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4

2008.12.09

프랑스의 상징 ‘마리안’ 라벨 속 천의 얼굴

  • 조정용 ㈜비노킴즈 대표·고려대 강사

    입력2008-12-01 16: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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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프랑스다운 와인은 본 로마네다. 삼색기에 담긴 숭고한 이념이 한잔의 와인 속에서 분명하게 소리친다.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가상의 인물 ‘마리안’은 여성이다. 프랑스 공화국 자체를 여성화한 것이다. 어머니의 풍요로운 사랑을 공화국의 기초로 삼았기 때문이다.

    마리안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으로 선발되면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 된다. 그간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 가수 미레유 마티유,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 슈퍼모델 레티시아 카스타 등이 선정됐다. 이들의 활약은 곧 프랑스 문화의 영향력을 상징한다.

    프랑스의 상징 ‘마리안’ 라벨 속 천의 얼굴

    프랑스의 상징인 마리안의 섬세한 느낌을 맛으로 표현한 도벤 AF 그로.

    프랑스의 상징인 마리안을 소재로 차용한 와인이 화제다. 프랑스 내륙에 자리잡은 부르고뉴 지방에 가족이 대대로 양조장을 운영하는 도멘 에이 에프 그로(AF Gros)가 있다. 황금의 언덕이라 일컬어지는, 동쪽을 향한 언덕배기의 기다란 지역 코트도르에서 포도를 재배한다.

    중세의 암흑기에 신앙의 심지를 잃지 않으려고 산간벽지에 수도원을 짓고, 고행을 마다하지 않으며 하늘의 가르침을 사모한 일단의 수도사들은 포도원을 가꾸며 차별화된 생활에 힘썼다. 레드 와인을 만들기 위해 오직 피노 누아만을 키웠으며, 어떤 땅에 심어야 포도가 더 잘 여무는지를 연구하고 기록했다.

    코트도르 지역 북쪽에 자리잡은 코트드뉘 지구는 여러 마을을 굴비 꿰듯 꿰고 있다. 각각의 마을은 고유의 토양과 풍토, 각기 다른 경사면과 해발고도에 따라 특색 있는 와인 맛을 낸다. 그중에서 주브레 샹베르탱, 샹볼 뮈지니, 부조, 본 로마네가 이름난 마을이다. 명배우 앤서니 퀸을 닮은 듯한 주브레 샹베르탱은 빳빳한 윤곽을 지니고 그 속의 단단함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그 배우의 굵은 턱선과 뼈대를 떠올리게 한다.



    샹볼 뮈지니는 외유내강의 표본이다. 비단 같은 감촉 가운데에 우뚝 솟아오른 기운찬 구조가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부조는 중세 와인 문화의 싱크탱크인 클로 드 부조가 자리한 유서 깊은 마을이다. 수도원의 역사가 와인 한잔에 녹아 있기에 더더욱 옛일을 추억하게 만드는 와인이다. 본 로마네는 고혹적이며 아주 화려하면서도 신비로운 와인이다. 다른 마을에서 느낄 수 없는 그 우아함이란 잊기 힘들 정도다.

    에이 에프 그로의 본 로마네에서도 예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특질을 느낄 수 있다. 라벨에 새겨진 마리안의 표정은 와인 종류마다 다른데, 본 로마네의 마리안은 활기차고 뇌쇄적인 인상에 똑바로 쳐다보는 눈빛이 매혹적이다. 피노 누아 포도잎으로 머리띠를 하고, 포도알로 귀걸이를 했다.

    아름다운 젊은 여성을 상징하는 피노 누아는 우아함과 화려함을 주된 특질로 삼고, 매끄러운 질감과 산뜻한 신맛을 띤다. 피노 누아의 개성이 거울에 비쳐보는 듯 분명하게 표현되는 부르고뉴,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게 피노 누아를 드러내는 곳, 본 로마네에서 프랑스 와인의 전형을 만날 수 있다. 맑고 투명한 빛깔과 간결하면서도 섬세함이 느껴지는 에이 에프 그로는 본 로마네의 피노 누아를 제대로 보여주는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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