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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장기기증 ‘편견의 산’ 정복하다

장기기증자·이식자 모인 생명나눔 원정대 17박18일 히말라야 ‘아일랜드 피크’ 정복기

  • 글=이한상 마콜(홍보대행회사) 애널리스트/ 사진=최용범 한국노바티스 상무

장기기증 ‘편견의 산’ 정복하다

장기기증 ‘편견의 산’ 정복하다
‘얼음바다 속의 섬’ 같다고 해서 명명된 해발 6189m의 고산 히말라야 ‘아일랜드 피크’. 간·신장 이식자와 기증자 10명으로 구성된 ‘히말라야 생명나눔 원정대(대장 박영석·이하 원정대)’가 지난 12월22일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 서울대병원 간이식팀과 제약회사 한국노바티스 후원으로 지난해 9월 원정대가 출범한 지 3개월 만이다.

원정대가 히말라야 정상 정복에 도전한 것은 장기를 이식하거나 기증한 사람도 일반인처럼, 아니 일반인보다 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기 위한 것. 지원자 가운데 의료검진을 거쳐 선발된 이들은 매주 암벽등반 연습 등 피나는 훈련을 받고 장정에 나선 끝에 드디어 결실을 거뒀다.

전문 산악인도 오르기 힘든 히말라야를 향한 원정대의 도전기는 장기 이식 및 기증에 대해 오해와 편견을 갖고 있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12월11일부터 29일까지 18일간의 히말라야 원정 스토리를 소개한다. 원정대는 전문 산악인 박영석 씨가 이끌었고, 서울대병원 간이식팀으로 구성된 의료지원팀과 후원사 한국노바티스, 홍보대행사 마콜 임직원이 함께했다.

12월11일(목)

오전 7시, 인천공항에 모인 원정대원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네팔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대원들은 반드시 정상에 오르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의지를 불태웠다. 네팔까지는 비행기로 7시간. 비행기가 2시간 정도 연착해 예정보다 늦은 시간에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시내 숙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원정대원들은 낯선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2일(금)

히말라야 초입에 자리한 마을 루크라로 이동하는 경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경비행기는 기상 조건이 조금만 좋지 않아도 이륙하지 않는다.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박영석 대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2시간 남짓한 기다림 끝에 드디어 경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경비행기가 도착한 해발 2800m의 루크라 공항에서 10개 남짓한 계단을 올랐을 뿐인데 산소 부족으로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비로소 신들의 영역 히말라야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원정대원들은 다시 3시간 정도 걸어 루크라보다 고도가 약간 낮은 팍딩(해발 2600m)에 도착해 하루를 보냈다.

장기기증 ‘편견의 산’ 정복하다

남체에서 탕보체까지 길게 이어지는 메마른 산길(왼쪽). 대원들이 딩보체 랏지(산장)에서 채혈 및 의료진단을 받고 있다.

13일(토)

오전 6시, 서울대병원의 ‘고지대 등반에 따른 고소생리 변화 연구’를 위해 전 대원이 채혈을 하고 산소포화도와 혈압 등을 체크했다. 이후 아침식사를 하고 본격적인 등반길에 올랐다. 베이스캠프까지는 하루 6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다.

출발 직전 54세로 원정대 최고령자인 양지모 대원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출국 전부터 고소증세가 빨리 오지 않을까 걱정하던 그였다. 다행히 등정에 큰 무리는 없다는 박 대장과 서울대병원 서경석 교수의 진단을 받고서야 함께 출발할 수 있었다.

점심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6시간을 걸어 도착한 곳은 해발 3400m에 자리한 남체. 박 대장은 “이곳은 히말라야나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전 반드시 거쳐가는 곳으로, 필요한 물품과 식량 등을 구입하는 거점과도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14일(일)

“남체를 지나면 확실히 고산에 접어든 느낌이 들 것”이라고 선두 인솔을 맡은 신동민 대원이 말했다. 이전보다 길이 많이 험해졌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모래 바닥에서 먼지가 솟구쳤다. 오늘의 목적지는 해발 3860m의 탕보체. 오르막길이 끝없이 이어지자 몇몇 대원이 뒤로 처졌다.

권혁준 대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그가 이틀 연속 선두그룹을 이끈 것이 다소 무리였나 보다. 고소증세를 걱정하던 양 대원이 오히려 선두그룹으로 나섰다. 고소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모양이다. 오후 3시를 조금 넘겨 탕보체에 도착했다. 이곳부터는 ‘랏지(산장)’에서 묵는다.

15일(월)

새벽부터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바람 소리와 고소증세 때문에 일부 대원은 잠을 설친 눈치였다. 날씨는 더욱 추워졌다. 오늘 목표지점은 해발 4410m의 딩보체. “4000m급에서의 고소증세는 3000m급에서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박 대장의 말에 원정대원들은 잔뜩 긴장했다.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통을 호소하는 대원들이 생겨났다. 권 대원이 두통을 호소했다. 그리고 잠시 뒤 갑자기 정흥영 대원이 고관절에 통증을 호소하면서 주저앉았다. 국내 훈련에서 두각을 보이던 그였지만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정 대원은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다행히 “통증을 제외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서 교수의 진단에 따라 등정을 이어갔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서울대병원 응급구조사 최명재 대원이 그의 곁을 지켰다.

16일(화)

2차 채혈 및 의료진단 때문에 아침부터 바빴다. 해발 4000m를 넘어서자 대원 대부분이 고소증세를 호소했다. 권 대원이 특히 심했다. 권 대원은 다른 대원들에 비해 산소 포화도가 낮게 나타났다. 혈색도 좋지 않았다. 그는 소화불량으로 어제 저녁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박 대장은 대원들이 고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딩보체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결정했다. 박 대장은 대원들에게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주변 지역을 돌아다니라고 지시했다. 대원들이 무기력증에 빠지지 않도록 한 조치였다.

17일(수)

대원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고소증세로 힘들어하던 권 대원도 컨디션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전 대원 모두 4730m의 추쿵으로 향했다. 추쿵은 베이스캠프에 입성하기 전 마지막 랏지가 있는 마을이다. 마을은 랏지가 2~3개밖에 없을 정도로 작았다. 대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18일(목)

드디어 해발 5200m의 베이스캠프로 들어가는 날이다. 추쿵에서 베이스캠프까지는 약 4시간이 걸리는 짧은 거리다. 하지만 “길이 거의 없기 때문에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게 박 대장의 설명이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몇몇 대원이 다시 고소증세를 보였다. 김상돈 대원이 소화불량과 설사를, 오의숙 대원이 두통을 호소했다. 결국 두 대원은 서울대 김웅한 교수(흉부외과)의 보호관찰 아래 추쿵에 남기로 했다. 오 대원의 남편 김준규 대원은 아내가 걱정되는 눈치였다. 하지만 박 대장의 명령에 따라 다른 대원들과 함께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바람이 심해 휴식시간도 없이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대원들은 난생처음 보는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변이 모두 돌이었다. 원래는 눈으로 덮여 있었으나 지구온난화로 모두 녹아내렸다고 한다. 박 대장도 10년 만에 이곳에 와본다며 감격스러워했다.베이스캠프에는 원정대를 위한 텐트가 준비돼 있었다. 앞서 올라간 진재창 부대장, 이형모 대원 등 전문 산악인들이 정상 루트를 개척하면서 원정대를 위해 텐트를 쳐놓았던 것이다. 박 대장은 “이제부터는 텐트에서 생활해야 하니 텐트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대원들은 캠프 주변을 돌아보면서 해발 5000m의 고도에 적응했다.

19일(금)

오전 7시, 대원들은 3차 채혈과 의료진단을 받았다. 영하 15℃까지 급강하한 날씨와 바람, 그리고 호흡 곤란 등의 고소증세로 잠을 설친 대원들이 많았다. 한 차례 고소증세를 겪은 권 대원의 상태가 특히 좋지 않았다. 다른 대원들은 혈중 산소 포화도가 70~80%인 반면 권 대원은 40%에 불과했다.

점심 무렵, 추쿵에 잔류해 있던 김상돈 오의숙 대원이 김 교수와 함께 베이스캠프에 합류했다. 김준규 대원이 아내 오 대원을 환한 미소로 맞이하며 두 팔로 껴안았다. 다행히 원정대원 10명 모두 베이스캠프에 입성해 안전한 등반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권 대원의 상태가 악화됐다. 결국 박 대장의 명령에 따라 권 대원은 셰르파와 함께 추쿵으로 내려갔다.

20일(토)

아침부터 고소증세를 호소하는 대원들이 속출했다. 어제 합류한 김상돈 대원은 설사로 밤새 잠을 자지 못했고, 오 대원도 다시 두통을 호소했다. 그동안 잘 적응하던 지정혁 대원도 고소증세로 인한 두통에 괴로워했다. 결국 이들 3명도 하산 명령을 받았다. 하산 중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서울대병원 김태훈 전문의가 동행했다. 지 대원에게 신장을 기증한 어머니 고광례 대원, 그리고 김준규 대원은 안타까움에 하산하는 이들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남은 대원들은 곧바로 현지 암벽등반 훈련에 돌입했다. 내일 5600m의 하이캠프 도전을 위해 주변 70도 경사의 암벽에서 주마와 하강교육을 받았다. 평지를 걸어도 숨이 차는 환경에서 이중화를 신고 로프에 의지해 암벽을 기어오르는 대원들은 정상 정복을 향한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21일(일)

박 대장이 정상 공격조를 발표했다. 원정대원 가운데 베이스캠프에 남은 대원은 6명. 그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양 대원과 매형 처남 사이인 민경배 김광식 대원 등 3명이 선발됐다. 의료진 중에는 서울대병원 서 교수와 김 교수, 여기에 한국노바티스의 최용범 상무가 포함됐다.

오후 1시 베이스캠프를 출발한 정상 공격조는 오후 3시쯤 하이캠프에 도착했다. 정상 공격은 내일 새벽 4시. 이들은 하이캠프에서 죽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거센 바람에 맞서면서 때를 기다렸다.

장기기증 ‘편견의 산’ 정복하다

지구온난화로 베이스캠프 일대가 온통 돌밭으로 변해 있다(좌). 정상을 향해 설벽 구간을 오르는 정상 공격조.(중)히말라야 중턱 딩보체에서 생일을 맞은 김광식 대원이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있다(우)

22일(월)

새벽 2시에 기상한 정상 공격조는 감자 수프로 허기를 달랬다. 그리고 새벽 4시 드디어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대원들은 헤드랜턴 빛과 로프에 몸을 의지한 채 70도 급경사의 너덜지대를 오르기 시작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턱까지 차오르는 숨에 심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호흡 조절이 쉽지 않았다. 양 대원이 중도에 포기하려 하자, 박 대장은 “내려가는 게 더 힘들다. 페이스 조절을 해가면서 조금만 더 힘을 내보라”며 격려했다.

너덜지대를 지나자 200m의 설벽 구간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대원들을 괴롭힌 것은 거센 바람이었다. 로프에 몸을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더욱이 그 바람을 타고 눈과 얼음 알갱이들이 대원들의 얼굴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대원들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설벽 구간에서의 사투가 끝나자 라이프 릿지가 대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생명줄 하나에 몸을 맡긴 채 양쪽 발끝으로 각기 절벽을 디디고 두려움과 싸워가며 정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드디어 9시20분 정상 공격조는 정상 도착에 성공했다. 그 소식은 곧바로 무전기를 타고 베이스캠프로 전달됐다.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던 베이스캠프 잔류조도 환호성을 질렀다. 정상에 선 그들의 얼굴에는 정복자의 환희와 함께 고된 여정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23일(화)

정상 정복의 기쁨을 잠시 누리고 대원들은 곧바로 베이스캠프 철수를 준비했다. 각자 사용한 텐트 내 물품을 정리하고, 먼저 내려간 대원들의 카고백도 점검해야 했다. 저녁식사 시간, 공격조는 잔류조에게 정상 정복의 무용담을 들려줬다. 베이스캠프에서의 마지막 밤, 영하 25℃까지 기온이 떨어졌지만 대원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24일(수)

박 대장은 “내려가는 길도 올라오는 길만큼 힘들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걸쳐 올라온 길을 사흘 만에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산 첫날 딩보체까지 내려갔다. 고관절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강한 정신력으로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간 정 대원도 상태가 많이 회복돼 하산에 큰 문제가 없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식사 후 대원들이 모여 있던 식당으로 케이크 하나가 들어왔다. 매형 민경배 대원에게 간을 기증한 처남 김광식 대원의 생일이었다. 김 대원은 “히말라야에서 생일 축하 케이크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며 촛불을 껐다.

25~29일(목~월)

올라왔던 길을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눈에 비치는 풍경이 낯익었다. 하지만 내려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대원 일부가 체력 문제로 많이 뒤처졌다. 오후 4시경 전 대원이 남체에 도착했다. 다음 날 루크라로 향하는 길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루크라에 도착할 무렵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으로 가득한 히말라야의 풍경은 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하루를 묵은 뒤 대원들은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는 고산증세로 먼저 하산한 오 대원과 지 대원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하루를 쉬고 29일 새벽 1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큰 사고 없이 무사히 고국에 도착한 대원들은 가족들과 반가운 인사를 하고, 동료 대원들과 아쉬운 이별을 하느라 한 시간 넘도록 공항을 떠나지 못했다. 그들이었기에 가능했던 18일간의 히말라야 원정등반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주간동아 2009.01.27 671호 (p52~55)

글=이한상 마콜(홍보대행회사) 애널리스트/ 사진=최용범 한국노바티스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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