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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漢字, 개고기, 성매매

  • 이형삼 hans@donga.com

漢字, 개고기, 성매매

역대 총리들이 청와대에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건의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한글전용 대 국한혼용의 묵은 갈등이 재연되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글을 만지는 게 직업인 제 개인적 견해로는 총리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한글이 인류 최고의 문자라고 자부하지만, 우리말 어휘의 특성상 한자와 어우러지면 표현력과 정확성이 극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웃 아시아 국가들과의 소통 편의는 덤이고요. 놓치기 아까운 실리입니다. 문제는 명분인데, 우리 언어생활에 한자를 종속적으로 활용한다고 해서 한글의 순수성과 문화민족의 자긍심이 훼손되리라고 보진 않습니다.

명분과 실리 논쟁이 팽팽하게 맞서면 대개 진전은 없고 정체 내지 퇴행만 계속됩니다. 한글전용파와 국한혼용파가 핏대를 올리고 있는 사이에 한자 사교육시장이 어부지리로 배를 불립니다. TV 오락 프로그램에선 남자 연예인을 소개하며 버젓이 ‘방년 25세’라는 자막을 넣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를 이끈 장본인’‘결실을 맺었다’ 같은 표현이 그대로 활자화됩니다.

뜬금없는 비유 같지만 개고기와 성매매 논쟁도 같은 부류라고 봅니다. 대로변 개고기집들을 골목으로 몰아넣어도, ‘보신탕’ 간판을 내리게 해도, 온갖 퍼포먼스로 식용 반대 캠페인을 벌여도 먹을 사람들은 다 찾아가서 먹습니다. 그들 중 일부가 약간의 죄책감을 갖는 것 정도가 반대론자들이 얻어낸 명분일 겁니다. 대신 많은 국민이, ‘축산물’로 인정받지 못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도축, 유통, 보관, 조리됐는지 모를 위생 사각지대 정체불명의 개고기를 최고급 횡성 한우보다 비싼 값에 사 먹어야 합니다. 실리를 잃은 겁니다. 잔혹한 방식의 도살을 제도적으로 막을 길이 없으니 애견인들도 실리를 챙기지 못합니다.

성매매특별법과 융단폭격식 집창촌 단속은 많은 이들의 속을 후련하게 했습니다. 덕분에 우리나라가 인권선진국 반열에 올랐는지도 모릅니다. 훌륭한 명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실리는? 지금껏 성매매 총량이 줄었다는 통계는 없습니다. 오히려 온갖 음란업소들이 주택가까지 파고드는 ‘풍선효과’를 낳았습니다. 오피스텔은 더 이상 사무전용 공간이 아닙니다. 룸살롱 등에서 이뤄지는 고급형 성매매는 불황을 모릅니다. 잔당(殘黨)들에게 최소한의 퇴로를 열어주지 않으면 지긋지긋한 게릴라전이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공권력이 ‘성매매’를 단속할 수는 있어도 ‘대등한 성인 간의 자발적 원조교제’에 대처할 방법은 없습니다.

漢字, 개고기, 성매매
현실을 직시한 절충과 타협, 그래서 한 걸음 더 진전. 우리에겐 아직 익숙한 문화가 아니지만, 명분파가 위선의 요소를 걷어내고 실리파가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면 그리 요원한 길은 아닐 듯합니다.



설 명절이 다가옵니다. 반가운 가족 재회 이벤트가 기다립니다. 명분과 실리의 ‘퓨전’은 가족관계에서도 절실해 보입니다. 대한민국 사위 여러분, 아직도 본가와 처가를 선후(先後), 주종(主從), 정부(正副)의 관계로 묶어두려는 고리타분한 명분 때문에 실리를 잃고 있진 않습니까?



주간동아 2009.01.27 671호 (p10~10)

이형삼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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