜봤을지도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 아파트 현관에서 마주친 주민이 재활용품을 그러모으는 할리우드 액션을 취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겠죠. 그런데 다음 주에도 짝퉁 트럭이 올까요? 이젠 명품 꿀호떡이 그리운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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