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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 옵션’

불황기 직장인 생존 키워드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세컨드 옵션’

‘세컨드 옵션’

당신에게도 비장의 카드가 있는가. 필요할 때 조커처럼 쓸 수 있는 ‘세컨드 옵션’을 가진 직장인들이라면 자타공인 ‘에이스’가 될 수 있을 터.

구조조정, 감원, 폐업, 도산…. 2008년 가을과 겨울을 규정하는 우울한 단어들이 차가운 공기를 가로지르고 있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이 최고의 직장인 처세술로 꼽히는 가운데, ‘누구나 복지부동할 수도 없는 것이 문제’라는 깊은 한숨 역시 엇갈리는 때다.

자신의 직종이나 업무 역할이 불황기의 충격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하거나 경기가 나아지더라도 미래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고 느낄 때, 주요 업무 분야인 ‘주 전공’ 이외에 ‘제2 전공’을 추구함으로써 또 다른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홍보담당자가 마케팅으로 업무를 확장하고 인사담당자가 재무팀에서도 경력을 쌓는 것처럼 복수의 전문 분야를 추구함으로써 ‘세컨드 옵션’을 손에 쥐는 것이 사내 입지를 굳히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직장인에게는 ‘비장의 카드’가 될 수 있는 세컨드 옵션. 불황시대 세컨드 옵션은 선택이 아닌 필수일까.

⊙ ‘세컨드 옵션’ 시대를 준비하라

세컨드 옵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다양하다. 본인의 업무에 한계를 느껴서, 또는 다른 업무의 발전 가능성에 주목해 시야를 넓힌 경우가 많다.



영양사 이정미(가명·31) 씨는 최근 중국어와 위생사 자격증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함께 학원에 다니는 사람들과 스터디 그룹도 짰다. 이씨가 ‘고3’이 된 심정으로 향학열을 불태우게 된 것도 현재 하는 일과 연관 있으면서 발전 가능성이 큰 영역을 발견했기 때문. “주로 위탁급식 업체에서 일해왔는데 특화된 직업 타이틀 때문에 다른 업무를 맡을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승진 기회를 잡기도 어려웠고요.”

식품유통업체에서 품질관리 및 위생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목표인 그는 일반 사무직에 쉽게 적응하기 위해 전산회계 자격증에도 도전했다. 새벽 별 보고 컴퓨터 학원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대학 부설 푸드스타일리스트 주말 과정에도 등록했다. 일견 도전 분야가 지나치게 다양해 보이지만 그는 “이 모든 분야가 각기 다 쓸모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근 대형 유통업체들이 중국 진출도 많이 하고, 중국 업체와 거래도 하니까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위생사나 전산회계 공부는 제가 희망하는 보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요. 또 푸드스타일리스트 과정은, 매장에서의 식품 진열이 중요해지는 때이니만큼 어떻게 하면 먹음직스럽게, 또 소비자의 손길이 잘 미치도록 진열할 수 있을까를 배우고 싶어 등록했습니다.”

이씨는 “지금 하는 공부들은 영양사 일에도 도움이 되는 만큼 앞으로 어떤 일을 맡게 되더라도 자신감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유진(가명·29) 씨 역시 입사 후 처음 맡게 된 업무 이외의 분야에 뒤늦게 눈떠 직무를 전환하려고 노력해온 사례다. 인사팀에 배치돼 3년간 일한 그는 법무 관련 업무가 자신의 적성에 더 맞을 뿐 아니라 발전 가능성도 크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변호사이거나 법대 출신이 아니면 법무팀에 배치될 수 없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됐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로스쿨. 로스쿨 진학을 위해 약 1년간 회사생활과 학원 공부를 병행했고 다행히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응원해줬다. 그는 얼마 전 무사히 시험을 치르고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다.

유명 호텔에서 임원 비서로 6년간 일한 박윤서(가명·33) 씨도 다른 업무에 도전해보고 싶어 자발적으로 ‘주경야독’을 택했다. “비서 업무의 성장 가능성에 한계가 있어 방향을 틀었습니다. 원래는 외국계 기업으로 옮기고 싶어 경영학 석사에 도전하고, 외국어 공부도 시작했다가 사내에서 업무를 바꾸게 됐죠.”

이직이 목적이었기에 비밀로 했던 공부지만 그가 석사학위를 취득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후 경영지원팀에 배치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사내에서 비서로도, 경영지원팀원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만능’ 이미지를 굳힐 수 있었다.

⊙ 세컨드 옵션이 필요한 이유

구조조정 등 흉흉한 소식이 난무하는 이때, 세컨드 옵션을 갖추는 것이 ‘자리 보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잡코리아 컨설팅사업본부 황선길 이사는 “세컨드 옵션을 가진 직장인들은 사내에서 활용도가 높아지는 만큼 감원 바람에서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취업포털 커리어의 이인희 팀장도 비슷한 의견. 그는 “기업 구조조정 방식을 분석해보면 보통 부서 간 통폐합을 통해 인력을 줄여나가는데, 이러한 때 자신의 주력 업무 이외의 분야에도 전문성이 있다면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현재 많은 직장인이 세컨드 옵션을 갖추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이 20, 30대 직장인 14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1%가 최근의 경제적 상황에 불안감을 느끼며 자신의 생존지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는 ‘자격증 등 관련 교육을 받는다’(37.8%), ‘성과 관리에 신경 쓴다’(34.9%), ‘외국어 공부를 한다’(25.8%) 등을 꼽았다. (복수 응답) 현재의 위기를 나름대로 기회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인 셈이다.

한편 삼성전자에서 18년간 인사와 교육을 담당한 한국인재전략연구원 신원동 원장(성균관대 경영학부 겸임교수)은 국내 여러 기업에서 팀제가 확대되고부터 세컨드 옵션을 갖춘 멀티플레이어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프로젝트성 기획으로 팀을 꾸리는 예가 많아지면서 한 팀에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구성할 때, 이러한 멀티플레이어들이 여러 사람 몫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지고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위기 요소들이 늘어나면서 회사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조차 다양한 분야에서의 자기 계발에 매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컨드 옵션’

구조조정 등 흉흉한 소식들로 한층 우울해진 오피스가(왼쪽). 회사에 여러모로 ‘기여’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경쟁력을 키우는 직장인이 늘어나고 있다.

⊙ 아무나, 언제나 준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세컨드 옵션을 준비할 때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세컨드 옵션에 대한 회사와 개인의 이익이 상충할 수 있기 때문. 신원동 원장은 “특히 자신의 업무와 전혀 다른 것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면 너무 적극적으로 이직을 준비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세컨드 옵션을 준비하면서 이직을 꿈꾸는 경우에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김연진 유앤파트너스 대표는 “특히 요즘 이직 시장에서는 평판 체크(reference check)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자기 계발로 인해 동료들에게 피해를 준다거나 자기 ‘밥그릇’만 챙긴다는 인상을 남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임민욱 사람인 팀장은 “세컨드 옵션은 그야말로 ‘옵션’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래 업무에 충실할 때 옵션도 빛난다는 것. 그는 또 아무리 세컨드 옵션을 잘 갖추고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므로 평상시 윗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화 중 자연스럽게 드러낼 기회를 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불황기가 돼서야 세컨드 옵션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이숙영 자기계발클리닉 대표는 “구조조정에 닥쳐 뭔가를 준비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너무 늦은 감이 있고, 중요한 때 자기 일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임정우 피플스카우트 대표의 ‘불황기 세컨드 옵션론(論)’에도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그는 불황기에는 원만한 사내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세컨드 옵션이라고 강조한다.

“모두가 힘든 때, 나 혼자 살아남겠다고 또 다른 재능을 내세우는 것이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요. 사내에서 관련 업무를 하는 동료나 상사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는 또 기업의 신규 인력 채용이 급격히 둔화되는 때, 그럼에도 필요에 의해 경력사원을 뽑는 회사들이라면 특정 분야에 오랜 경력을 가진 전문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다는 사실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간동아 2008.12.09 664호 (p36~39)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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